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극지방을 탐험하라. 차라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완전한 신대륙과 신세계를 찾아 나설 콜럼버스가 되어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 항로를 열라. 사람은 누구나 왕국의 군주이며, 그 앞에서는 러시아 황제의 제국도 한낱 소국, 얼음 위에 솟은 조그만 얼음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그때 내게는 아직 살아야 할 몇 개의 삶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의 삶에 그 이상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또 부지불식간에 어느 특정한 길 하나에 들어서서 스스로의 걸음으로 그 길을 다져놓는 것인지 놀라울 정도다. 숲에서 산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내 집 문에서 호숫가까지 내 발걸음으로 길이 나게 되었다. 지표면은 부드럽기 때문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힌다. 그리고 그 점은 마음이 가는 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세상의 큰길은 얼마나 닳고 부스러졌으며, 또 전통과 순응의 바퀴자국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나는 선실 여행보다는 세상의 돛대 앞, 그 갑판 위에 서기를 원했는데, 그 자리에서라면 산 속의 달빛도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배 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경험에 의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은 받아들이고, 어떤 일은 내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게 된다. 요컨대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위와 그의 내부에 확립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의 법칙이 확대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됨으로써 보다 높은 존재의 질서에 대한 허락을 받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삶을 단순화하는 데 비례하여 삼라만상의 법칙은 덜 복잡해질 것이며, 설혹 공중누각을 세운다 해도 그 일은 헛된 수고가 되지 않는데, 누각이란 것은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아래 기초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토록 서두르며 또 모험을 감행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멀리서 나는 것이든 그가 자신의 음악에 발을 맞추도록 내버려두자. 그가 사과나무나 떡갈나무만큼 빨리 성장하느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봄을 맞고 있는 그가 굳이 여름으로 계절을 바꾸기라도 해야 할까? 우리에게 맞는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어떤 현실이 있을까? 공허한 현실이라는 암초에 난파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힘들여 머리 위에 청색 유리로 만든 하늘을 세워야 할까? 설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마치 유리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창공을 응시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미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종종 가난하게 사는 마을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어쩌면 아무 의심 없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자기가 마을의 부양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 중에는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셀비어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라. 헌옷을 뒤집어쓰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옷은 팔되 생각은 갖고 있으라. 친구가 모자라지 않도록 신께서 보살펴 줄 것이다. 설혹 평생을 거미처럼 다락방 구석에 갇히더라도 생각만 잃지 않는다면 세상은 내게도 똑같이 클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 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군대라도 그 장수의 목숨만 빼앗으면 혼란에 빠뜨릴 수 있지만,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서라도 그 생각을 빼앗을 수는 없다.” 많은 감화에 자신을 굴복시켜 가면서까지 스스로를 계발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그것은 낭비일 뿐이다. 겸손은 어둠이 그렇듯이 천상의 빛을 드러내 준다.
우리 내면의 생명은 저 강물의 물과 같다. 올해 그 강물의 수위가 유례 없이 올라가 목마른 고지대로 범람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향뒤쥐가 모두 익사하는 중요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언제나 마른 땅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륙 오지에 난 둑에서 과학이 그 범람을 기록하기도 전에 강물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다. 나는 지금 존이든 조나단이든 이 모든 사실을 깨달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결코 밝아 오게 만들 수 없는 저 아침의 특성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저 빛은 우리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그날은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 동터 올 것이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야생화 섬초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