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는 하루 두 번, 2분 이상 양치하라고 권한다. 스트리밍으로 영상을 보거나 소설 미디어를 스크롤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과자 한 봉지를 먹어 치울 때는 2분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욕실에서 거울을 마주 보고 서서 양치할 때는 지겹기 짝이 없는 시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버먼 교수는 ‘이탈적 몰입tangential immersion 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양치질, 손 씻기, 산책하기와 같은 행동은 중요하지만 지루해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럴 때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 몰입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동시에 참여하면 결과가 나아질 수 있다.
리버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것을 실험하기 위해, 한 집단에는 곰과 늑대가 나오는 상대적으로 몰입하기 쉬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었다. 또 한 집단에는 그다지 빠지지 않는 자연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전자의 경우 양치 시간이 삼십 퍼센트나 길어졌다. 유혹이 되는 어떤 것과 운동을 동시에 하도록 하는 유혹 묶음은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과 같이 어떤 행동을 시작하게 도와준다.
반면 이탈적 몰입은 어떤 일에 더 오래 매달리게 해준다. 리버먼 교수는 다소 지루한 일을 할 때 오디오북이나 팟케스트,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해보라고 권한다.
나쁜 것과 함께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양치, 진공청소기 사용 등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매번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쓰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며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여하튼 가끔 좋아하는 것과 꼭 해야 할 일이 균형을 잡으며 연결하는 것은 자기가 목표하는 모습에 가까워지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파이어’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는 운동을 잠깐 생각해보자. 이 운동에 참여하는 젊은 20대나 삼십 대 초반에 일찍 은퇴하기 위해서 재정적 독립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얼핏 듣기에는 불가능한 목표일지 모르나 그들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득의 절반 이상을 저축한다. 이런 금욕적인 생활 방식을 잘 소화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파이어 운동의 몇 가지 원칙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방식을 시도해보고 미래에 일을 안 하고 편하게 지내기 위해 현재에 너무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사람도 있다. 리사 해리슨은 2년간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전에는 금요일에는 피자를 사먹었다. 일요일마다 시내에 위치한,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당연히 그런 일에는 돈이 들었다. 리사는 남편과 함께 조기 은퇴를 목표로 돈을 모으기 위해 이런 것을 예산에서 모두 빼버렸다.
그런데 이런 비용을 제외하고 나니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사라졌다. 순소득은 늘었지만 그녀의 웰빙은 급속히 악화했고, 이를 깨달은 리사는 파이어 운동을 그만 두었다.
이 사례는 지나치게 미래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동을 ‘원시’hyperopic, 遠視라고 한다.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다가 결국 후회할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미래만큼 현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몇 달 전 오전에 반차를 쓰고 아들을 유치원까지 데려다준 일이 있다. 좀 오래 걷긴 했지만 그렇게 아들과 단둘이서 시간을 보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현재를 쉽게 만드는 마지막 방법은 가끔 포기나 양보를 하는 것이다. 희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쓰면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을 얻는다. 그렇게 할 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훨씬 더 행복해진다. 때론 그럴 필요가 있다.
<‘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할 허시필드 지음, 정윤미님 옮김, 비즈니스북스출판> * 할 허시필드 :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및 행동 의사 결정학 교수이자 심리학 교수이다. 4,000명 이상을 10년간 추적 연구하면서, 미래의 자신을 가깝게 느끼는 ‘자아 연속성’이 높을수록 당장 눈앞의 만족감보다는 장기적으로 더 큰 보상을 받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슬픔은 인간에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과 깊은 이해력
그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선사한다.
- 존 애덤스
슬픔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깊은 사고를 통해 잘못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다면
슬픔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계몽은 한갓 이념의 형상화를 넘어선다. 계몽은 본래 새로운 시대의 부상(浮上)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로 전통과의 단절이기도 했다. 계몽은 변화를 지향한다. 그것은 일종의 절차이되, 반성의 절차일 뿐만 아니라 개혁의 절차이기도 했다.
계몽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개혁운동이지만, 특히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종교적이고도 정신적인 개혁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가장 강력한 사회적 집단은 물론 이것을 추구함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기를 희망하는 사회구성체, 즉 이른바 제계급인 시민계급이다.
사회적으로 상승 중인 시민계급은 이상적이면서도 물질적인 진보를 추구하며 이성과 자유를 향한 계몽 안에서 종교적 및 귀족적 권력의 지배에 대항하는 무기를 발견한다.
18세기에 신학에 대한 관심이 도처에 쇠퇴한 반면, 철학의 명성은 고대 이래 전래없이 높아져 갔다. 철학은 권위 있는 사유 형식이 되었다.
철학자는 계몽주의 위대한 주창자이며 프랑스의 계통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명시적으로 ‘철학자‘라고 프랑스어로 ’필로조프‘라고 불렀다.
비록 철학이 여러 계몽주의자들에게 일종 신학의 대체물이었을지 몰라도, 계몽 자체는 철저히 세속적인 과학이나 지혜로 이해했다.
이리하여 계몽은 (계시나 신의 은총의 초자연적 빛과 구별되는) 이성의 자연적 빛에 호소했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를 단호하게 강조했으며, 또한 자연스럽게 복음이 자연적 조정자로 복무하는 것을 점점 더 거부했다.
몇몇 철학자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과학의 오용이 불러올 위험을 이미 인지했고, 철학자들 다수는 과학에 의한 종교의 파괴 가능성과 과학에 내재하는 무신론 및 유물론적 경향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영국은 계몽의 발상지다. 일찍이 존 로크와 함께, 또는 훨씬 더 일찍 베이컨과 함께 시작되었다. 반면에 프랑스의 계몽은 이른바 볼테르(1694-1778)와 함께 시작되었고, 독일은 아마도 레싱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계몽은 계속된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베르너 슈나이더스지음, 오창환님 옮김, 해제 이우창님, 그린비출판> * 베르너 슈나이더스 : 1997년까지 뮌스터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국제 18세기 연구학회의 독일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계몽 사전>의 대표저자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