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어스(허미아의 아버지) 공작님, 제 딸 허미아가, 하도 속을 썩여서 하소연을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드미트리어스(처음에는 허미아를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는 아테네 귀족 청년)는 제가 결혼 승낙을 한 청년입니다. 그리고 라이샌더(허미아를 사랑하는 아테네 귀족 청년)는 제 딸의 마음을 온통 홀려버린 놈이지요. 라이샌더는 마음이 여린 제 딸에게 갖은 엉큼한 수작을 부려 배은망덕한 불효자식을 만들었습니다. 자비로우신 공작님, 제 딸 허미아가 공작님 앞에서 드미트리어스와의 결혼을 거부한다면, 아테네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비의 특권을 허락해 주십시오. 딸년은 제 소유이오니 제가 제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말입니다....
허미아 (라이샌더를 사랑하는 아테네의 귀족 처녀)공작님, 제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순결과 영혼을 바치며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가시로 보호받으며 향기를 뿌리다가 도도히 홀로 시드는 장미로 살다 가겠습니다. 테세우스 (아테네의 공작)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라.... “
『한여름 밤의 꿈』은 사랑의 변덕스러움을 풍자한 희극이다. 아테네의 법을 피해 사랑의 도피처인 숲으로 도망친 젊은 연인들은 한바탕 꿈같은 이야기를 펼친다. 셰익스피어는 권위 · 규율 · 인습이 지배하는 도시 아테네와 자유 · 젊음 · 신선함이 뿜어나오는 판타지의 세계인 숲을 대비시키며, 두 쌍의 연인들이 한여름 밤의 더운 열기 속에서 맹목적인 격정에 빠져드는 과정을 엮어낸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사랑의 상대자를 마구 바꾸며 물불을 못 가리는 우스꽝스러운 사랑의 엇갈림은 숲속 요정들의 마법 때문이다. 요정들은 숲에서 지쳐 잠든 젊은 연인들에게 사랑의 묘약인 꽃즙을 잘못 바르는 실수를 저질러 사랑을 어긋나게 만든다. 하지만 다시 해독약을 발라 상황을 바로잡는다. 한여름 밤, 요정이 벌인 사건은 인간에게는 단지 꿈속에서의 일로 기억될 뿐이다. 두 쌍의 연인들은 사랑의 시력을 회복하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가 행복한 결혼을 한다.
“허미아 어여쁜 헬레나(드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아테네의 귀족 처녀), 어디 가는 길이니? 헬레나 내가 예쁘다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마! 드미트리어스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네 눈은 북극성 같고, 네 혀는 목동의 귀에 속삭이는 종달새보다 더 아름다운 달콤한 노래 같아. 병은 옮는다는데, 아름다움도 옮을 수 있다면! 너처럼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네 것이 된다 해도 드미트리어스만 빼고 다 네게 줄 수도 있으련만. 허미아 헬레나, 걱정마. 그인 이제 내 얼굴을 볼 수 없을 테니까. 라이샌더와 난 이곳을 떠나기로 했어....
드미트리어스 제발 날 따라다니지 마시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았소? 그런데 라이샌더와 허미아는 어디 있는 거요? 난 라이샌더 그 놈을 죽일 생각이지만, 허미아는 날 말려죽이고 있소. 헬레나, 당신은 이 둘이 숲속으로 도망쳤다고 말했지. 여기까지 따라오긴 했는데 나의 허미아를 찾을 수 없으니 미칠 것만 같군. 어쨌든 당신은 가시오. 더 이상 나를 따라다니지 말고.헬레나 당신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차가운 자석 같은 당신께서 말이죠. 당신이 끌어당기는 것은 쇠가 아니라 강철같이 진실한 제 마음이에요. 당신이 그 자력을 거둬보세요. 그러면 제가 당신을 쫓아다닐 힘도 사라지고 말 거예요. 드미트리어스 내가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말이오? 나는 당신에게 분명히 말했소.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이오....
드미트리어스 당신은 자신의 정숙함을 의심받게 만들고 있어. 감히 마을을 떠나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내 손에 자신을 맡기거나, 야밤을 틈타든가 인적이 드문 곳을 이용하려는 음흉한 의도에 귀하고 소중한 자신의 정조를 맡기고 있으니 말이야. 헬레나 당신은 그럴 분이 아니니까 안심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그건 밤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전 지금이 야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게다가 이 숲에 아무도 없이 저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요, 당신은 제게 온 세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저의 온 세상이 이곳에서 절 보고 있는데, 어떻게 제가 혼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드미트리어스 일일이 대꾸하고 있을 순 없어. 난 가겠어. 기어코 쫓아오겠다면 맘대로 해. 그렇지만 숲속에서 당신에게 못된 짓을 하지 않으리라 장담은 못해.헬레나 그래도 난 당신을 따라갈 테야. 내가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는다면 그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일 거야....
오베론 (오베론, 퍽 등장)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느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진실한 연인의 눈에 사랑의 묘약을 발라주다니. 네 녀석의 실수로 인해 거짓된 연인의 마음이 참되게 바뀐 게 아니라, 참된 연인의 마음만 변했구나. 퍽 이제 운명의 여신에게 맡길 수밖에요. 진실한 연인은 백만 명 중 한 명밖에 없으며, 맹세란 깨어지게 마련이 아닙니까? 오베론 이 숲속을 바람보다 빨리 달려 다니며 아테네의 처녀 헬레나를 찾아내도록 하라. 그 처녀는 상사병에 걸린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 싱싱해야 할 젊은이의 피가 사랑의 슬픔으로 말라버린 탓이니라. 환상을 일으켜서라도 그 처녀를 이곳에 데려 오너라. 그 처녀가 올 때까지 난 이 청년의 눈에 마법을 걸어놓을 생각이다....
