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내 행복한 모습이 친구에게 지나치게 가까우면
그의 마음속에 불안과 시기를 일으킬 수 있다.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주길 바라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조차 소유하려는 나의 이기심일 뿐일 테니.
소중히 여기는 친구일수록
모든 것을 다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 프리드리히 니체
근거 없는 믿음 : 무언가를 생각하면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이는 사람들이 생각에 대해 갖는 완벽한 오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을 ‘사고-행동 융합 thought-action fusion또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고 부른다.
생각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다. 다시 말해, 생각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나 누군가의 끔찍한 행동을 예언하고 경고하지 않는다. 또한 생각은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자연 재해를 경고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생각만으로 누군가의 어떤 행동이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도록 만들 수 없다. 생각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지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함으로써 사물을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해칠 수도 없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고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ting prophecy이 이루어질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만약 숲 속을 걷는데 뱀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은 안전한 길로 다녀야 한다고 확신할 것이다.
극도로 위험을 피하는 삶은 안전한 선택에 머무르고 창의적인 도약을 제한하고, 새로움과 미지의 대상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너무 겁을 먹는다면 어떻게 무언가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불안에 사로잡힌 사고는 문제를 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키우고 때때로 도움을 주는 적당한 해리를 감소시킨다. 심리학자들은 무엇인가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능력을 ‘해리dissociation'라고 부른다. 이는 ’건강한 억압’이라고도 불린다.
해리는 경우에 따라 쓸모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해리 덕분에 다음날 큰 일이 있어도 취침 전 텔레비전 쇼를 보고 쉽게 잠들 수 있다. 또한 이런 능력 덕분에 우리는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알면서도 매일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다.
불안이 과도하게 높을 때는 지나친 괴로움으로 해리가 너무 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은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 특히 잘 나타나지만, 과도한 자동반사적 각성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는 누구에게나 심한 해리가 일어날 수 있다.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갔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샐리 M. 윈스턴& 마틴N.세이프지음, 박이봄님 옮김>
* 윈스턴 : 심리학자. 코넬대학교와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불안․ 우울증협회의 초대 의료 이사를 역임. / 세이프 : 심리학자. 강박장애∙․불안장애 전문가 인지행동심리 전문가이다.
어느 더운 날 차라투스트라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잠이 들었다. 그때 독사 한 마리가 다가와서 그의 목을 무는 바람에 그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얼굴에서 팔을 내리고 그 독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독사는 차라투스트라를 알아보고는 서투르게 꿈틀거리며 도망가려 했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된다. 너는 아직 나의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았다! 너는 제시간에 나를 깨웠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독사가 슬퍼하며 말했다. “그대는 얼마 못 갈 것이다. 나의 독으로 죽을 것이니”차라투스트라는 웃으며 말했다. “용이 뱀 한 마리의 독 때문에 죽은 적이 언제 있었는가? 그러니 독을 되찾아가라! 너는 나에게 그것을 줄 수 있을 만큼 부자가 아니다.”
그러자 독사는 다시 그의 목을 감으며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 선한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은 나를 도덕의 파괴자로 부른다. 나의 이야기가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에게 적이 있거든 선으로 악을 갚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적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 적이 그대들에게 선한 일을 베풀었음을 증명해 주어라.
부끄러워하느니 차라리 화를 내라! 그리고 그대들이 저주를 받았을 때 그대들이 축복하려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이 저주라도 해라!
그리고 그대들이 엄청난 불의가 아니 일어났다면 작은 불의 다섯 가지라도 속히 행하라. 홀로 불의에 압박당하는 자는 보기에도 무섭다.
그대들은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가? 불의도 절반으로 나뉘면 나머지 절반은 정의가 된다. 그리고 불의를 짊어질 수 있는 자는 그것을 스스로 떠안아야 한다!
복수를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복수를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다. 처벌이 위반자들에 대한 권리도 명예도 아니라면, 나 역시 그대들의 처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옳음을 고수하는 것보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품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옳았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러할 만큼 충분히 넉넉해야 한다.
나는 그대들의 냉정한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들의 재판관의 눈에서는 항상 사형 집행인과 그의 싸늘한 칼이 보인다. 그러니 모든 처벌뿐만 아니라 죄책감도 짊어질 사랑을 만들어내라!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독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신종님 옮김, page2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