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일곱 가지의 주된 죄악!

[중산] 2010. 11. 3. 16:56

히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서는 제일 먼저 분노가 눈에 띈다. 분노는 부질없는 파괴의 원동력으로 나타나 있다. 분노와 같이 파괴적인 죄악의 모습은 교만의 장면에서도 비유적으로 나타난다. 교만은 허영에 들떠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인의 형태로 표현된다. 여인과 똑같은 계층의 사람, 즉 상류층의 귀족들이 방탕에 빠져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만의 장면에는 신앙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는 성직자 한 명이 안락한 난로 앞에 잠들어 있다. 게으르게 퍼질러 있는 모습이 꼭 자신의 발밑에 있는 작은 하얀 강아지와 같은 꼴이다. 그 다음에는 폭식의 장면이 이어진다. 이미 비정상적으로 뚱뚱한 남자가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을 마구 집어 먹고 있다. 그의 옆에는 역시 상당히 살이 찐 한 아이가 음식을 집으려는 그를 거칠게 방해하고 있다.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동물적인 두 장면은 웃음을 자아낼 지경이다.

 

물욕과 탐욕을 나타내는 다음 장면에도 다른 그림들과 같이 회화적 요소가 없다. 보리수나무 밑 벤치에 부패한 한 판사가 앉아있다. 가련한 청원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온갖 비굴한 몸짓을 다해 자비를 구한다. 하지만 판사는 이러한 애원을 거절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막대기로 그 가엾은 이를 위협하고 있다. 판사는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손을 뒤로 뻗어 다른 청원자가 내민 동전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청원자는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타락의 장면에서는 지독한 구두쇠의 모습도 표현돼 있다. 부패한 판사는 자신이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나눠줘야 할 것은 내놓지 않는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무것도 내놓지 않음으로써 재화의 교환이 중단돼버린다. 한 쪽에서 넘치면, 다른 한 쪽은 말라붙게 마련이다. 결국 정의를 갈망하는 자는 고사할 지경이 된다. 재화의 불균형한 분배라는 주제는 질투 장면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방패로 장식된 좋은 집에서 한 중년 부부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바로 귀족과 그의 부유함의 형체로 나타나는 고귀함이다.

 

이 일곱 가지의 주된 죄악들과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추진력을 연결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너무나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자아의 절대화이다. 결국 분노, 오만, 방탕, 태만, 폭식, 탐욕 그리고 질투는 단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변형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 죄악들은 모두 인간애와는 거리가 멀고, 다른 사람이나 그 어떤 것을 위해 한 치도 내놓을 수 없는 배타성으로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모든 악행의 배후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품위 있는 예의법칙은 생각할 수도 없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끝없는 이기주의가 버티고 있다. 이 거리낌 없는 자기중심적 삶은 정도와 균형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는 신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가치 전도이다. 생전에 자신이 잘못된 가치를 좇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자들은 그 교훈을 후생에서, 즉 이미 너무 늦은 때에 배우게 된다. 전 세계가 질곡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죄악의 힘을 물리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회전 그림에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 있지 않다. 이 그림이 반교권적인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해도, 교회의 성격이 모호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악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악을 꾸준히 위협하는 그 힘은 바로 인간의 영혼 안에 살아있다.

 

보쉬(1450-1516?)는 네덜란드 태생으로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보쉬는 르네상스 무렵 플랑드르 지방(오늘날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다. 그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대부분 인간의 타락과 지옥의 장면을 다루었는데, 이는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소름끼치도록 끔찍하여서, 그는 ‘악마의 화가, 지옥의 화가’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창의력은 오히려 인간에 대한 냉철한 관찰에서 나온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쾌락의 정원>을 통해 이를 분석했다.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 활동을 시작한 보쉬의 무대는 중세시대로 기독교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시기였다. 서양 화가들의 작품활동이 기독교의 입김에 큰 영향을 받았던 시절 그는 <쾌락의 동산>으로 기독교 정권에 강하게 맞섰다. 그의 그림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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