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미묘함을 체험하는 법 - 가식을 버리고 순수함으로 돌아가라
무아의 경지
노자는 여섯 가지 도덕기준을 열거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마음을 가라앉혀 갓난아이처럼 욕심을 적게 할 수 있는가? 잡념을 없애 마음에 티끌도 없이 할 수 있는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겸손과 신중을 유지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을 때 지혜와 능력을 뽐내지 않을 수 있는가? 만일 이 모두를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아’의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른바 “몸과 마음을 하나로 껴안고 서로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대목은 마음속 사상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이 일치하며 자신의 영혼과 외부세계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때로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다고 변명한다. 사실 이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그저 수양이 부족한 것이다. 예로 ‘문화대혁명’ 당시 정풍에 참여했던 일부 문인은 수년 후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참회했다. “나는 ‘문화대혁명’ 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마음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사람들을 해쳤다…….” 하지만 이는 참회가 아니다. 오히려 당시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변명일 뿐이다. 만일 참회한다면 자신의 도덕적 수준을 반성해야지, 어째서 당시 환경이나 상황에 책임을 돌리는가? 과거를 변명하는 것 또한 몸과 마음을 저버리는 행위인데,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지는 자신만이 안다.
이른바 “기를 집중하여 지극히 부드럽게 하여 갓난아이가 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을 두고 기공 수련의 방법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자가 기공의 대가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참고로 옛사람들은 종종 ‘기’라는 말로 어떤 기분을 표현했는데, 예를 들면 오기, 노기 등이 그것이다. ‘기를 집중하다’란 기분을 조절하여 갓난아이처럼 하라는 뜻이다. 갓난아이는 가장 부드러운 대상이며 남을 해칠 힘도,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런데 이 구절을 모욕과 무례를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런 뜻이 아니다. 갓난아이는 모욕과 무례를 참는 법이 없다.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웃는다. 기분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표현방식은 매우 단순하여 있는 그대로를 전할 뿐이다. 어른은 배가 고프면 회사 혹은 정부 때문이라며 남을 원망한다. 하지만 갓난아이는 그저 배고픔만 전할 뿐, 다른 생각을 더하지 않는다. 노자가 갓난아이를 예로 든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갓난아이는 약하고 작아 자신을 보호할 어떤 능력도 없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강한 존재이다. 그 누구도 감히 해치지 못하며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한다. 예로 만일 누군가와 다투어 화가 난다고 그 집의 갓난아이를 때릴 수 있을까? 노자는 종종 갓난아이를 빗대어 성인을 표현했다. 성인은 갓난아이처럼 연약하게 보이지만 모두의 보호 안에 있으므로 누구도 감히 해치지 못한다. 게다가 성인은 사람에 유익할 뿐이니 그를 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른바 “어지러운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하여 어떠한 티끌도 없이 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은 잡념을 깨끗이 비운다는 뜻인데, ‘어지러운 마음의 거울’이란 희미하여 맑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머릿속의 환상, 망상, 탐욕을 비유했다. 이른바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무위(無爲)로 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말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주관적인 생각을 거두고 사무실에 앉아 나무부처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 - 합리적인 제도에 따라 행하고, 문제를 사적인 의도가 아닌 공적인 마음에서 생각함 - 가 함축되어 있다.
노자가 말한 “사상과 언행은 겸손과 공경을 유지하라”의 이치는 이해하기 쉽지만, 그 속에 담긴 분수는 가늠하기 어렵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단지 남에게 아부하거나 남이 불쾌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겸손하고 공경하는 체한다면 이는 진실하지 못하다. 진정한 겸손과 공경은 세상의 무한함과 자신의 제한된 능력을 인식하여 마음으로부터 경외가 우러나는 것이며, 타인의 고귀함과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깨달아 마음으로부터 존경을 품는 것이다.
이른바 “밝음이 사방에 이르는데 무지(無知)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인정의 세태와 사물의 규율을 통찰하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무언가를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나쁜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좋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가 넘어진 것을 보면 마땅히 일으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도를 깨달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어린아이는 넘어지며 자라기 마련이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배우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그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바라만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그러나 아이가 머리가 터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여전히 수수방관한다면, 이는 ‘무위’가 아니다. 마땅히 무언가를 해야 할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도에 어긋난다.
요컨대 노자가 제시한 여섯 문제는 모두 ‘도’에 입각했으며 ‘무위’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도를 수양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오직 그 어려움이 있으므로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후웨이홍 지음, 라이온북스>
▣ 저자 후웨이홍
고전 연구 및 성공학 전문가이다. 장기간 중국고전철학과 서양기업문화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저서로 『재복의 영웅』, 『빌게이츠경영의 지혜』, 『성공수업 15과』, 『남회근대사의 경전』 등이 있다.
▣ 역자 이은미
인하대 중문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중과 석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한국외대 통번역센터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국세청 실무단 교환방문 통역 등 다수의 통역 경험과 신성대학 관광중국어과, 가톨릭대 중문과, 베이징 연합대학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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