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대추 한 알/절망!

[중산] 2024. 6. 20. 09:36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

 

-정석주, <대추 한 알>전문

 

시인은 대추 한 알이 익는 데도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과 같은 고난이 있었다고 노래합니다. 이 말은 거꾸로 이런 고난이 없었다면 대추가 붉어지지도 둥글게 영글지도 않았다는 말이지요.

 

병산지

 

 

"절망은 정신, 곧 자기 내부의 병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절망하여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이고,

둘째는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지 않는 경우이며,

셋째는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설명에 따르면, 절망하여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는 “가장 흔한 일”로서 자신이 절망 상태에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모르는 무지몽매한 상태입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직장을 다녀야 하는지, 왜 취업을 못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의식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는 일단 자신이 절망 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두 경우의 사람들은 ‘자기’를 의식하고 있지요.

 

하지만 스스로의 약함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여, 아예 자기 자신이려고 하지 않고 도피하거나, 반대로 오직 자기 자신이려고만 고집하게 됩니다.

 

키르케고르는 두 번째를 ‘약함의 절망‘ 또는 ’여성의 절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절망하여 오직 자신이려고 하는 경우를 ’고집‘ 또는 ’남성의 절망‘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이런 모습, 곧 살기 위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모습, 살아가지만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잊어버린 모습은,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하여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로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우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의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뿌리를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용규지음, 웅진 지식하우스출판>

* 김용규 :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인문학과 철학의 풍부한 재료를 맛깔스럽게 풀어내며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인문학의 연금술사로 불린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코드 신>,<설득의 논리학>,<데칼로그>등 지은 책들이 있다.

 

병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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