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상들
다음은 내가 느낀 증상들이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이 다른 사람 같다.
손과 발, 가슴, 목구멍, 뒷머리가 심하게욱신거린다.
미래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미래는 어차피 내게 없을 테니까)
건강염려증.
불리불안.
광장공포증.
지속적이고 극심한 공포감.
정신적 고갈.
육체적 고갈.
가슴이 답답하고 가끔 통증을 느낌.
길을 잃은 기분.
식욕 감퇴
공기가 부족한 느낌.
불면증.
시야의 경계에 어둠이 보임.
공황 발작 직전 상태인 것처럼 느낌.
잠시 나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 일주일,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아니 단1초만이라도.
이런 경험들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질 때, 나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나만 이런 일을 겪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상대적으로 흔한 일이었다.
우울에 불안을 더하는 것은 마치 술에 코카인을 타는 것과 같다. 내 모든 경험에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우울이 있으면 마음은 늪 속으로 빠져들지만, 거기에 불안을 더해 칵테일을 만드는 순간 늪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늪 속에 괴물이 산다. 미친 듯이 빠르게 또 끊임없이 괴물은 움직인다. 나도 쉬지 않고 경계한다. 쓰러질 때까지 경계하면서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내 주위를 둘러싼 강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쉬운 숨 쉬기를 힘겹게 하고 있다.
우울과 불안이 있으면, 고통은 생각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이다. 허리가 아플 때는 앉아 있을수록 더 아프다. 하지만 힘든 날에도 등급이 있다.
다 똑 같이 힘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힘들었던 날은 지나고 보면 견뎌낸 보람이 있다. 그런 날들을 저축해둔다. 마치 은행 계좌처럼.
통계들
자살은 35세 이하 남성의 사망 원인 중 1위이다. 세계적으로 자살하는 확률은 여성보다 남성이 세 배 더 높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살아가면서 한 번은 우울증을 겪는다. 항우울제 사용이 전 세게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아이슬랜드이다.
호주, 캐나다, 덴마크, 스웨덴, 포르투갈과 영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살아가면서 심각한 우울증 발작을 겪는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두 배 더 높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정신 질환 문제에 대한 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받는 경향이 있다. 친부모 중 한 사람이 우울증으로 진단받는 경우 자녀에게서 같은 질환이 발생하는 위험은 약 40퍼센트 더 높다.
정신 질환은 갑자기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전부터 내재해 있는 것일까?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정신 질환의 거의 절반이 14세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고 한다.
스물네 살에 우울에 빠졌을 때는 몹시 낯설고 갑작스럽게 느꼈다. 내 어린 시절은 꽤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정상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보통은 불안했다.
열 살 때 계단에 서서 베이비시터에게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울고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알 수 없는 것들
강박장애에 대한 탁월한 책<멈출 수 없는 애덤>박사는 ‘오직 바보나 거짓말쟁이만이 뇌의 작용에 대해 말할 것이다’라고 썼다.
뇌는 토스터기처럼 단순하지 않다. 1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그 조그마한 공간에 평생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뇌는 우리가 그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토록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될 만큼 마법 같은 기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울증은 호르몬 불균형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의 과학적 원인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도파민과 특히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우울증에 관한 세로토닌 이론은 다소 기반이 취약해 보인다. 세로토닌 분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우울제의 등장으로 인해 이 문제는 재조명받게 되었고 세로토닌 재흡수 향상제 티아넵탄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가디언>의 벤 골드에이커는 이미 세로토닌 모델에 대한 의구심을 표했다. “6천억 달러 규모 제약업계 의사들은 우울증이 뇌세포 속의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생긴다는 주장을 팔아먹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체내 세로토닌을 높이는 약이 필요하다고 겁을 준다.… 그것이 바로 세로토닌의 가설이다. 이제 정반대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뇌의 특정 부위나 호르몬에 집중한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과 마음이 왜 일치하지 않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는 게 바로 진리다. 환자가 치료제의 기전까지 모두 알 필요는 없다.
나는 약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효과가 있다면 뭐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약이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미레에 언젠가는 나도 약을 먹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조치만을 취하고 있다.
