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벼락거지!

[중산] 2024. 4. 7. 16:46

 

창녕 연지저수지에서~!

 

 

 

인생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벚꽃이 절정이다!

 

 

 

벼락 거지!

 

나보다 일 년 먼저 퇴직한 가까운 지인이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며 곧 줄 테니 몇 십 만원만 빌려달라는 것이다. 큰 액수도 아니고 갑자기 돈 얘기를 하길 래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뭔 급한 일이 있는 가 보다 하는 생각과 함께 멈칫하는 사이, 처음 요구한 액수보다 더 얹어서 요구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같이 줄곧 해온 가까운 사람인지라 곧바로 냉정히 뿌리칠 수는 없었다.

 

도시락만 싸들고 농원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는 나인지라, 지갑에 큰돈을 넣고 다니지 않아 집 사람 통장으로 폰 벵킹을 해주었다. 바로 갚겠다는 그 돈은 월말 되어서야 못 주겠다고 통보가 왔다. 이유는 대출도 안 되고 매월 받는 연금이 다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분명히 뭔 일은 있구나 하는 직감과 처음부터 나에게 갑자기 적은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가 왔을 때는 이미 주변에 빌릴만한 곳은 다 연락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상태였다. 아무런 소식이 없길 래 전화를 해봤다. 주식으로 4억을 잃어 집에 압류 딱지가 다 붙어 있다며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주변 지인들한테 연락을 해보니, 나처럼 크고 작은 돈을 다 빌려 주었다고 한다.

 

아마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빌린 돈은 급한 생활비로 충당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 같다. 이런 조짐은 몇 달 전에도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 점포를 빌리는 데 이천만원이 부족해서 나한테 급히 전화를 하려다 다른 사람에게 빌렸다는 것을 나중에 귀띔 해주었다.

 

그 당시 연락이 닿았더라면 점포 빌린다는 그럴듯한 구실에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서 빌려줄 수도 있었을텐데, 휴! 그랬다면 나 또한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큰돈은 아닐지라도 벌이가 없는 노후에 벼룩의 간을 빼먹지, 퇴직해서 한 푼이 아쉬운데, 봄채소 모종도 사야 하는데, 한 달 월급과도 같은 생활비를 빌려준 것이다. 더군다나 앞서 큰돈을 빌려주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 준 소액은 부담이 훨씬 덜한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그 분의 생활방식이 측은하고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수년 전에도 또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도회지에서 만난 친한 친구가 선물옵션에 손댔다가 폭삭 망해서 떠날 때, 큰돈을 빌려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눈치를 미리 알아차린 나는, 어차피 못 받을 것을 각오하고 우정의 대가로 수중에 있는 몇 백 만원을 쥐어 준 적이 있었다. 아직도 주거지를 모르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 부부간의 이혼은 물론 가정이 풍비박산 되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워낙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다 보면 가까운 지인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양이다. 우정이니 동료니 하는 것은 안면몰수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돈을 빌릴 수 있는데 까지 양껏 빌리려고 목을 매는 거 같다.

 

이 일들은 산골에서 책과 도시락을 싸들고 하루를 땀과 여유에서 보람을 찾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었다. “에 휴! 그 놈의 돈이 뭔지, 인간은 죽을 때까지 왜 돈에서 못 벗어나는지…!”

 

옛 성현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외치며 부귀영화도 한 낱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모래성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빈자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을 강조했다. 현대는 욕망의 시대이다. 도를 즐기고 빈곤을 즐기는 것은 분명히 어렵고 허황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철없고 욕심만 부리는 욕망은 좀 더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돈을 돌로 보라고 했듯이, "이참에 나도 황토방 거처에 큰 돌 하나를 갖다 놓고 자주 쳐다보면서 마음을 수양해야 하나?"하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곤 했다.

 

2024년 3월은 퇴직 후 딱 10년 째 되는 달이다. 그 분은 퇴직 후 나이 칠십에 졸지에 벼락 거지가 돼 버린 것이다. 노후 대비를 위해 공인중개사 시험까지 합격하여 며느리와 함께 부동산중개업을 한다고 했는데, 코로나 이후 불황이 계속되자 집을 담보로 주식을 시작한 거로 짐작이 된다.

 

직장 생활 중간에 그만 두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식실패로 원금 빚과 이자가 감당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 경우들을 드물게 봐왔다. 그것도 꼭 주식 붐이 불고 난 이후에 생기는 기현상들이었다.

 

직장인들도 그 만큼 유혹의 광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흔들린다는 것이다. 요즘 말하는 ‘영끌’이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긴 세월 힘들 게 쌓아 올린 공든 탑들이 하루아침에 본인 스스로 와르르 무너뜨린 경우다.

 

불빛에 유혹을 받아 더 밝은 불빛 가까이 훨훨 날아다니다 타죽는 불나방 신세가 된 것이다. 누구나 평생을 통해서 몇 번 정도는 주식에 손대 봔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 패를 알고 거금으로 쥐락펴락하는 거액 투자가들 외에는 정보가 부실한 개인들은 한 바다의 새우나 정어리 떼 신세와 같다.

 

많은 고기 떼를 몰아가며 보리고래가 입을 브이자로 크게 벌리면서 한 번에 삼키는 경우와 같다. 그리고 정어리 떼를 쫓아 고래나 상어들이 파상 공격을 해대며 먹어치우는 거와도 닮았다. 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수 십 년 내공을 쌓은 전문가들도 어렵다는 게 주식이다.

