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연금술
우리 모두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불안정해지고 욕망이 감소할 때 우리는 이혼을 생각하거나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다. 그렇다면 결국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아닌가? 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여러 가지 재치 넘치는 대답이 있었으며, 그중의 일부는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암브로스 비에르스(Ambrose Bierce)에게 결혼은 주인 양반과 주인 마님, 그리고 2명의 노예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면 의심의 여지없이 성에 대해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젊은 연인들은 동거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시청이나 교회에서의 결혼 서약을 피하면서도 그들의 욕망을 지속하는 확실한 방편으로 이해된다.
만일 우리가 부부의 구조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부부란 두 사람 사이의 민주적 관계의 내재화를 바탕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상호 존중과 인내, 신뢰가 깔려 있다. 하지만 욕망은 자연스럽게 영원한 힘의 논리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초월하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며, 변태성욕의 경우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이나 존중, 그리고 애정과 같은 가치들이,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이면서 불연속적이고 바깥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이 있으며 금기 위반에 기반을 두는 에로티시즘이나 욕망 등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특히 오래전부터 에로스와 결혼의 영역이 분리되어왔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결혼이 욕망에는 위험지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렇지만 이 두 영역의 조화를 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쨌든 결혼이 욕망의 덮개인 동시에 욕망이 발생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며 유지되는 장소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연인들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에로스를 통해 자신들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부부 관계에서 욕망은 영원히 지켜져야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부부를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는 때가 되면 반드시 휘발유를 넣어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어느 순간 도로 한복판에 멈춰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욕망의 힘”에서 일부 요약 발췌, 빌리 파시니 지음 / 이옥주 옮김, 에코리브르>
<노루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