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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식!

[중산] 2023. 5. 7. 20:01

금혼식

 

언젠가 그들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고,

물과 불처럼 확연하게 구별됐었다.

서로의 다른 점을 맹렬히 공격하고픈 열망을 간직한 채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서,

내 것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 내 것이 되었다.

한때 찬란히 작렬하던 번개가 자취를 감추고 난 후

서로의 품 안에서 투명한 공기가 될 때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해답이 주어졌다.

어느 고요한 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성별의 구분 따위는 점차 희미해지고, 비밀은 전부 불에 타버렸다.

흰 바탕 위에서 모든 빛깔이 자유롭게 섞이듯

공통된 성향 안에서 상반되는 기질들이 어우러졌다.

 

둘 중에 누가 두 배가 되고, 누가 사라져버렸는가?

두 사람 몫의 미소로 웃음 짓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두 개의 음성으로 갈라졌는가?

둘 중에 누가 동의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가?

숟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는 건 누구의 의지인가?

 

누가 누구의 살가죽을 벗겼는가?

누가 살아 있고, 누가 죽었는가?

서로의 손금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누구의 손인가?

 

오랜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쌍둥이가 태어난다.

서로를 향한 친밀감, 그것은 가장 위대한 어머니.

둘 중 누구도 자신의 쌍둥이 아이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누가 누구인지 가까스로 기억해낸다.

 

금혼식 날에, 이 기쁜 날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창가에 앉은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금혼식 : 결혼 5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25주년 기념일인 은혼식과 함께 대표적인 결혼 기념일 행사이다. 금혼식때는 신랑은 신부에게 순금으로 된 물건이나 보석을 선물로 주고, 가족과 친구들도 신부에게 기념품과 꽃을 준다.

 

 

 

새벽 네 시

 

밤에서 낮으로 가는 시간.

옆에서 옆으로 도는 시간.

삼십대를 위한 시간.

 

수탉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가지런히 정돈된 시간.

꺼져가는 별들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시간.

그리고 - 우리 - 뒤에 - 아무도 - 남지 않은 시간.

 

공허한 시간.

귀머거리의 텅 빈 시간.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새벽 네 시에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네 시가 개미들에게 유쾌한 시간이라면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자. 다섯 시여 어서 오라.

만일 그때까지 우리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면.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1923년 폴란드 출생.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45년 문단에 데뷔한 뒤,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여기>등 모두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독일 괴테 문학상, 독일 헤르더 문학상,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에서 극히 일부 발췌, 최성은님 옮김, 문학과지성사 출판>

 

매발톱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쓴다는 건 승자 없는 결투 -

한편에서는 나비의 눈에 비친 거대한 산처럼

육중한 그림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다른 편에서는 고통 속에 겨울이 탄생하던 그날 밤의

성냥 불빛처럼 일순간의 밝음이,

이미지와 생각의 섬광이 번득인다.

시를 쓴다는 건 참호 속의 교전, 암호화된 전보

오랜 감시와 인내.

 

침몰하면서 구조 신호를 보내다가

결국 침몰을 멈춘 배, 승리의 함성,

나이 지긋한, 침묵의 거장을 향한 충절,

잔인한 세상에 관한 고용한 명상,

환희의 폭발, 황홀경, 불만족,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는 희망,

마지막 한마디가 빠진 대화,

학생들이 모두 나가 버린 뒤 기나긴 휴식 시간,

한 가지 결점에 대한 극복,

 

그리고 새로운 결핍의 시작, 후속 시에 대한 영원한 기다림,

기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모,

일시적인 휴전, 까맣게 타 버린 고해소에서의 고발과 속삭임,

저항과 너그러운 용서,

전 재산의 탕진, 자책, 동의,

전력 질주와 한가로운 산책, 아이러니, 차가운 시선,

신앙 고백, 발성, 서두름,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의 울음.

- 아담 자가예프스키

 

*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1982년에 출간된 <다수를 위한 찬가>에 수록된 <타인의 아름다움>에서 사르트르의 명제에 반기를 들며, '고독이 아무리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음악과 타인의 시에서, 타인이 창조해 낸 아름다움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 부분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담 자가예프스키지음, 최성은∙이지원님 옮김, 문학의 숲 출판> * 아담 자가예프스키 : 폴란드 리비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시인이 된 이후에도 정부와의 마찰로 고국을 등진 채 외국의 도시들에서 쉼 없이 떠돌아야 했던 ’영원한 타인‘시인이다. 

 

폴란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밀로즈와 심보르스카를 잇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시를 통해 쉼 없이 나와 타인에 대한 의문부호를 던진다.

 

찔레꽃

 

자기 통제와 절제. 그것들의 궁극적 동기 -

 

나는 격렬한 충동과 싸우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여섯 가지 방법을 들겠다.

 

첫째,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하고 오랫동안, 그리고 점점 더 긴 시간 동안 불만족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충동을 약화시키고 시들게 할 수 있다.

 

둘째, 충동을 만족시킬 때 엄격하고 규칙적인 순서를 부과함으로써, 더 이상 충동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셋째, 의도적으로 충동을 거칠고 난폭하게 만족시키면서 충동으로부터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고, 역겨움을 통해 충동에 대한 권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지적인 기교를 부릴 수도 있다. 즉 충동을 통한 만족에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단단하게 묶어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성적인 향락을 즐길 때 악마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다섯째, 무언가 특히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하나의 자극과 즐거움에 몸을 맡겨 보는 방식으로 생각과 육체적인 힘의 장난을 다른 길로 유도함으로써 많은 힘을 빼놓을 수 있다*.

 

여섯째, 육체와 정신의 조직 전체가 약화되고 억제 되는 것을 견뎌 내고 또 이것을 이성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자도 역시 자연스럽게 하나의 개별적인 격렬한 충동을 약화시킨다는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행자처럼 자신의 감각을 철저히 굶기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육체를, 종종 자신의 지성까지도 함께 굶김으로써 쓸모없게 만드는 사람도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자이다.

 

따라서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하는 것, 규칙을 충동에 심어 놓는 것, 충동에 대해 싫증과 구토증을 유발시키는 것 그리고 고통스러운 생각, 치욕, 나쁜 결과 혹은 모욕당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약화시키고 탈진시키는 것, 이것이 여섯 가지 방법이다. 만약 이런 방법이 자신의 힘 속에 있지 않다면,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적어진다.

 

* 세상의 온갖 사물에 대해서도 갖가지 가치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고 동시에 그것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그 또한 마음대로 망치를 들고 깨 버릴 수 있는 자라면 니체가 저항하는 최고의 인간형, 즉 초인이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는 생각 하나로 엄청난 힘을 얻기도 하고 또 같은 양의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연습하고 또 계획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는 너무 과도하게 승리감에 도취되어 스스로 실수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힘 또한 통제 하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아침놀. -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에서 극히 일부 발췌,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동용님 옮김, 세창출판사>

 

부산 기장 달음산, 멀리 일광 신도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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