사랑
우리는 본질적으로 혼자다. 아플 때는 더더욱 이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종류를 불문하고 고통은 매우 고독한 경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랑에 열광할까?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해도 그들을, 아니 우리 자신조차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하는데?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부하고 감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사랑의 가치를 전적으로 믿고 있노라고.
사랑은 나를 구원했노라고. 안드레아가 나를 구했다.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 그리고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우리는 열아홉 번째 생일 저날 밤부터 내가 우울증에 걸리기 전까지 5년을 만났다. 재미 있는 점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잠을 깊이 못 자고 올빼미 체질이었다. 그녀는 직업의식이 투철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웃겨서’좋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좋아했다. 내 생각에 우리는 둘 다 꽤나 낯을 가리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안드레아는 특히 사회적 카멜레온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친밀함일 수도 있다. 그녀는 누군가 불편해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남에게 최대한 맞춰준다.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이 있다면 아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화였으리라.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우리는 남과 같아지려고 자신의 4분의3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사랑은 우리 자신의 빼앗긴 부분을 되찾아오는 방법이다.
아주 어린 시절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 사랑은 아마도 우리가 ‘이상한 자기 자신’인 채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일 수 있었다. 방법은 대화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새운 적이 많았다. 우리가 완벽한 관계였던 것은 물론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지금 돌아보면 끝없는 말다툼의 시간이었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녀가 말다툼에서만 보였던 힘과 분노는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곤 했다.
내가 병원에 갈 때도 곁에 있었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걱정과 어둠이 지나간 뒤에 생기는 공백을 채워주었다. 그녀는 내 마음의 쌍둥이였다. 내 삶을 돌봐주는 라이프시터였다. 나의 반쪽이 사라지고 없을 때 남은 반쪽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떠나 있는 동안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처럼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나를 대신해주었다!
<‘살아야 할 이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매트 헤이그 지음, 김수희님 옮김, 책읽는 수요일출판> * 매트 헤이그 : 영국의 소설가, 1975년 요크셔 주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헐대학 영문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리즈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다. 20대 초반에 정신적 위기를 맞은 그는 오랜 시간 우울과 싸운 끝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 <살아야 할 이유>는 그의 논픽션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휴먼>,<영국의 마지막 가족>,<리들리 가족>등 다섯 권의 소설을 저서가 있다.

이삭 여문 들판 꿈
나는 이미 너를 꿈꾼 적이 있다. 나의 이삭 여문 들판의 꿈이여! 너의 붉은 색과 황금색 빛으로 다시 날 감싸줘! 다시 내 밤의 문턱을 넘어와 다시 새로운 행복의 예고자가 되어줘!
보라, 내 새벽의 잠겨 있는 정원, 그 공기에는 은빛 가득하고 그늘에는 미래가 가득한데, 그곳에서 그가 걸어 나온다. 나무들이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풀밭들에서 나는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다.
나의 향수는 그 충만함을 만끽하고, 나의 눈은 변모하여 끊임없는 시선으로 내 새파란 청춘의 봄들에 머무른다. 꿈은 강력해지고 내 앞에 이삭 여문 누런 들판이 햇빛 찬란한 광활함으로 펼쳐진다.
찬란한 햇빛 속의 이삭 여문 들판! 누렇고 붉은 빛깔들의 홍수, 부단한 빛의 충만함, 깊은 곳에서는 불그레하게 밝고, 가장 자리에서는 찬란한 물결과 쉼 없는 변화하는 색으로 생동한다.
평온과 충족으로 가득한 끝없는 광경, 행복과 아름다움의 샘, 원초적 화려함을 지니고 자연 그대로이며 그 자체로 완결되고 되찾을 수 없는 모든 것이 모인 보물.
이 모든 게 내 가슴속에 가라앉아, 빈방을 전부 발견하고, 채우고 또 채우고, 마치 깊은 호수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넘쳐흐른다. (…)
이삭여문 빛나는 들판이여! 너의 평온한 밝음으로 나의 눈을 적시고 있는가. 아니면 내 행복의 빛이 나의 눈에서 넘쳐흐르며 너를 반짝이게 하고 태양에 불을 붙이는 것인가?
