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지독히 혼자가 되다!

[중산] 2025. 2. 9. 07:07

 

부산 기장 죽성리 드라마세트장

 

 

 

파도의 말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놓고 울어 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 이해인

 

 

 

 

지독히 혼자가 되다!

  -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두 시인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 몇 가지 희망, 죽은 이들.

- <시1515>에서.

 

입담 좋은 허풍쟁이, 혹은 선량한 회색시인이라 불리던 월터 휘트먼과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마을에 은둔하며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사이에 시인이라는 것 말고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휘트먼은 고향인 롱아일랜드를 떠나 뉴올리언스와 드넓은 서부까지 이리저리 대륙을 돌아다녔다. 반면 디킨슨은 집 밖을 나선 적이 거의 없었다.

 

시를 통해 천국까지도 다녀오지만, 그녀의 시는 주로 자신의 정원, 집근처의 숲과 초원에서 시작된다. 1855년, 30대 중반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은 휘트먼은 명작<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디킨슨은 약 1800편의 시를 썼다.

 

휘트먼과 디킨슨, 그리고 나 사에에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결혼할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휘트먼은 연합군 출신이자 워싱턴 전차 차장이며, 25년가량 후배이자 연인이었던 피터 도일과 동거하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말했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다.

 

1873년, 뇌졸중으로 쇠약해진 휘트먼은 뉴저지 캠던에 있는 동생 조지에 갔다. 처음에는 잘 지냈지만 싸움이 잦아지면서 휘트먼이 사망할 즈음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말년에 휘트먼은 그를 지지하고 그가 영광을 누리기만을 바랐던 여성의 청혼을 두 번 거절했다. 유도라 웰티가 그랬듯 휘트먼과 디킨슨 역시 배우자를 향한 갈망에서 벗어나 고독을 그들의 숙명이자 재능으로 차분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두 시인은 결혼으로 귀결되는 평범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이상적인 욕망을 지향하며 글을 쓰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사실에 국한된 세상보다 상상력이 끝없이 넘치는 세상을 선호했다.

 

나는 가능성 속에 산다.

산문보다 더 멋진 집이다.

창문이 아주 많고

문도 아주 훌륭하다.

 

- <시 466>에서.

 

두 사람은 미합중국의 시인이다. 그래서 모든 단어와 구두점에 민주주의, 우정, 동지애라는 아름다운 이상이 담겨 있다.

그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영행을 받은 에머슨의 초월주의에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

에머슨을 통해 신이 저 멀리 구름 한가운데 화려한 광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 나무에, 인간의 마음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지켜 교회에 간다.

나도 안식일을 지킨다. 집에 머물면서.

성가대 대신 쌀먹이 새와

예배당 대신 과수원에서.

 

- <시2삼6>에서.

 

 

루이지애나에서 나는 한 그루의

참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았네.

나무는 홀로 서있고

가지에는 이끼가 드리웠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나무는

신이 난 짙푸른 나뭇잎과

수다를 떨며 자란다네.

거만하고 고집스럽게 생기 넘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

어떻게 친구도 없이 그곳에 홀로 서서

신이 난 나뭇잎과 수다를 떠는지 궁금하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거늘.

 

- 윌트 휘트먼,<루이지애나에서 나는 한 그루의 참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았네>

 

 

누군가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되지 않으리.

내가 한 인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한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죽어가는 한 마리 새를 살려

둥지에 되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되지 않으리.

 

-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과 휘트먼을 읽다보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사라지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나눌 수 없는 완전한 인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회와 관습이 규정하는 일련의 이분법적 목록이 사라지고, 우리는 자연스레 독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통로, 우주가 향하는 한 방향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나와 방향이 만나 만들어진 단어로, 독신자가 나아가는 방향이다.

 

비평가이자 전기 작가인 파울 츠바이크는 두 시인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휘트먼만큼 철저히 혼자였던 이는 에밀리 디킨슨뿐이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휴즈는 디킨슨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했다. “1861년에서 1862년 사이 디킨슨의 창의성이 폭발했던 것이(어디까지나 휴즈의 생각이지만) 현실에서 남자에게 결혼을 거절당한 슬픔에서 비롯된 절망의 에너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남성 중심의 문학계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와 자기집착, 그리고 아내를 남편의 비서쯤으로 여기던 시대의 안타까운 사고방식이 떠오른다.

 

휘트먼의 삶은 그의 책이었고 그의 책은 그의 삶이었다. 그는 책과 삶 사이를 오가며 <풀잎>을 서로 다른 판본으로 제목을 바꿔 가며 발행하고 또 발행했다.

 

나는 숲가의 강둑으로 가서 어떠한 가면도 쓰지

않고 발가벗는다.

나는 내게 와 닿는 것에 미칠 것 같다.

나 자신의 숨결.

메아리, 잔물결, 웅웅거리는 속삭임…

미나리, 명주실, 갈래와 덩굴,

나의 호흡과 영감…내 심장의 박동…

내 허파를 통과하는 피와 공기.

초록 잎사귀들과 메마른 잎들.

 

- 월트 휘트먼의 <나 지신의 노래> 중에서

 

 

육지에 살던 사람은 환희에 차,

바다를 향해 나아가,

집들을 지나 - 갑(岬을) 지나 -

깊은 영혼 속으로 나아간다 -

우리가 산골 마을서 자라나,

처음 육지를 벗어난 순간

느끼는 신성한 도취를

선원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 에밀리 디킨슨 p.18

 

<‘고독의 창조적 기쁨’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펜턴 존슨 지음, 김은영님 옮김, 카멜북스출판> * 펜턴 존슨 : 창의적인 논픽션과 소설을 쓰는 작가. 미국 정부의 국가예술기금 및 LGBT문학상인 람다 문학상 수상. 에리조나 대학교 명예교수로 미국 전역에서 창작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해동용궁사

 

비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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