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의 어느 오후에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렸습니다. “누주드, 너 이제 곧 결혼한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습니다. 집안 사정은 해결되지 못할 만큼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지역 사무소에서 일을 잃은 이래로, 아버지는 한참이 지나도 일을 전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세는 늘 밀렸고, 집주인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우리를 내쫓겠다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지경에 내몰리자, 오빠들은 시시한 떠돌이 장사꾼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즈음 서른 살쯤 되는 남자가 아버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두 가족이 한 가족이 되면 어떨까 하고 왔습니다” 남자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에즈 알리 타메르(Faez Ali Thamer)라고 했고, 차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도 원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카르지에 살았고, 새로운 아내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수락을 했습니다. 언니들처럼 순서에 따라서, 결혼을 해야 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반대를 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말 한마디도 없이 그는 나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둬 주세요!” “넌 내 아내야! 그것도 오늘부터, 그걸 결정하는 건 나야.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들어야 해.”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서 똑바로 일어서서는 도망칠 준비를 했습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그게 문제였습니다.
(중략) “가 주세요! 아버지에게 말하겠어요!”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다시 한 번 발버둥치며 내가 한탄의 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뭐든지 다 말해도 돼. 네 아버지가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한 사람이니까. 너를 내 아내로 주겠다고 해준 건 네 아버지야.” “이럴 권리가 없어요!” “누주드, 너는 내 아내야!”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그랬더니 그가 비웃음을 날렸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넌 내 아내야. 이제부터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할 의무가 있어! 알아들어?” 그는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해가 지기 바로 전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밤이 내리면 그 일이 또다시 시작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때립니다. 그러고는 몽둥이를 듭니다. 그 천둥, 그 번개, 계속되고 계속되는.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북돋아 줍니다. “아직 더 세게 때려야 돼! 말을 들어야지! 그 아인 네 마누라다!” 매일 등에 멍이 새로 생겼고, 팔에 상처가 새로 생겼습니다. 배는 불에 덴 듯 따끔거렸습니다…. 나는 더덕더덕 더러움이 붙어 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혼자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자였습니다.
밤과 낮이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열흘, 스무 날, 서른 날? 정확하게는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저녁이면 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밤, 그가 내게 그 추접한 짓을 하려고 올 때마다, 잠에 들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낮이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미아가 된 채로, 산산이 조각난 채로. 무력해진 채로. 나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친정이 있는 사나가 그리웠습니다. 학교도 그리웠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친정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하며 울었습니다. 살얼음판 같은 생활에 어떤 수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내가 우는 소리에 못 이겨 집에 갔다 오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네 남편을 떠난다는 얘기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사나에 갔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돌아왔다는 환희는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어머니, 그분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늘을 향해 팔을 들어 올리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말았습니다. “사는 게 다 이런 거란다. 누주드, 모든 여자가 거쳐가야 하는 일이지. 우린 모두 같은 일을 겪으며 살았어…. ” 아버지는 단칼에 잘라 말했습니다. “이건 샤라프(Sharaf, ‘명예’라는 뜻으로 아랍 문화권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덕목)에 관한 문제야. 무슨 얘긴지 알겠니? 네가 만약 남편과 이혼을 한다면, 내 형제들과 친척들이 너를 죽일 거야! 모든 것에 앞서 명예가 있는 법이야. 명예! 알아듣겠어?” 아니오, 알아듣지도 못했고, 알아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내게 한 나쁜 짓뿐만 아니라, 내 가족조차 그의 편을 들다니요. …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탈출하고 싶다면, 기댈 곳은 내 자신말고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찾으러 오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도, 오빠들도, 삼촌들도 내 말에 거의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주는 귀 하나를 찾겠다는 일념에 모든 문을 두드려 보겠다는 결심으로, 나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도울라 엄마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도울라 엄마는 항상 인내심으로 넘쳐 나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여운 여인은 만신창이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늦은 나이인 스무 살에 결혼한 그녀를 아버지는 돌보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의지할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삶이 웃음을 지어 준 적이 없던 이 여인은 더할 수 없이 가진 것이 없음에도, 본능적인 애정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갔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그녀에게 다 열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바짝 다가앉으면서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누주드 ….” 그녀가 가만히 말했습니다. “아무도 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법원에 가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알기로는 법원만이 네 이야기를 들어줄 유일한 곳이야. 판사님을 만나겠다고 부탁해보렴 ….” 그 순간을 지나면서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한층 분명해졌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돕고 싶지 않다면, 문제를 풀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도울라 엄마를 꼭 껴안으며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누주드?” “네?” “이거 받아라. 도움이 좀 될 거다.” 그녀는 주섬주섬 200리알(한화로 환산하면 약 1,300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줬습니다. 그날 아침 근처 교차로에 나가 구걸해서 얻은 돈 전부를 탈탈 털어서 준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도울라 엄마, 고맙습니다.”
(중략)방청석으로 들어서는데 카메라가 부서져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전율이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알아봤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괴물을 알아봤습니다…. 검은색 모자와 국방색 제복을 입은 군인 두 명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괴물은 분노한 기색이었습니다.
(중략) “아닙니다!” “때렸는가?” “아닙니다…. 저는 폭력으로 대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나는 샤다의 아바야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나는 어떤 말이든 해야 했습니다. “거짓말이예요!” 판사가 종이 위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 있었습니다.
(중략)마침내 가지 판사가 평결을 내리며 나를 구원해주었습니다. “이혼을 선언합니다” 이혼을 선언합니다!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달리고 싶고, 꽥꽥 소리를 지르고 싶은 갈망이 갑작스럽게 솟아났습니다!
<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알리, 델핀 마누이 지음 ,바다출판사 >
▣ 저자
누주드 알리 (Nojoud Ali) 올해 11살의 예멘 소녀이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카르지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11남매 중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2008년 4월, 그녀의 나이 겨우 10살 때 있었던 강제 결혼과 목숨을 건 이혼 소송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혼 후 ‘세상에서 가장 어린 이혼녀’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많은 아랍권 소녀들이 누주드의 용기에 자극을 받아 이혼 소송 중이며, 이혼 승소 판결을 받아낸 소녀들도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2009년 3월, 예멘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만 17세 미만 소녀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강제 조혼 폐지 법안’은 온전히 누주드 용기의 결과이다.
이 책은 예멘에 사는 10살 정도의 평범한 시골 소녀 누주드에게 일어난 실화를 중동 전문 기자였던 프랑스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구술을 토대로 쓴 것이다. 2008년 2월, 초등학교 2학년이던 누주드는 학교를 그만두고 지참금을 받은 아버지에 의해 스무 살 연상의 신랑과 강제로 결혼한다. 예멘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는 아버지가 딸을 사춘기가 되기 전에 결혼시키도록 강요해도 된다는 내용이 없는데 ‘빈곤, 교육의 부재, 지역 문화가 뒤섞인 결과’ 이런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혼 제도가 중동 지역에서 관습적이고 정상적인 것처럼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어린 소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경험한 어른의 세계는, 작은 몸과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구타과 성폭행이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누주드가 보낸 두 달의 시간은 악몽과 폭력에 갇힌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