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그는 사랑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당신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돕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는 사랑에 대해 단정적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 편입니다.
사랑이란 끝이 없을뿐더러, 사람이 성숙하고 아름다워지고 넓어지면 사랑도 똑 같이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함부로 정의 내려 사랑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정의는 마음에 듭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대개는 이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반항을 포기하고는 ‘이런 걸 적응이라고 하나 보다…’생각하면서 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그러나 가끔은 그런 사람들에게 반항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싫어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나는 나에요~”
내 안의 나를 해방시키자
사랑이란 당신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한 생텍쥐페리의 말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면 어떤 모습의 내가 편한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변화 한다는 것은 누구나 즐겁게 선택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닌 무관심입니다.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나마 내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워할 수가 없으니까요. 나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과는 얘기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무 조건 없이 너를 사랑하마. 네가 머리가 나빠도. 넘어져서 코가 깨져도, 잘못을 해도, 실수를 해도 무조건 너를 사랑하마.”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정신병원 신세를 질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란 이래야 합니다. 가족이란 이래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요?
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내린 가족의 정의가 참 마음에 듭니다. “가정이란 찾아가면 언제든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곳이다.” 참 다운 가정은 이래야 합니다. 언제든지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곳, 아무런 염려 없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것이 인간이 가정을 꾸리는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취감을 필요로 합니다. 잘한 일이 있을 때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두드리면서 ‘잘했어, 정말 마음에 드는데!’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주 똑똑한데 인생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똑똑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반면에 평범하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애정이 넘치고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나
배움이 재미있는 이유, 절대로 싫증 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을 찾게 됩니다. 음악을 한 곡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음악 수천 곡을 알게 됩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자신도 모르게 음악에 푹 빠지게 됩니다.
시집을 한 권 읽어보십시오.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으면 푹 빠지게 됩니다. 이 세상을 읽고, 보고, 하고, 만지고, 느낄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할 때마다 여러분은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은 본래의 ‘나’입니까, 아니면 학습을 통해 탄생한, 타인들이 말하는 ‘나’입니까?
인류학자 카스타네다가 쓴 <돈 후안의 가르침>이라는 책의 내용 일부입니다.
“하나의 길은 백만 갈래의 길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택한 길은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택한 길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도중에 방향을 바꿨다고 해서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나무라면 안 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을 고집하건 포기하건, 두려움이나 야망에서 비롯된 판단이어서는 안 된다.
경고하건대 모든 길을 자세히,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길을 걸어봐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길에는 생명이 있는가.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길은 없다. 덤불숲을 가로지르느냐, 덤불숲으로 이어지느냐, 덤불숲 밑으로 지나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 길에 생명이 있느냐가 유일한 관건이다. 그런 길이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자아 찾기엔 공식이 없다.
심리치료 연구소 조지프 징커의<만인의 지식과 나만의 깨달음>이라는 논문의 글입니다. “자아를 찾기로 결심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변화시키겠다고 생각할까? 지금이야 어떻든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운명을 바꾸려면 달라지기로 결심하고, 변화에 대한 사소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마음이 가는 행동하고,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실행을 옮겨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들어보고,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 과정이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지 않고는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아 찾기에는 공식도 없고, 참고서도 없다. 나는 존재하고 여기 이 자리에 살고 있으며, 자아를 찾는 여행 중이고, 내 삶의 주인은 나이며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나는 내 안에 있는 단점과 실수와 과오를 극복해야 한다. 나의 부재를 나만큼 아파할 사람은 없다. 내일 또 다른 날이 시작되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살아가야 한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옆 사람이나 인생이나 하느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레오 버스카글라이 지음, 이은진님 옮김, 흥아출판사> * 레오 버스카글라이: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일하며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모교인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교수로 일했다. 미국의 교육학자이자 저술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사랑의 전도사였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나무>, <사랑>,<파라다이스행 9번버스>등 저서가 있다.
“고통스러워, 리디아”
고통스러워, 리디아,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 자동차의 부드러운 바퀴들을
한순간 들어 일으키는 가벼운 조약돌이,
나의 심장을 무섭게 하네.
나를 바꾸려 위협하는 그 모든 것
나아지는 것이라 해도, 나는 증오하고 피해 다녀.
신들이 나의 인생을 항상 새로움 없이 그냥 두길
나의 날들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나를 거의 한결같은 사람으로 머물게 하기를.
하루가 어스름으로 저물 듯이 노년에 이르도록.
(1917년 5월 26일) - 페르난두 페소아
저는 가끔 시라는 것이 인간, 즉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상상이 그 인간의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는, 다른 세계에 속한 피부로
만져지는 육체적 존재, 미적 현실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신적 존재.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생각에 대한 음악적 그림이다. 시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이 원하는 걸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조각, 회화, 노래와 교향곡은 폭군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시에서, 시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하긴 하지만,
우리가 느끼고 싶은 걸 느끼면 된다.
-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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