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2/중산 담론

현자들의 만남과 헤어짐!

[중산] 2010. 3. 11. 21:02

                                  

                

" 聖의 경지에 도달하였기에 거침없이 종교적 벽을 허물어 현자들과의 만남을 가져셨던 대종사님의 열반을 애도하 며 몸도 가누기 어려운 투병 중에 추모글를 보낸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를 인용 해 봅니다! "

 

"어린 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肉身)을 묵은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11일 입적(入寂)한 법정(法頂) 스님은 스스로 "수십 번 읽었다"고 밝힌 '어린 왕자'에서 불교적 사생관 (死生觀)을 발견하고 저서 '무소유'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스님 스스로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다.


법정 스님이 출가하게 된 것도 생사(生死)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6·25 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생이던 시절 당대의 선승(禪僧)인 효봉 스님을 찾아가 출가한 것이다. 1954년 출가한 후 해인사 등에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학승(學僧)으로 이름을 떨치던 스님이 본격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게 된 것은 역경(譯經)때문이었다. 스님은 "해인사 시절 한 할머니가 대장경판에 대해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라고 하는 것을 보고 불교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하고, 살아 있는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이웃 종교와 교유해온 법정 스님은 길상사 개원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과 장익 주교
(전 춘천교구장), 원불교 박청수 교무 등을 초청했으며, 이듬해 2월 명동성당을 찾아 강연했다. 매년 성탄절 무렵이면 길상사 앞길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2월 김 추기경이 선종(善終)했을 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조선일보 특별기고를 통해 "어제서야 슬픈 소식을 듣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망연자실해졌다"며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2일 병실을 찾은 청학 스님(광주 무각사 주지)이 "생과 사의 경계가 없다고 하는데 지금,
스님은 어떠 십니까?"라고 묻자 종이에 "원래부터 (생과 사가) 없어"라고 쓰며 생사를 초월한 모습을 보여줬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공허하다"며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법문 마지막을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니 나머지는 저 찬란한 꽃들에게 들으라"고 맺곤 했다.

또 입적 직전에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 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이제 침묵과 자연 속에서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때이다.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는 불교계와 천주교계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많은 교류를 해왔다. 두 사람 모두 암투병이라는 공통의 고난속에서도 종교적 깨달음을 담은 맑은 글로 독자들을 감동시켜왔다.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은 이날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세. 법랍 55세. 이해인 수녀의 추모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 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 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법정스님의 좋은 글 모음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편지 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

 

시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사는 즐거움 에서 -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에서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사는 즐거움 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편지 에서 -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여름.가울.겨울 에서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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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과 김수환추기경=불교계의 원로 법정스님이 11일 입적했다. 사진은 1997년 12월 길상사 원법회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법정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 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