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
집안의 공기는 온갖 미묘한 것들을 품은 창고와도 같아서, 1세제곱미터마다 1,000만 개 이상의 미세 물질들이 공기 분자에 떠받들린 채 부유하고 있다. 뾰족한 석면 섬유, 미생물들의 사체 조각, 둥그런 화학물질, 타이어가 녹으며 생긴 고무 분자들, 반짝거리는 카드뮴 덩어리들, 바다 소금, 각질, 적도에서 온 모래, 그밖에도 인간들이 무심하게도 그냥 먼지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오만가지 것이 있다. 이들이 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몇 시간 혹은 몇 주가 걸린다. 그러나 중력의 손아귀는 한시도 느슨해질 날이 없으므로 모든 것은 언젠가는, 결국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입자들은 영원히 내리는 비처럼 우리 머리 위에, 탁자에, 의자에, 책에, 책상에, 전등에, 전축에, 옷가지에, 신발에, 또한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곳, 즉 바닥에 쌓인다.
저녁 식사에 초대한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에 얼른 청소를 마치려고 남자가 진공 청소기로 굉음을 내며 바닥을 문지르면, 불편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진드기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진드기들은 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안의 이물질을 거둬들여 형성된 청소기 속의 먼지 더미 속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피부 각질들이 들어 있다. 각질이야말로 진드기의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아닌가!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진드기들은 한데 모여 머리를 파묻고 식사에 열중한다. 청소기가 계속 돌아가면 먹을 것이 더 많이 쌓인다.
고요한 듯 보이는 마룻바닥에 진공청소기가 일으키는 소동이 한 가지 더 있다. 요즘 청소기들은 대단히 높은 압력을 일으키기 때문에 빨려드는 공기와 먼지의 속도가 굉장하다.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먼지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집진 봉투에 강하게 부딪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청소기 봉투는 보통 왁스를 입힌 종이로 만들어져 있는데, 섬유 가닥들이 창살처럼 망을 이룬 형태다. 망 사이의 공간은 5마이크론 남짓인데 돌풍처럼 봉투에 몰아닥친 먼지 미립자들에게는 충분히 큰 탈출구다. 청소기 주둥이로 빨려든 먼지들이 빠른 속도로 봉투에 부딪치고는 뒤편으로 분사되어 나가버린다.
마룻바닥에 널려 있던 조그만 물질들이 공중에 보기 좋게 흩뿌려진 셈이다. 포튼 다운 생물학무기연구소(극비로 세균전 연구를 진행하는 영국의 오래된 연구소)의 한 대기 미시물리학자의 표현을 빌면, 가정용 진공청소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탁월한 미세 먼지 구름 생성기” 중 하나다. <“시크릿 하우스“에서 일부 요약발췌,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 생각의나무>
<살균한 물걸레청소가 힘들지만 흡입도 막고 확산시키지 않는 지혜로운 청소방법이라고 봐지네요!>
▣ 저자 데이비드 보더니스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년간 강의를 했다. 베스트셀러『E=mc 』을 통해 과학이론을 가장 쉽고 재미있게 쓰는 이야기꾼으로 자리잡은 보더니스는, 재치있는 발상과 기발한 묘사, 탁월한 문장력으로 어려운 과학을 현실세계와 접목시켜 풀어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해왔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2001년 출간된 이래 현재까지 가장 사랑 받는 교양과학 도서인 『E=mc 』과 『일렉트릭 유니버스』가 있으며, 『Passionate Mind』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낭아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