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삶을 얻는 것
씌어지지 않은 세상사는 어둠에 덮여 무기억의 관 속에 잠겨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과 끝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자신의 시작, 즉 탄생의 시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죽음 또한 예견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더욱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진실을 찾아 나는 기억 속에 남은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시간여행을 떠난다.
모든 인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적막 속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방은 내게 언제나 본원적 고독을 느끼게 했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은 내 가슴을 죄는 듯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점차 내 시야로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 유모의 얼굴들이 들어오면서, 내 삶에 가족이 들어온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갔던 최초의 도시여행은 내게 어른이 되어 보았던 후푸왕의 피라미드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 설렘과 흥분, 천 리처럼 길게 느껴지는 여정 그리고, 반짝이는 검은 빛깔과 자극적 냄새의 새로 산 구두약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창살이 달린 커다란 노란색의 집 창문에 선, 죄수·도둑·살인마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봤다. 그들에게서 나는 뭔가 무시무시하지만 매혹적이기도 한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사랑한다는 것의 두려움,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쳐진다.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이였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지금 저 멀리 러시아의 벽지,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을 어머니는 내게 다시금 인간의 길과 하늘이 정한 길 사이의 간격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의식적 삶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됐다. 어느날 내 앞에 바스카코프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가정교사로서 사람의 삶에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잔혹하고도 비열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내게 예술가가 되고픈 꿈을 심어줬다.
물감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몸이 떨려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원초적인 연보라빛으로 변해가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그 하늘 한 조각은 한낮의 더운 해를 등지고, 마치 푸르름 속에서 목욕하는 듯이 나무꼭대기 사이로 비쳤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빛깔이 가진 진실로 성스러운 의미를 느끼게 했다. 삶이 내게 준 것을 되돌아볼 때 나는 이 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한 순간임을 안다. 연보라빛 푸른 하늘,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그 파란 하늘을 지금 죽어가며 이렇게 기억한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나는 내가 중세의 어느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의 성과 로빈슨 크루소는 내가 그들의 시대에 속해있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조국’을 느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또한 푸쉬킨과 고골리였다. 푸쉬킨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는 이후 내 문학수업에 영향을 줬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감각이 이끄는 대로 느끼고 행동했다. <“아르세네프의 생애(Жизнь Арсеньева)”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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