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이 아닌 게 어떻게 나에게 올 수 있으랴!
우연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도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떻게 나에게 다가 올 수 있으랴!
회귀하는 것, 마침내 나에게로 귀향하는 것은 나 자신,
낯선 나라에 머물러 모든 것과 모든 사건들 사이에 흩어져 있던 나 자신이다.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꽉 막혀서 답답했던 내 가슴을 뻥 뚫리게 했던 말입니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떻게 나에게 다가 올 수 있으랴!’ 생은 단 한 번도 내 계획대로 와 주지도 이뤄지지도 않았습니다. 눈에 뭐가 씌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게 나였습니다.
나의 것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난 것입니다. 그 모든 일로 하여 지금의 내가 된 것입니다. 천지는 불안했고, 생은 불공평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내 것이어서 나에게 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하나도 제외할 것이 없는 나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불가능할 일입니다. 단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이유를 넘어서,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연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리석은 기대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입니다. 필연으로의 나를 낳고 다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사건들의 계속되는 결과의 연속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공제나 예외나 선택함이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디오니소스적으로 긍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건을 통째로 의욕하는 일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것이 아닌 게 어떻게 나에게 올 수 있겠습니까!
다음의 시를 읽으며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밤새 생각했던 내 계획대로
하루가 와 주었던 적이 있는가
돌이켜 보면 아예 내일이란 것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왔다.
물론 내 생도 거의 전부가 모르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너를 만나게 된 것도
나를 사랑하게 된 것도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된 일인지 모른다
그날 그 순간에 조금만 변화가 있었어도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낯선 얼굴로 지나쳤을 것이다
아니, 이런 가정 자체가 불가능하게
우리는 찰나도 빈틈없는 필연의 길을
눈먼 채로 걸었던 것이다
하여, 생의 모든 가정은 사라진다
하여, 생에 대한 모든 책임도 사라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의 나는 최선이고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 한 사람을
나로 믿어야 하는
생은 예술일 뿐이다
나는 내일이 궁금하다
-오철수, <나를 위한 노래>
돌이켜 보면 “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모습입니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으로부터 어쩌면 이처럼 절묘하게 피해 왔는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난 날, 곳, 시간, 조상, 취향, 말하는 투, 얼굴 귓불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봐도 참말이지 “그날 그 순간에 조금만 변화가 있었어도/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낯선 얼굴로 지나쳤을 것이다”입니다. 그런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일이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된 일인지 모르게’ 그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모든 일들이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꼭 내 것이어서 내게로 왔고 내가 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연의 길! 나는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지금의 나로 되었던 길!
‘나의 것이 아닌 게 어떻게 나에게 올 수 있겠는가!’ 이때 저는 생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내일이 궁금합니다. 주체로서 예술가인 나는 내 삶을 변화시키고 창조하기 때문이며, 객체로서의 나는 창조된 삶을 보며 다시 창조를 맘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앞에 놓인 행위는 오직 하나, 창조로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 일뿐입니다. 내가 건강한 나를 낳는 나의 예술! 그래서 궁금한 내일을 가진 나는 니체처럼 말하고 싶습니다.
“생의 한가운데서. - 아니다! 삶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삶이 더 참되고, 더 열망할 가치가 있고, 더 비밀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위대한 해방자가 찾아온 그 날 이후로! 삶이 - 의무나 저주받은 숙명이나 기만이 아니라 - 인식하는 자의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저 사상이 나를 찾아온 그 날 이후로! 인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일지 몰라도, 예를 들어 침대나 침대로 가는 길, 오락이나 여가 활동일지 몰라도, - 내게 그것은 영웅적 감정이 춤추고 뛰노는 위험과 승리의 세계이다.
‘삶은 인식의 수단’이다. 이 원칙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인간은 용감해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즐겁게 살고 즐겁게 웃게 된다! 전쟁과 승리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자가 어찌 멋지게 사는 것을 알겠는가?“ -니체, <즐거운 학문>에서
<‘시로 읽는 니체’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철수시인 지음, 갈무리출판>
*오철수 : 1958년 인천 생. 시를 쓰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민의>,<아버지의 손>, ,아주 오래된 사랑>,<아름다운 변명>, <조치원역> 등의 시집이 있으며, <시쓰기 워크숍1,2,3권>,<시로 가는 표현>, <풍경을 시로 쓰기>, <현실주의 시창작의 길잡이> 등의 이론서가 있다. 제3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