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를 장만하기 위한 금욕생활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추위는 그의 평온한 삶을 바꿔 놓고 말았다. 아카키의 얇은 외투로는 그 겨울의 지독한 추위를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입고 있는 외투는 천이 얼마나 닳아빠졌는지 속이 훤히 비칠 정도였고 안감은 너덜너덜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외투”라고 부르기보다는 “누더기”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아카키는 이 외투를 수선해 입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재봉사의 말을 듣고, 새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결국 엄청난 금욕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1백 50루블이나 하는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 단돈 1코페이카라도 아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의 근검 절약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매일 밤마다 차 마시던 것도 그만 두고, 밤에도 촛불을 켜지 않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하숙집 주인 여자의 방에 가서 했다. 신발 뒤축이 닳지 않도록 하기 위해 뒤꿈치를 들고 걸어다닐 정도였다.
사실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나중에는 저녁 식사를 굶는 데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대신 아카키의 마음 속에는 머잖아 갖게 될 외투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 희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의 삶은 궁핍하면서도 어쩐지 뭔가 풍요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삶의 반려자가 생긴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드디어 아카키가 외투를 장만하는 날이 왔다. 아카키는 재봉사에게서 외투를 받아 온 후 무슨 축제라도 되는 듯 기쁜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정말이지 이 날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가장 장엄한 축제날이었다. 그는 매우 행복한 기분이 돼 집으로 돌아와 황홀한 눈으로 외투를 바라봤다.
뜻밖의 사건
그런데 새 외투를 입은 첫날 밤, 아카키는 과장의 명명일 파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적이 드문 거리를 지나게 됐다. 새 외투를 입은 아카키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문득 아카키 앞에 수염을 기른 강도들이 나타나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건 내 외투야.”
아카키는 완전히 얼이 빠졌으나, 몇 번 주먹에 맞았다고 생각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외투는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카키는 바로 경찰서장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겨우 외투 따위를 찾으려는 아카키의 소원은 경찰서의 권위 앞에서는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묵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어느 유력한 인물을 찾아가 진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아카키는 그렇게 해서 어느 “유력한 인물”을 찾아간 것이다. 힘겹게 그 유력한 인물을 만난 아카키는 외투를 다시 찾게 해 주십사 하는 청을 있는 힘을 다해 설명했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고관은 아카키의 청이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걸 모르나? 여기가 어딘 줄 아나, 응? 그런 것은 먼저 사무과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그 진정서가 과장과 국장을 거쳐서 비서관에게 가야 하는 게야. 그러면 그 비서가 검토를 한 후에야 나한테 넘어오는 거야. 자네는 지금 누구하고 얘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나? 내가 누군 줄이나 아냔 말이야, 앙?”
아카키는 완전히 당황해서 유력한 인물의 방을 빠져나왔다. 정신이 나간 아카키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으며, 결국 심한 열병을 앓게 되었다. 그 열병이 무서울 정도로 아카키를 괴롭혔기 때문에, 결국 불쌍한 아카키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페테르부르그의 거리는 아카키라는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가 죽은 후, 페테르부르그 거리에는 밤마다 관리의 모습을 한 유령이 나타나 외투를 찾아 헤맨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이다. 그 유령은 외투 모양을 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벗겨간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어느 날 이른바 그 ‘유력한 인물’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그 유령을 만나게 됐다. 썩은 시체 냄새를 풍기던 그 유령이 “드디어 네놈을 만났구나. 네 외투가 필요해!”하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완전히 겁에 질린 유력한 인물은 외투를 벗어 던지고 집으로 도망쳐 왔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유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페테르부르그에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고 수군대고 있다.
초상화
페테르부르그의 가난한 화가 차르트코프는 어느 날 미술상 가게를 지나다가 낡은 초상화 한 점을 사게 됐다. 그것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여위었으며 청동색 얼굴을 한 노인의 초상화였다. 노인의 얼굴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으며 두 눈은 타는 듯한 데다 기괴한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초상화를 본 사람들이 뒷걸음칠 정도로, 노려보는 듯 무서운 눈이었다.
그림을 사서 돌아온 차르트코프는 노인의 무서운 눈 때문에 꺼림칙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차르트코프가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초상화의 노인이 정말로 살아있는 듯 차르트코프를 똑바로 노려보는 게 아닌가. 그는 심장의 고동이 멎는 듯했다. 그때, 그림 속의 노인은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정말로 액자 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러더니 옷 주름 아래서 엄청난 양의 금화가 담긴 꾸러미들을 꺼냈다. 차르트코프는 공포 속에서도 그 꾸러미 중 외따로 떨어진 것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노인은 나머지 꾸러미들을 집어 다시 액자 속으로 돌아갔다.
눈을 뜬 차르트코프는 무서운 꿈이라고 생각했으나, 곧 노인이 두고 간 금화 꾸러미를 발견하고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난 돈을 손에 넣은 차르트코프는 당장 호화로운 방을 구하고 값비싼 화구(畵具)들을 구입했다. 게다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고 싶은 욕심이 생겨, 유명한 신문사 발행인에게 뇌물을 주고 자기 기사를 싣도록 청탁했다.
차르트코프는 곧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수많은 귀부인들이 초상화 제작을 의뢰해 왔다. 차르트코프는 실물보다 훨씬 더 예쁘게 그림을 그려줘 온 도시에 명성을 얻은 유행 화가가 됐다. 그의 그림에 어떤 예술적 고상함도, 예술적 감흥도 남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르트코프는 어느 전시회에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그림을 보게 됐다. 그는 그 그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느꼈다. 그는 그때부터 명화라는 명화는 몽땅 사들여 광포하게 찢어 버리는 행각을 시작했다. 그는 완전히 절망해 초상화의 노인이 남긴 돈주머니 때문에 자신이 파멸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발작적인 상태에서 초상화의 환상만을 보게 되었다. 결국 그는 무서운 고통 속에 숨을 거뒀으며, 그의 막대한 재산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 초상화 그림의 내력이 밝혀진 것은 어느 그림 경매장에서였다. 그 이상한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을 받고 있을 때, 한 사내가 그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콜롬나라고 하는 지역이 있습니다만, 그곳에 한 고리대금업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모두 이상한 운명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불행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선량한 사람이 갑자기 사악해지고 탐욕스러워진 끝에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고리대금업자를 보면 ‘악마다, 틀림없는 악마다!’하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화가였던 내 아버지 앞에 바로 그 고리대금업자가 나타나 초상화를 의뢰했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무척이나 마음이 곧고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리대금업자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무서운 느낌이 들게 되었습니다. 고리대금업자는 그 후 곧 죽었으나, 그 악마의 영혼이 깃든 초상화는 남아 내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15년 전에 사라진 그 초상화가 바로 저......“
사내가 말을 멎고 아까 그 이상한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미 그 초상화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그 악마의 초상화는 다시 사라진 것이다.
<페테르부르그 이야기(Петербу ргские повести),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