부유하면서 받아들이고, 곤궁하면서 베풀고, 둘이 하나로, 영원한 수수께끼의 달콤한 핵심,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은 그러하다.
나의 모든 척도와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해방되었는가! 어디가 시작 혹은 끝이며, 어디가 의지이고 목표, 혹은 근원이고 다리인가?
이삭 여문 빛나는 들판이여, 너는 해방된 내 영혼의 모습이 아닐까? 너와 나, 둘 다 넘쳐흐르는 밝음 속에서, 둘 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풍요롭게 지니고, 둘 다 서로 선물하며, 그리고 둘 다 달콤한 짐을 진 채 몸을 숙이고 있지 않은가?(1898/1899년)
<자정너머 한 시간- 이삭 여문 들판 꿈’에서 극히 일부 발췌, 헤르만 헤세지음, 신동화님 옮김, 엘리출판>* 헤르만 헤세 : 1877년 독일 남부 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목사이자 선교사인 아버지와 신학자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과 독일 칼프에서 성장했다. 신학교를 그만 두며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결심한 헤세는 그해 6월 삶의 좌절감으로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서 입원하여 신경쇠약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시계공장과 서점 등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했다. 1899년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 첫 산문집 <자정 너머 한 시간>출간, 1904년 <페터 카멘친트>로 유명 작가로 발돋움 했고, <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 <청춘은 아름다워>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1919년 <데미안>,<싯다르타>, <유리알 유희>등을 출간했고,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어이! 동료…” 동정하는 것은 아직 둘이라는 뜻이다. 아직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감사나 연민이 그 의미를 잃는 관계가 존재한다. 그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해방된 포로처럼 숨 쉬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넘어선 공동의 목적으로 형제들에게 연결되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쉰다. (…) 그대의 마음에 씨앗을 뿌렸을지 모르는 정치인들의 거창한 말들이 진실하였는지 아닌지, 논리적이었는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일 따위는 필요 없다.
그 말들이 싹을 틔우듯 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그건 그 말이 그대의 욕구에 들어맞았다는 말이다. 그대야말로 유일한 심판자다. 밀알을 알아보는 건 바로 토양이다.
경험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줄에 묶여 서로 만나게 될, 같은 정상으로 나아갈 때에만 그들은 동료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이 풍족한 시절에 마지막 남은 식량을 사막에서 나누어 먹으며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느낀단 말인가?
사하라 사막에서 구조되는 그 크나큰 기쁨을 누린 사람에게는 다른 모든 즐거움이 하찮게 보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 주변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충만함을 약속하는 종교들에 열광한다.
우리는 서로 모순되는 말을 쓰지만 모두 같은 충동을 표현하고 있다. 방법론에 있어서만 갈릴 뿐, 목적에 있어서는 견해가 일치한다. 그 목적은 모두 똑 같다. 그러니 놀라지 말자.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낯선 이의 존재를 눈치 채지는 못했더라도, 무정부주의자의 지하 참호에서 희생, 협력, 정의에 대한 강직한 이미지로 인해 그 낯선 존재가 깨어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느낀 사람은 오직 단 하나의 진리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건 바로 무정부주의자의 진리다~.
<‘인간의 대지-인간’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은님 옮김, 이음문고> *생텍쥐페리 (1900~1944): 10세 무렵, 비행장을 드나들며 비행에 매료되었고 1921년에 항공부대에 정비사로 입사해 자비로 비행교습을 받았다. 조종사 면허를 딴 후 직업군인이 되려고 했으나 약혼녀의 반대로 제대해 사무직에 종사했다. 파혼 후, 1926년 조종사로 입사해 아프리카 우편물을 항공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고, 1927년에는 모로코 남부 기지의 책임자로 임명됐다. 이 시기에 틈틈이 쓴 소설<남방 우편기>다. <야간 비행>으로 작가 명성을 얻은 그는 1939년 <인간의 대지>를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찰비행단 조종사로 종군했다. 1941년 2년간 미국 망명 시절 동안<전시 조종사>,<어린 왕자>등을 발표했으며, 유럽으로 돌아간 뒤에는 프랑스군 정찰비행단에 합류했다. 1944년 7월 31일 독일군 전투기의 사격을 받고 지중해로 추락하여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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