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정의의 덫을 피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의를 찾는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때는 분통을 터뜨리거나 불안해하고, 혹은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껏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벌레에게는 공평치 않은 일이다. 자연만 쓱 둘러봐도 세상에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폭풍우, 홍수, 해일, 가뭄 어느 것 하나 불공평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이 진정 어떤 곳인가에 대한 엄정한 평가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공평해.”, “내가 못한다면 당신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어.”, “‘나더러’ 그렇게 해달라는 거야?” 노상 우리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들이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정의 부재라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자기 통제 불능 상태일 뿐이다.
정의의 요구는 인간관계에도 침투해 다른 사람들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막는다. “불공평해!”라는 외침은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 파괴적 한탄 가운데 하나다. 무언가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비교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이런 식으로 흐른다. “다들 하는데 나라고 왜 못 해?”, “네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는 건 공평치 않아.”, “나는 못하게 됐는데 왜 너는 되는 거지?”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이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탕으로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내 감정의 지휘자는 바로 그들이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지휘봉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마다 “불공평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며 타율적인 외부 지향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는 사람이다.
공평함은 외부 지향적인 개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 보라.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분명한 사실은 내가 더 불리하네 하며 아무리 징징거려봤자 긍정적인 자기 변화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적게 일하고도 더 많은 돈을 번다. 내가 더 능력 있지만 연줄이 없어 나말고 다른 사람이 승진을 한다. 배우자나 자녀의 행동은 항상 내 기대에 어긋난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저울질하는 일을 그만두고 상대가 아닌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내 앞을 턱턱 가로막으며 나를 열받게 하던 불평등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해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결코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웨인 W. 다이어 지음, 21세기북스 >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의 꼬리표를 떼라! (0) | 2011.05.30 |
---|---|
개미 역사! (0) | 2011.05.30 |
저승사자 (0) | 2011.05.25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0) | 2011.05.25 |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0) | 2011.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