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나이 들어 음악에 홀리자!

[중산] 2010. 12. 9. 08:54

나이 들어 음악에 홀리자!

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있을까? 인간은 언제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까? 음악의 힘은 인간에게 강력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히 청각적이고 정서적인 일이 아니라, 운동 근육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니체는 근육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박자를 맞춘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는 표정과 자세에도 음악의 곡조 속에 들어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실제로 음악은 우리 뇌에서 언어보다 넓은 부위를 차지한다. 요컨대 인간은 음악적인 종(種)이다.

 

음악과 우울증

로버트 버튼은 『우울증의 분석The Anatony of Melancholy』에서 음악의 힘에 대해 길게 논의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젊은 시절 우울증이나 무쾌감증에 빠질 때마다 음악만이 이를 극복하고 잠시나마 행복의 감정과 살아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밀이 겪어야 했던 우울증은 아버지가 세운 무자비한 교육 방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밀이 세 살 때부터 지적인 연구와 성취를 끝없이 요구했으며 아들의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이런 필요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어린 신동은 어른이 되자 음악을 제외한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밀은 음악을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 아니어서 단지 쾌활하고 발랄한 선율을 좋아했고 모차르트와 하이든, 로시니를 모두 즐겨 들었다. 음악 레퍼토리가 바닥이 나서 의지할 음악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두려움이었다.

 

치매와 음악 치료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500명 정도 되는 신경 질환 환자 가운데 절반이 이런저런 종류의 치매를 앓고 있다. 원인으로는 뇌졸중, 대뇌 저산소증, 독성 약물이나 신진대사에 따른 기형, 뇌외상이나 감염, 전측두엽 퇴화, 그리고 가장 흔한 원인으로 알츠하이머병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은 병이 진행됨에 따라(이 과정은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다) 자신이 가졌던 많은 능력을 잃는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으로 기억상실이 있고, 이는 심각한 기억상실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런 다음 언어의 손상이 일어나고, 치매가 전두엽에 이르면 판단력이나 통찰력, 계획할 수 있는 힘 같은 더 미묘하고 심층적인 능력이 상실된다. 마침내 알츠하이머 환자는 자신의 상태, 특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 상태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인식 내지 마음의 측면을 일부 잃는 것을 가리켜 자아의 상실이라 할 수 있을까?

 

실어증과 음악 치료

 

새뮤얼 S.는 육십 대 후반에 뇌졸중을 앓고 나서 심한 표현성 실어증을 보였다. 2년 뒤 언어 치료를 열심히 받았지만 단 한마디도 되찾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음악 치료사인 콘체타 토메이노가 어느 날 병원 밖에서 그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올 맨 리버 Ol Man River>를 감정을 실어 아주 정확하게 불렀는데 가사는 고작 두세 단어밖에 따라 하지 못했다. 콘체타는 비록 언어 치료로는 새뮤얼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며 포기한 상태였지만 음악 치료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 차례 30분씩 그를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가 노래할 때 같이 따라하거나 아코디언으로 반주를 해주었다. S씨는 금방 콘체타와 함께 <올 맨 리버>의 가사를 모두 따라했고, 이어 자기가 1940년대에 자라면서 배웠던 발라드와 노래의 가사도 불러냈다. 그러면서 점차 말을 되찾기 시작했다.

 

신경학자들은 보통 언어부위가 우세반구(보통 좌반구) 전두엽의 전 운동 영역에 있다고 한다. 이곳의 특정한 부위 - 1862년 프랑스의 신경학자 파울 브로카가 처음으로 확인한 부위 - 가 퇴행성 질환이나 뇌졸중 또는 외상으로 손상되면 말하기 능력이 상실되는 표현성 실어증이 일어난다. 1873년 카를 베르니케는 왼쪽 측두엽에서 또 다른 언어 부위를 확인했다. 이곳을 다치면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를 수용성 실어증이라 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뇌 손상이 음악적 표현이나 이해의 교란, 즉 실음악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일부 환자는 실어증과 실음악증을 모두 겪지만 실음악증 없이 실어증만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음악에 반응하는 능력은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시점까지도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치매 환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치료하는 기능은 운동 장애나 언어장애 환자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파킨슨병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음악은 확고한 리듬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굳이 친숙하거나 정서적일 필요는 없다. 실어증 환자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가사가 있고 억양이 풍부해야 하며 치료사와의 감정 교류도 필수적이다. 치매 환자의 감정과 인지력, 사고, 기억, 남아있는 자아를 자극하여 전면에 불러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존재를 살찌우고 넓히는 것, 자유와 안정감, 구조와 초점을 제공하는 것이 치매 음악 치료의 목적이다. 겉보기에는 마음이 없는 듯 멍하니 앉아 가끔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소리나 질러대는 중증 치매 환자들을 보면 과연 이들에게 이런 요구가 가능하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런 환자에게도 음악 치료는 가능한데 다른 모든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음악을 지각하고 느끼는 힘, 음악의 정서와 기억력은 한동안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맞는 종류의 음악은 그에게 방향키와 정박지 같은 존재이며, 이는 음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내 환자들을 보면서 이런 점을 계속해서 확인하며, 내게 보내오는 편지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한다.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자크는 인간의 나이를 일곱 단계로 나누어놓은 것(Seven ages of man)을 살펴보다가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나이를 본다. 하지만 심각하게 쇠약해지고 망가질 수는 있어도 아무것도 없는 완전 백지 상태인 사람은 없는 법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제2의 유아기로 퇴행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본질적인 면, 개성과 인격, 자아는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도 거의 지워지지 않는 일부 기억과 더불어 여전히 살아남는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굳건하고 광대한 신경적 기초가 있어서 개성적인 스타일이 신경계에 깊이 각인되는 것 같다. 따라서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 삶이 계속되는 한 결코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뮤지코필리아”에서 일부 요약 발췌,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

저자 올리버 색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196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수련의 과정을 수료했다.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와 브롱크스 자치구 자선병원인 베스 에이브러햄 병원의 신경과 전문의를 지냈으며, 현재는 뉴욕대학교 의학대학 신경학과 부교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신경학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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