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한국 아빠!
산업화 시대엔 돈을 잘 벌어 오면 좋은 아버지였다. 당시엔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안 하면 이상적인 아버지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컨대 외도를 하지 않고, 도박이나 술을 많이 하지 않고,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좋은 아버지였다. 아이들과 가끔 나가 외식을 하거나 공놀이라도 하면 단숨에 최고의 아버지로 등극했다. 그 시절엔 누구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일하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일에 지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밀함을 보여 줄 여유가 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집안의 중심이자 절대 권력의 소유자였다. 아버지의 말 한 마디는 거의 법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의사와 맞지 않을지라도 무조건 따랐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상당수의 아빠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이 보고 자란 아버지의 모습과 시대가 원하는 아버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공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외적인 성공보다는 가족 간의 유대와 친밀감이 더 강조되는 시대다. 우리 세대의 아빠들은 절대 권력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막상 자신은 육아와 가사 일에 동참하길 강요받는다. 자신은 정작 별로 받아 본 적이 없는 남성들이, 아이와 즐겁게 놀아 주는 가정적인 아빠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40대 남성들은 가정보다는 사회에서의 성공에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공한 삶, 가족을 위한 희생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자란 아빠들은 가정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야 하는 오늘날의 역할이 낯설다. 그래서 주말에 가족과 다함께 외식을 하는 것으로 그동안 못 놀아 준 것을 만회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이나 파스타를 사주고 오는 길에 공원에서 조금 놀아 주면 즐겁고 뿌듯하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해낸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시간을 돈으로 때우려는 모습, 마치 의무 방어전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자녀들과의 감정적인 교류가 어색한 우리시대 아빠들의 자화상이다.
유태인 가정의 중심은 아빠다. 아이들은 아빠를 흉내 내며 배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유태인의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다. 이때는 일을 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을 멈추고 안식일을 엄격히 지킨다. 그 시간을 이용해 평소 일 때문에 마주하기 힘들었던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아빠는 자녀를 한 명씩 방으로 불러 일주일 동안 공부한 것,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이야기한다. 보통 30분 내외지만 아이들에게는 일주일을 정리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아빠와 감정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주중에 바쁜 업무에 치인 한국 아빠들은 주말 동안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바쁘다.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 등산이나 낚시와 같은 자신의 취미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아빠는 아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다리!
“아들에게는 세상의 미래가 모두 들어 있다. 엄마는 아이를 품속에 꼭 안아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아빠는 아이를 가장 높은 언덕으로 데리고 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도록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다이아몬드의 책 『사랑한다 아들아』에 나오는 마야 인디언 속담이다.
엄마의 사랑은 아들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지녔다. 반면 아빠의 자극은 아들을 바깥세상으로 뻗어 나가게 하는 원심력을 지녔다.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안정감을 제공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면, 아들이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빠의 역할인 것이다. 아빠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아들에게 자극을 주어 세상에 나가도록 해야 한다.
어린 아들은 무엇이든 일단 하고 본다. 처음 접하는 세상이 너무 신기해 정신없이 헤집고 다닌다.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을 탐색하러 나갈 때 아들은 부모가 보이는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모가 보여 주는 조바심, 짜증, 불안 따위를 금방 감지하는 것이다. 아들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음식을 주는 부모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모의 반응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엄마는 아들의 행동을 제지하게 된다. 이때 아빠가 적절히 아이를 풀어 주지 않으면 도전과 탐험 정신을 잃고 수치심과 열등감에 빠질 수 있다. 아빠는 아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한번 해보렴” 하고 격려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된다”거나 “ 남보다 잘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금물이다. 새로운 도전을 과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모험거리로 즐길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들 입장에서 아빠는 힘이 셀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아들은 아빠를 우러러보고 존경한다. 무한한 능력을 가진 아빠가 자신을 돌봐 준다고 느낄 때 아들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진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빠처럼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들은 자신을 믿어 주고 “잘하고 있구나”라고 칭찬해 주는 아빠, 아직은 어리고 모든 것이 미숙하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빠를 원한다
‘자상한 멘토형’--말 그대로 넓은 이해심과 리더십을 겸비한 경우다. 사랑과 훈계를 적절히 사용하고 아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실패할 경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기보다 아들의 생각을 존중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아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지원한다. 심리학자 스테판 폴터의 다섯 가지 아버지 유형(성취지상주의형, 시한폭탄형, 수동형, 부재형, 멘토형)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은 아빠가 키워라”에서 일부 요약 발췌, 이충헌 지음, 글담>
▣ 저자 이충헌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우는 세 아이의 아빠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의학박사이면서 정신과 전문의다. 정신과 전문의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뒤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KBS 의학전문기자로 ‘9시 뉴스’와 ‘KBS 라디오건강 플러스 이충헌입니다’를 통해 유익한 건강 정보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들은 아빠가 키워라』, 『성격의 비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