 

신용을 걸고 했는지, 빠지는 쪽인 인버스ETF에 배팅한 건지, 선물에 투자한 건지, 근 반년동안 공매도 세력들이 바위덩어리처럼 눌러놓고 반의 반 토막을 낸 종목에 투자를 한 건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집을 단보로 4억이라는 돈을 날렸다는 게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괴테의 걸작인 파우스트가 불현 듯 떠오른다. 괴테는 평생 동안 공을 들여 야망, 도덕, 인간의 복잡다단한 삶의 형태를  파우스트라는 걸작을 통해 그려 냈다.

 

배월만큼 배웠고 우리 같이 늘그막 나이인 파우스트는 악마(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속아 노년의 인생이 확 꼬이기 시작한다. 악마가 보여 준 젊음의 상징인 아름다운 매혹의 여인은 오늘날 큰 수익을 안겨준다는 주식(돈)과 흡사한 유혹의 존재였다.

 

파우스트는 처음에 악마의 유혹에 멈칫하자, 악마는 물레 감는 아름다운 여인인 마르그리트의 모습를 보여 주며 유혹을 한다. 그 모습에 반해 파우스트는 훅 가버린다. 다시 청춘으로 되돌아 간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달콤한 사랑도 잠시뿐, 아름다움만 있지 않고 인생이 그러하듯이 여기저기 얽히고설키는 등 갈등들로 점철된다.

 

마지막에 마음을 돌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연인을 감옥에서 빼내어 도망가려 하지만 악마는 도와주지 않고 약속의 시간이 다 됐다며 ‘타임아웃’을 외친다! 주식 또한 인생역전을 꿈꾸며 자기의 주거지와 미래까지 한 방에 풀 배팅해 보았지만, 슬롯머신에 넣은 동전이 바닥나듯이 게임오버가 된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인생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깨침의 과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곳곳에 나를 유혹하는 달콤한 과장광고, 보이스피싱, 폰지사기, 전세사기 등으로 부터 어떻게 나를 안전하게 지켜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파우스트나 나의 지인들은 젊음, 영광과 권력을 사는 대신 소중한 자기와 가족 인생을 송두리째 맞바꾼 거와 다름없는 도박을 한 셈이다. 이 처럼 소중히 살아온 인생을 악마의 유혹에 풀 배팅한 꼴이 된 것이다. 남아 있는 암흑의 시간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짐작해보면 앞이 캄캄하다.

 

평생 봉급생활자로서 살아 왔었고 퇴직 후 노후에는 빠듯한 연금의 소득일지라도 거기에 맞춰서 버텨 생활해가야 하는 데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꿈꾸다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이다.

 

IMF때 봉급생활자나 사업자들이 벌려 놓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내려 앉아 길거리로 내몰린 것을 눈앞에서 봐왔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한치 앞을 예상 못하는 이런 재해들을 보고 “인간은 자신들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개 감성적 직관에 의해 많이 행동하고 판단한다.”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욕망의 영역인 사자에서 웃음을 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영역으로 가야할 시점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거리에 나 앉게 된 삶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참으로 딱할 뿐이다. 돈을 빌려주고도 되레 더 측은한 마음이 든다.

 

“5백 만 원으로 1억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등 핸드폰만 열어도 낚시광고에 쉽게 낚이기 쉬울 정도로 주식 광고가 SNS에 도배가 되어 있다. PC나 핸드폰으로 접근성이 용이하다고 해서 곧 수익으로 연결 될 거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주식은 물결이 요동치는 바닷물과 같아서 한동안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물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조수간만의 차도 모른다. 이렇듯 욕망의 바다에 발을 담그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말년에 이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실속이 없는 허황된 바람을 허풍이라고 한다. 특히 남자들은 바람을 잘 타는 경향이 있다. 한 때 중원을 누비던 사자로서의 욕망과 존재감을 퇴직을 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말년에도 무슨 일이든지 벌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간파한 장자는, 바람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체유심조, 즉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행과 불행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죽을 때까지 욕망을 못 내려놓는 게 인간이다. 대국의 욕망을 실현한 나폴레옹과 진시황도 말년에는 결국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분들은 대업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반면에 욕망의 바다에서 아예 손을 뗀 이백, 장자, 노자와 3대 성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대로 살았다고 한다.

 

무심코 돈까지 빌려 줘 놓고 이런 저런 말들로 견강부회해가며 논리를 펴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눈 감을 때까지는 인생의 가시밭길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 꿈틀대는 욕망의 찌꺼기들과 득실거리는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책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 보고자 이렇게 변명의 넋두리 글까지 남겨 본다~!!<중산>

 

*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신록의 4월에, 블로그를 들리신 모든 분들께서는 새로운 행운들이 움트는 한달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모과꽃
튤립
경주 동궁과 월지
밀양 종남산 진달래 풍광!
창녕 영산 만년교의 수양벚꽃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2) 2024.04.18
다툼과 사과!  (31) 2024.04.12
삶은 사랑을 통해서만 의미를,  (27) 2024.04.03
4월의 노래!  (18) 2024.04.01
나는 내일이 궁금하다!  (8)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