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희망…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덧없어져"<윤공희 대주교 부활절 인터뷰>
남보다 우월해질 때에만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잘못
48년 주교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믿음 더해달라 기도
전남 나주의 광주가톨릭대학교,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언덕 위에 단출한 주교관 건물이 서 있다. 미수(米壽)를 앞둔 윤공희(87) 빅토리노 대주교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벚꽃처럼 화사하고 인자한 미소가 한 가득이다. 61년을 천주교 사제로, 그중 48년을 주교로 살아온 윤 대주교는 여전히 "믿음을 더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에게 "죽음과 절망에 지지 말라"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24일 부활 주일을 앞두고 노(老) 대주교에게 부활의 의미를 물었다.
―다시 부활 주일입니다. 어떤 묵상을 하십니까.
"부활은 희망입니다. 영원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 주신 것들, 믿음의 근본을 다시 되새깁니다."
▲ 24일 부활주일을 앞두고 인터뷰를 가진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는“인간은 무의미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삶의 의미는 반드시, 반드시 있다”며“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그것이 구원되신 부활의 그리스도 를 믿는 믿음”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즐겨 읽는 성경 구절은 어느 부분입니까.
"루카 복음서 17장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주십시오'라고 청원해요. 저도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삶에 대한 물음, 이 세상에 대한 물음, 믿음으로도 시원하게 와 닿는 대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하느님은 전능한 분인데 왜 이 세상에 고통과 재앙이 이렇게 많은가, 그런 의문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사랑으로 나를 이 세상에 내신 내 아버지라고 믿지요."
―고통과 재앙이 계속된다는 것. 바로 이 때문에 불신자들에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문제가 벽처럼 느껴집니다.
"엠마우스로 가는 두 제자도 처음에는 영(靈)의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요.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하심을 보고 믿었어요. 그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 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오늘날까지 왔지요."
―부활이 믿음의 문제라면,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은 설득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철학적 논거를 제시할 수는 있겠지요. 이 세상 사물을 볼 때 어떻게 생겨났는가. 들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질서 있는 우주는 어떻게 생겨나겠는가. 신이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신이 없다고 하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어요. 살아 있는데, 또 살아야 하는데, 삶의 의미도 없고 모든 것이 덧없어져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학생들을 보며 사회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교육에서도 경쟁의 가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외로운 학생이 없어야 해요. 사회 전체가 남보다 우월해질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세상의 욕망만을 위해서 살 때는 그것을 이룰 가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하게 됩니다. 물질적인 삶에 의식이 갇혀버리면, 언젠가는 죽음 앞에 맞닥뜨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겠지요."
―사제로서의 삶을 후회하신 적은 없습니까.
"인간적인 수고로움은 있었지만 후회된 적은 없었습니다. 소명이라 생각했고, 그 소명대로 살며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완성해가고, 또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사제로서보다 주교로서가 어려웠지요. 책임감이 무거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도 오래 함께 일하셨지요.
"신부 때는 서로 잘 몰랐어요. 그런데 주교로서 뵈면서 참말 그분 너그러운 마음을 볼 수가 있었어요. 특별히 소외된 사람들을 늘 가까이 받아들이고 마음을 쓰는 자세 말이지요. 참 어른다우신 분이로구나,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그분도 때때로 마음의 갈등과 어려움을 많이 느끼셨어요. 시국에 대응하는 태도를 놓고 교회 내의 어려움이 있었을 때 '아, 이것도 끝날 때가 있겠지, 끝날 때가 있겠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무슨 뜻인가요.
"영원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괴로움이 언젠가 끝날 때가 있겠지'라는 것이 참 큰 위로예요. 언젠가 다 내려놓을 그때에는 하느님께로, 정말 영원의 삶으로 돌아갈 희망이 있어 현실의 어떤 어려움도 끝날 때가 있겠지 하고 이겨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는
1924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1937년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에 입학했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 성당이 문을 닫자 1950년 1월 단신 월남했다. 그해 3월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1963년 39세의 나이에 주교가 됐고, 대주교가 된 1973년 이후 제7대 광주대교구장으로 27년간 교구장을 맡았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가톨릭센터 6층 집무실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을 목격한 후 군사정권을 비판하고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노력해 ‘광주의 대부’로 불린다. 1975~81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2000년 11월 은퇴했다. 지금은 전남 나주의 광주가톨릭대 주교관에서 기도와 독서, 산책을 하며 지내고 있다.(조선일보 인용)
<윤공희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