드미트리어스 (잠에서 깨어나 다가온 헬레나를 처음 본다) 오, 헬레나! 나의 여신, 나의 요정이여! 완벽하고도 성스런 님이시여! 그대의 두 눈을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으리. 수정도 그대의 영롱한 눈동자에 비한다면 진흙더미에 불과하고, 아름답게 무르익은 그대의 앵두같은 입술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는구려! 헬레나 아! 분하고 기가 막힐 뿐이로구나! 이젠 두 사람이 작정을 하고 손을 잡았군요. 나를 조롱하는 걸로 재미를 보려고요. 당신들이 신사라면 이렇게까지 나를 모욕하지는 않을 거예요.
테세우스 여보게들, 잘 잤는가? 새들도 제 짝을 찾는다는 성 밸런타인이 지났는데 이 산새들은 지금에서야 짝짓기를 시작하는 건가? 라이샌더 공작님 용서해주십시오. (연인들 무릎을 꿇는다.) 테세우스 괜찮다, 다들 일어나라. 너희 두 사람은 서로 원수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말야. 증오가 불신에서 멀어져 증오하는 사람 곁에서 잠이 들고 원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정겨운 조화의 세계가 어떻게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라이샌더 공작님, 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다는 말씀밖엔 못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맹세컨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드미트리어스 공작님, 실은 아리따운 헬레나가 제게 이 두 사람의 야반도주, 이 숲으로 도망가려는 계획을 뀌띔해 줬지요. 그리고 저는 격분해서 이 두 사람을 쫓아 여기까지 왔고 헬레나는 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저를 따라온 거구요. 그러나 공작님, 무슨 힘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 분명 무슨 힘 때문이기는 한데 - 공작님, 저는 원래 허미아를 만나기 전 이미 헬레나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병든 사람처럼 헬레나란 음식을 싫어하게 되었는데 건강을 되찾고 보니 원래의 입맛도 되살아나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그 음식을 원하고, 사랑하고,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것에 충실하려 합니다. 테세우스 아름다운 연인들아, 운 좋게도 다들 잘 맺어졌구나.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하자. 이지어스, 난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겠네. 이 두 쌍은 곧 우리와 함께 신전에서 백년가약을 맺도록 하겠네. 벌써 아침도 꽤 지났으니 계획했던 사냥은 제쳐두고 함께 아테네로 돌아갑시다.“
테세우스 아테네의 공작
히폴리타 아마존의 여왕, 테세우스의 약혼녀
이지어스 허미아의 아버지
허미아 라이샌더를 사랑하는 아테네의 귀족 처녀
라이샌더 허미아를 사랑하는 아테네 귀족 청년
드미트리어스 처음에는 허미아를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는 아테네 귀족 청년
헬레나 드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아테네의 귀족 처녀
오베론 요정의 왕
퍽 오베론의 장난꾸러기 요정
특히 멘델스존은 극음악인 <한여름 밤의 꿈>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환상적이고 괴이한 시적 여운에 감흥을 느껴 만들었다고 한다. 발랄한 요정의 세계와 몽환적인 숲속의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결혼 행진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진정한 사랑의 길은 평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감칠맛 나는 표현으로 제자리를 찾는 사랑의 여정을 드러낸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비극과 견주었을 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비극은 개인의 과오 또는 어리석음을 정의라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 징벌하며 도덕적 문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희극은 인간의 과오 또는 어리석음을 놓고 갈등을 겪지만 그것이 어느 특정 인물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범할 수 있는 인간 공통의 취약점임을 인식하게 하며 그것을 통해 웃음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인간관계에서의 화해를 통해 행복한 결론으로 끝나는 조화의 세계다.
『한여름 밤의 꿈』의 현대적 의의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당대에 부상하던 젠더(gender)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희극이라는 장르속에 어느 작품보다도 훨씬 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점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6세기 후반의 영국은 국가적 부흥기였고, 유럽의 르네상스 여파가 강하게 작동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 사회의 제반 양상들도 요동쳤다. 중세 봉건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의 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의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이 번성했다. 그리고 그 저변에 흐르고 있던 이념적 변동 양상이 바로 젠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의 와해조짐 등이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지켜오던 질서체계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횡포가 심한 군주나 부모에게 반항하려는 신하들과 자녀들이 간혹 생겨났다. 셰익스피어는 런던에서 이에 따른 문화적 분위기와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을 작품 곳곳에 녹여내며 심리 반응을 잡아내었다. 이 작품에서 젊은 아테네 귀족 여성이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며 사랑의 도피를 선택하는 사건은 그러한 심리 반응의 표현이다. 부모와 사회의 권위가 지배하는 아테네라는 도시의 합리적이고 질서잡힌 세계로부터 숲속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도 질서체계의 흔들리는 변동 양상을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표현은 참으로 달콤한 것 같다. 사랑 할 때는 마치 시인이 되은 것처럼 읊조리고 그 열기가 식으면 이성을 찾게 된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사랑의 변덕스러움을 노래하였고 숲속요정들의 등장은 흔히들 말하는 정신을 잃고 귀신에 씌웠다는 비유와 흡사 하다고 할까. 셰익스피어는 대단한 언어 마술사 같다는 느낌이다. <한여름 밤의 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