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아오르고픈 충동을 느끼는데
살살기어가라고 한다면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헬렌 켈러
온갖 기념일이 범람하는 시대.
가끔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충만의 날’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날만큼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뭔가를 꼭 시도해 보는 거죠.
상대방이 뭘 하든지 다 긍정해 주고 맞장구 쳐주고 말입니다.
만약 지금 옆 사람이 한창 들떠 마구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면
딴지 걸지 말고 부채질해 줍시다!
모던 파시즘, 모던 파시스트!
트럼프와 바이든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서로 경쟁자였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 파시스트로 불리고 있는 것 또한 파시즘의 역설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전쟁의 와중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대방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면서 전쟁의 책임론을 전가시키기도 한 것을 보면, 도대체 파시즘이란 무엇이고 파시스트라 불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혼동스럽지 않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일반 사람이 파시즘을 잘 알고 분별하기가 어려운 것은 무리가 아니다. 파시즘에 저항한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어느 나라도 자유롭지 못한, 어느 곳이든 정착하고 있는 시대의 질병”이라고 말하였다.
만은 계속해서 “파시즘에 대한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서구의 파시스트 시대는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초기에는 국가주의 + 사회주의 = 파시즘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프로그램이 정의되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인위적인 구축물로써 사회통제를 위해 고안된 법적이고 신화적인 메커니즘이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한 자유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로 말미암은 부정과 부패, 퇴폐적인 부조리들을 청산하기 위해 출발한 파시즘이 반자본주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하면, 초기 세력의 규합을 위해 보수주의와 연대한 것도 사실이다.
파시스트들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와 유사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은행 자본주의’는 파시스트의 첫 번째 타도 대상이었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전적으로 사유재산의 축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전적으로 돈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제 문제를 두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사회주의를 지향한 마르크시즘과는 달리 소수 엘리트 계층에 의한 권위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한 파시즘이었기에 이들 둘은 처음부터 공조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결국은 전체주의적 통치를 위하여 절대 권력을 추구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에 이 두 이념적 체제를 혼동하는 것도 매우 당연할 듯싶다.
이렇게 절대 권력과 전체주의적 체제 유지를 위해 이념들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운데 좌파, 우파의 분류 선상에서 파시즘은 대개 극우파로 분류되어 왔으나 오늘날 정치 현장에서는 오히려 극좌파로 분류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들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 권력 추구와 무한대의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곧 이태리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과의 관계는 히틀러의 무솔리니에 대한 동경과 모방에서 비롯되었으며 히틀러의 나치당이 파시즘을 실현한 것으로서 나치즘은 곧 파시즘과 동일시해도 무방할 수 있겠으나 모든 이념적 발전이 그러하듯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독일의 파시즘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파시즘 신화
파시즘은 유대인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이해된다.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처럼, 파시즘은 서양 문화에서 유대-기독교 전통을 제거하려고 했다.
유대-기독교 전통이 초월적인 도덕률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파시스트 영성은 눈에 띄고 만질 수 있는 것을 강조한다. 파시스트들은 자연, 공동체, 그리고 자아와 연관된 유기적인 신학적 통합을 추구한다.
자연 위에 있는 하나님 개념, 사회 위에 있는 도덕법은 거부된다. 그와 같은 초월적인 믿음은 인간 존재를 자연적인 실존과 상호간으로부터 소외시키고 단절시킨다고 본다.
파시스트의 전통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모욕하고 비방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적을 지칭하지만 자신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파시스트들은 대중문화의 다목적적인 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익과 좌익
마르크스주의는 파시즘을 자신들과 정반대라고 정의한다. 만약에 마르크스주의가 진보이면 파시즘은 보수적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좌익이면 파시즘은 우익에 해당한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대변자, 사회주의자라면 파시즘은 부르주아의 대변자, 자본주의자임을 자처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가 계급간 투쟁을 전제로 한다면 파시스트 국가 사회주의는 국가 통합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추진한다.
공산주의와 파시스트들은 모두 부르주아 계급에 적대적이면서 보수주의를 공격한다. 둘 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식인, 학생, 예술가들에게도 특별한 호감을 갖게 하는 대중 운동인 것이다.
둘 다 강력하게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선호하고, 자유경제와 개인적인 자유의 이상을 거부한다. 파시스트들은 스스로를 우파도 좌파도 아니라고 한다.
우익, 좌익 또는 반동적, 급진적 등 인위적인 말들이 야로슬라프 크레치는 이 은유가 혁명이후 프랑스 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정치적으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절대적인 군주를 선호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정부 독점과 계획경제를, 문화적으로는 권위적인 통제를 선호했다. 왼쪽에 앉은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선호했었다.
파시즘과 대중의 마음
언어는 지성에 호소하지만 이미지는 감정에 호소한다. 책을 읽는 것은 지속적인 집중력과 논리적 반성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만들어 낸다.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오래전에 히틀러는 이미지의 즉각성, 추론을 피하는 성향, 조작의 가능성 등을 예견하였다. 언어보다 이미지를 우선시하는 것은 파시스트 이론의 신조가운데 하나였다.
나치는 책을 태웠지만 시각 매체는 사랑했다. 공공 계몽선전부 장관인 요세프 괴벨스는 “나는 영화를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 수정된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좌파이거나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로 생각하더라도 계급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히 블루칼라 노동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경제적 정의를 주장하지만 사유 재산을 없애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은 중산층을 악당으로 보기보다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음모론을 주장한다. 더군다나 1930년 대 세계경제대공황(1929~1939)을 통하여 파시즘의 권력이 강화되고 전쟁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야욕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하는 가운데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에 파시즘이 돌아오고 있다는 전언과 함께 우리가 당장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증후군적인 최근의 경제적 침체, 범람하고 있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비롯하여, 무엇이든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치적 교정, 나와 다른 것을 무시하다 못해 배제하기 위해 억누르는 문화적 삭제,
자신만의 지적 자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생각대로 계몽시키려는 워크 컬쳐(woke culture), 과거의 역사를 부인함으로 기존의 전통, 가치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역사 지우기, 절대적 혹은 초월적 가치나 도덕성을 부인하고 상대주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해체주의,
그리고 그 흐름에서 진리란 객관적이지 않으며 다만 일상의 언어놀이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하고 놀고 행동하고 사는 포스트모더니즘, 일상의 관행조차도 폭력을 앞세워 파괴하고 방관하는 안티파운동(anti-fascism)등이, 그야말로 히틀러 당시의 나치즘, 파시즘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늦출 수 없을 것 같다.
팬데믹과 더불어 기존 제도와 체제의 붕괴, 불신, 불확실성,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와닿는 고도의 인플레로 생활고 상황에서 불안심리는 파시즘이 돌아온다는 경고, 즉 대전환, 또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유행어가 되고 있다는 루머성 정보일지라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것 같다.
<‘모던 파시즘’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진E.베이트 지음, 최봉기님 옮김, 드러커마인드출판> * 진E.베이트 : Patrick Henry College의 문학 교수이며, World magazine과 Table Talk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 관한 18권의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