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중산] 2011. 7. 14. 18:10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계를 쇄신하는 일에 뛰어들려는 사람은 고립감과 반대, 가난, 비방에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그들은 결코 짓밟을 수 없는, 합리적인 희망을 마음에 품고 진리와 사랑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신을 지닌 인간 집단은 우선 자기 삶의 난관과 혼란을 극복하고, 다음에는 외부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혜와 희망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일, 파멸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세계보다 더 좋은 세계를 우리 마음속에 구축하는 일이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우리는 보통 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고와 영혼의 뜨거운 불길만이 우리의 지인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삼켜버린 죽음으로부터 미래 세대를 구원할 수 있다.

 

 

인간의 충동과 욕구는 창조적인 것과 소유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뉜다. 우리의 활동 가운데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조하려는 활동이 있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보하거나 계속 보유하려는 활동이 있다. 창조적 충동의 전형적인 사례는 예술가의 창조적인 충동이다. 창조적 충동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생활이 가장 훌륭한 생활이고, 소유에 집착하는 충동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생활은 가장 옹색한 생활이다. 가장 훌륭한 제도는 창조성을 최대한 조장하고, 소유욕을 자기 보호와 양립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으로 조장한다. 소유욕에는 방어적인 것과 공격적인 것이 있다. 형법에서 인정되는 소유욕은 방어적이고, 범죄자의 소유욕은 공격적이다. 형법은 범죄자보다 덜 혐오스러우며, 공격적인 소유욕이 존재하는 한 방어적인 소유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혼과 교육, 종교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지만 소유욕의 개입으로 이 세 가지 모두가 오염되어 있다. 교육은 너그러운 감정과 정신적 모험의 자극 등을 통해서 자유로운 사고와 고결한 인생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주입함으로써 현재 상태를 연장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사랑은 창조적인 것이지만 결혼한 부부 사이의 사랑은 소유욕에서 비롯한 질투심의 족쇄에 갇히게 된다. 종교는 영혼의 창의적인 통찰력을 해방시켜야 마땅하지만 대개는 본능적인 생활을 억압하고 전복적인 사고와 싸움을 벌인다. 이렇게 해서 창조적인 힘이 고취하는 희망은 차츰 사라져가고 소유의 불확실성에서 비롯하는 불안감이 자라난다. 원칙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약탈하려는 마음은 나쁜 것이고 남에게 약탈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그보다 나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두 가지 동기는 정치와 개인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한다.

 

 

세계는 삶을 증진시키는 철학이나 종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삶을 증진시킨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삶만이 아니라 다른 소중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삶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삶은 동물적인 삶이고 일체의 인간적인 가치 기준을 지니지 않을 뿐 아니라 권태감과 모든 것이 헛되다는 허무감으로부터 인간을 영원히 지켜주지는 못한다. 삶이 인간다운 삶이 되려면 인간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목적, 비개인적이며 인간을 넘어서는 목적, 예컨대 신이나 진리 혹은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에 이바지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실존 속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구현하는 점진적인 권화權化를 지향한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이와 같이 영원한 것에 대한 행복한 사색을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 뜻을 이해한 사람에게 지혜의 열쇠가 된다.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고 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파괴되고 있는 물질적 현실의 자리에 영적인 희망을 불어넣은 신의 도시Civitas Dei』라는 책을 썼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로마는 몰락하여 가축우리 같은 집들로 가득 찬 마을이 되고 말았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희망은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 인간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일, 파멸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세계보다 더 좋은 세상을 우리 마음속에 구축하는 일이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보통 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고와 영혼의 뜨거운 불길만이 우리의 지인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삼켜버린 죽음으로부터 미래 세대를 구원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버틀란트 러셀 지음, 역자 이순희 님, 비아북 >

 

 

저자 버틀란트 러셀

1872년 영국 웨일스 출생.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과 도덕과학을 공부했다. 화이트 헤드와의 공저 『수학원리를 출간하여 19세기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만들었고,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학과 철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교육,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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