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에 대하여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천수천안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가
가야 하리
- 장석남
죽음의 공포에 관하여!
시골 묘지의 묘비에 흔히 새겨진 “사랑하는 당신과 나로 인하여 슬퍼하지 말라”는 권고의 말은 대체로 신속하고 충실히 실천에 옮겨진다.
우리가 남기고 떠나는 빈자리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그런 생각에는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측면도 있고 스스로를 동정하여 위로받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빈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상처는 생각보다 금방 아문다. 우리가 죽은 다음날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군중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심장이 박동을 멈춘 다음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잘 돌아가고 우리는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각별히 여겨지지 않는다.
대중에게 감상이란 없다. 그들은 다른 혹성의 주인인 양 당신이나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지기는 켜녕 바로 옆 골목에 사는 사람들조차 우리 이름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이 생각에 심란해지지 않는다면 사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줌의 재가 이웃에게 싸움을 걸거나 하나님에게 불평을 할 리 없다.
직위가 있는 부자들이나 심지어 막강한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얼마나 빨리 잊혀 지는지 놀랍다. 가르침과 기쁨을 준 이들의 기억을 간직하되 그 분량은 오직 자신이 받은 가르침과 기쁨에 비례한다. 존경심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오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을 수 없다.
활동적이고 위험한 삶은 죽음의 공포를 경감시킨다. 그런 삶은 고통에 참을 수 있는 의연함을 갖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의 명줄이 불안정하다는 사실도 가르쳐 준다.
강력한 생각에 마음을 사로잡히면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그게 없으면 삶이 즐겁지 않고 삶 그 자체는 무관심이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내세에 대한 맹신은 현세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그 너머의 무언가에 상상의 형체를 부여했다. 그렇게 해서 거친 군인이나 사랑에 미친 사람들이나 용맹한 기사들이 현세의 운을 집어던지고 내세의 품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뽐내는 이성과 공허한 철학으로 무장한, 여자보다 약한 현대의 무신론자들이 꺼릴 일이지 않은가!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없앨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삶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저 억제할 수 없는 기분과 견디기 괴로운 격정을 만족시키려고 인생의 무대에 머물고자 할 뿐이라면 우리는 즉시 떠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편, 삶에서 얻는 좋은 것 때문에 존재에 애착할 뿐이라면 떠날 때의 고통은 그다지 심하지 않을 것이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헤즐릿 지음, 공진호님 옮김, 아티초크 출판> * 윌리엄 헤즐릿 :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요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자유사상가이자 이단아였고, 반체제 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였자.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유니테리언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3년 런던의 헤크니 뉴 칼리지에 들어간 그는 급진적 사상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철학서 <인간 행동론>을 <정치 에세이>,<좌담>,<시대 정신>을 출간했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7) | 2025.04.11 |
---|---|
안부 전화 (14) | 2025.04.08 |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12) | 2025.04.02 |
긴장 좀 풀고 자유를 느껴 봐요! (12) | 2025.03.29 |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 (7) | 2025.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