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추호, 인생의 의미!

[중산] 2023. 9. 17. 09:45

가을이 되면 짐승들은 털갈이를 하는데 이때 나온 털은 1년 중 가장 가늘다고 한다.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할 때의 그 추호(秋毫)가 이를 뜻한다. 그런데 지극히 작은 털끝이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엄청나게 클 수도 있다고 장자는 말한다.

 

아무리 작은 것도 무한히 작은 것에 비하면 크고, 아무리 큰 것도 무한히 큰 것에 비하면 작다. 무한대에 견주면 만물이 무한소고, 무한소에 견주면 만물이 무한대다.

 

시간도 마찬가지여서 인생이 아무리 길다 해도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또한 찰나에 비하면 어떤 인생도 영원에 가깝다. 그래서 장자는 어려서 죽은 아이가 장수했다고 말하고, 장수한 *팽조(彭祖)를 요절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팽조는 하나라에서 은나라 말엽까지 800년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참고로, 구약성서 시편에서 ‘우리의 연수(年數)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930년, 셋이 912년, 에노스가 905년, 므두셀라가 969년 기록돼 있다.

 

건강 백세를 염원하는 현대인들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장수기록들이다. 이들에게 100년은 우리네 인생으로 따지면 10년에 불과하다. 오늘날과는 삶의 척도가 달랐던 세상의 기록들이라 하겠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은 1,000년의 삶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이는 여름 한철을 사는 매미가 겨울을 알 턱이 없으니 얼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잣대를 달리하면 1,000년의 삶도 별것이 아닐 수 있다.

 

대소장단(大小長短)의 기준을 달리하면 이처럼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천지와 만물이 나와 하나가 되어 분별이 없어지는 지극한 경지다. 태양 아래서는 횃불이나 촛불이나 차이가 없듯이, 그곳에서는 인생이나 하루살이나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장자가 말한 경지를 과학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무 차원 수명’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각 동물의 수명은 천차만별이지만, 또 다른 잣대로 재면 모두가 평등하다. 그 잣대는 ‘특성 시간’이라는 것인데, 사람의 경우 평균 키(170cm)를 보행 속도(초당 1m,100cm)로 나눈 값인 1.7초가 특성시간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거북의 특성시간은 4초, 쥐는 0.027초, 파리는 0.0015초이다. 평균수명을 이 특성시간으로 나눈 것이 무 차원 수명인데, 놀랍게도 어느 동물이든 그 값은 10억 남짓으로 거의 비슷하다.

 

즉 사람이든 거북이든 하루살이든 나름대로 체험하는 수명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인간의 예, 평균수명 75년(75년*365일/년*24시간/일*3600초/시간=2,365,200,000이다. 여기에 특성시간 1.7나누면, 약 14억이 된다.)

 

무 차원 수명으로 보면 인생은 하루살이보다 길지 않고, 500년이 한 계절이라는 거북이보다 짧지도 않다. 장자는 도의 입장에서 보면 만물은 다 고르다고 재물론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무막대기나 기둥, 문둥이나 미인 서시(西施), 진귀한 것이나 괴상한 것이나 간에 도에 있어서는 하나로 통한다.

 

그리고 추수편(秋水篇)에서는 크고 작은 것과 귀하고 천한 것은 다 상대적인 것이라고 부연한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보다 크다’는 입장에 서면 만물에는 크지 않은 것이 없으며, ‘이것보다 작다는’는 입장에 서면 만물에는 적지 않은 것이 없다. 하늘과 땅도 큰(우주) 것과 비교하면 좁쌀 한 알에 불과하고, 터럭 끝도 작은 것에 비교하면 태산처럼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의미로 재는 것

 

한 사람의 인생도 어떤 잣대로 재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젊어서 죽은 것은 비극이 아니다. 70까지 살아도 인생을 제대로 못살고 죽는다면, 그것이 바로 비극이다. ”

 

검은 예수로 불렸던 킹 목사는 39세 때 총탄에 맞아 짧은 인생을 마쳤다. 하지만 불꽃같았던 그의 삶은 아무도 짧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그의 꿈은 계속 이어져 오바마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새털처럼 많은 날들’ 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 팔십 동안에 지나가는 날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중한 날들을 깃털처럼 가벼이 날려 버리고 만다. 그러나 무심히 흘려보낸 그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천금을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날이기도 하다.

 

헬렌 켈러는 1933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을 발표하여 대공황기의 미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준바가 있다. 어느 날 헬렌 케어는 숲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대답은 시큰둥했다. ‘뭐 별 거 없었어.’ 그녀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단지 나무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느끼는 등 흥미로운 것을 수백 가지나 찾아내는 데 말이다. 그녀는 만약 기적이 일어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 촉감 만으로만 세상을 느끼다가 두 눈이 열리면 보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헬렌 케어의 소망은 소박했다.

 

첫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으로 그녀는 설리번 선생을 꼽았다. ‘이제까지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면서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는 것이다.

 

둘째 날에는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장관’과 인류의 발자취가 담긴 박물관,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겠다고 했다.

 

셋째 날은 마지막 날인데도 여느 사람에게는 시시한 것들을 소망으로 꼽고 있다. 헬렌 켈러는 아침 일찍 거리에 나가 혼잡한 길모퉁이에 서서 출근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나 공연을 본 다음, 네온사인이 반짝 거리는 밤거리를 지나 집에 돌아오는 것이 ‘사흘간의 기적’의 피날레다. 그녀는 잠시라도 세상을 본 것에 감사 기도를 하고 다시 영원한 밤으로 돌아가겠다며 글을 맺고 있다.

 

장자는 인생에 비록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지만,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차이가 있어봤자 날쌘 말이 문틈 사이로 휙 지나가는 일순간 안에서의 길고 짧음에 불과하다.

 

다만 의미를 담으면 찰나의 인생도 영원으로 이어지고, 의미가 없으면 1백 년의 삶이라도 한낱 아침 안개처럼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대소장단 미추귀천(美醜貴賤)을 가리는 세속의 잣대는 부질없다. 인생은 길이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깊이를 재어봐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얼마만큼 이뤘는가보다 어떤 일을 이뤘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준다. 인생은 성취로써 재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써 재는 것이다.

 

장자는 우리 눈에 비친 크고 작은 것은 진실로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가 천 년 같고. 찬 년이 하루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가 천 일처럼 보람차고, 천 일이 하루처럼 한결 같다.

 

하루를 천 일처럼 살 것인가, 천 일을 빈 하루로 흘려버릴 것인가. 인생을 길이로 잴 것인가, 의미로 잴 것인가. 그대의 척도가 그대의 인생을 결정한다.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태관님지음, 흥아출판사> *김태관 :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한비자>를 30대의 처세철학으로 재해석한 책<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를 펴내는 등 고전의 바다에서 사물의 본질을 궁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하와이

 

부산 센텀 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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