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다 죽다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에서 요리와 더불어 생활한 지도 어느새 3년이 지났다. 그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줄었고, 앙리가 찾아오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을 침상에 누워 지냈다. 어느 날인가 레오나르도는 바티스타가 차려준 식탁에 앉아 모든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오나르도의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탓이라고 여긴 바티스타는 기운을 북돋우는 온갖 재료들로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루는 언제나 잠시 들러서 살피고 돌아갔던 앙리가 나오지 않자 이상히 여긴 바티스타가 침실 문을 열었다. 앙리는 어둑한 방에서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레오나르도를 안은 채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 중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루지 못했으나 평생소원이었던 요리사로서의 삶만은 원없이 누리고 갔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싸가지고 온 자료들은 실로 방대한 양이었다. 비행 연구, 기하학, 해부학, 그림, 조각, 건축학, 식물학까지 그 어느 것을 선택했더라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남겼겠지만 그중 가장 원했던 것을 하며 말년을 보낸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선택했던 요리 분야는 그가 부수적으로 생각하며 창조했던 것들의 찬란함에 묻혀 유구한 세월 동안 먼지 속의 기록으로 숨어버렸다. 그토록 많은 문화유산을 인류에게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루도비코에게서 받았던 밀라노 외곽의 작은 포도밭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포도밭을 그의 요리사인 바티스타와 제자 살라이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역자 김현철, 각색 박이정님, 책이있는마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리 노트
좋은 치즈 고르는 법: 파르마 또는 로마냐에서 나온 치즈의 속이 비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그 지역에는 속이 빈 치즈를 팔아먹으려는 칠칠치 못한 상인들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흥정을 하기 전에, 치즈를 귀에 갖다대고 망치로 가볍게 두드려보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울리는 소리가 크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비법은 아그놀로 디 폴로라는 친구가 전수해준 것이다. 이 친구는 조각가로서 베로키오 작업장에서는 치즈 애호가로 이름을 얻고 있다.
이상적인 주방: 우선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항상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끓는 물도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주방 바닥은 항시 청결해야 한다. 설거지 기구, 빻는 기구, 자르거나 껍질을 벗기는 데 유용한 온갖 종류의 칼도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김, 연기, 냄새를 제거하여 쾌적한 주방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기구도 필수요건이다. 음악도 있어야 한다. 음악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더욱 기분 좋게 일하기 때문이다.
포도주와 사프란: 포도주에 사프란을 섞어 마시면 금방 취하게 된다. 입 냄새도 역겨워질 뿐 아니라 포도주 맛도 이상하게 변해버린다. 어떤 요리책도 포도주에 사프란을 섞어 마시라고 하지 않는다. 내 친구 가우디오 풀렌테가 왜 그렇게 악착스럽게 이 방법을 써보라고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그 친구가 항상 몽롱하여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내가 실수로 친구가 마신 술을 탓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 친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온갖 발가락 모둠 요리: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 레몬 세 개, 약간의 후추, 올리브 기름이 필요하다. 위에 열거한 짐승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 후추와 올리브 기름을 섞은 레몬 즙에 하룻밤 동안 담가둔다. 은근한 불에 어두운 금색을 띨 때까지 구워 딱딱하게 굳은 폴렌타에 올려놓고 먹는다. 이 요리는 우리 루도비코 어르신께서 즐겨 하시는 담백한 요리 중 하나다.
다이어트의 장점: 언젠가 이런 글을 쓴 것도 같다. 건강하게 살려면 닥치는 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저녁은 항상 모자란 듯 먹어야 한다. 꼭꼭 씹어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든 간단한 것을 제대로 익혀 먹어야 한다. 이제 우리 어르신을 살펴보자. 우리 어르신께서는 끊임없는 식탐으로 엄청나게 드신다. 게다가 한번 씹어보지도 않고 그냥 날름 삼켜버리신다. 물론 모든 법칙에는 예외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역자 김현철, 각색 박이정님, 책이있는마을>
▣ 저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의 미술가, 과학자, 건축가, 발명가, 사상가. 피렌체, 밀라노,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함. 회화에서는 엄격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인체와 공간 표현과 깊은 정신성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정점을 차지하고 예술, 인생, 인체 연구, 자연 관찰, 기계 설비 등의 많은 소묘나 각서覺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의 통일적 세계관을 전함. 대표작으로는 〈최후의 만찬〉,〈모나리자〉 등이 있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던 인물로 미술, 과학 기술, 건축, 천문, 지리, 해부, 식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천재적인 재능을 아티스트인 동시에 식도락가이기도 했다. 요리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코덱스 로마노프 Codex Romanoff』라는 소책자에 모으면서 자신이 접했던 요리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세심한 관찰은 전문 요리사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레오나르도가 요리에 대한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하던 시기(1482~1500), 이탈리아 전역의 요리는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종달새 혓바닥, 새끼 양의 불알, 살아있는 개똥지빠귀가 가득한 돼지 요리 등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진수성찬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시의 먹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귀족이나 부자들은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날개를 가진 짐승의 고기를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겨우 허기를 때우는 형편이었다.
『코덱스 로마노프』를 작성할 당시 레오나르도는 궁정연회 담당자로서 고급요리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당시 사용한 식재료 등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가 남긴 소책자와 편지 및 박물관에 소장되어진 소품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기름진 고기 요리에 오래 삶아 물컹거리는 채소와 모양 없이 구워진 빵들……. 레오나르도의 손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식탁에서 빙글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르 피에로(레오나르도의 친아버지)의 눈초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레오나르도는 의붓아버지인 아카타브리카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의붓아버지보다 그와 함께 즐기던 단 과자와 음식들이 그립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음식에 관한 한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은 함께 생활할 때면 서로의 미각을 시험하려 들었고, 가장 감칠맛 나는 단맛을 발굴해 내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았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카테리나(레오나르도의 엄마)는 빼어난 외모 덕에 명망 있는 공증인 집안의 아들인 세르 피에로의 눈에 띄어 열애에 빠졌고 계획에 없던 레오나르도를 낳았다. 그러나 세르 피에로의 부모는 그녀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졸지에 미혼모 신세가 된 카테리나는 혼자서 레오나르도를 키워야 했다. 그녀가 과자 제조업자인 아카타브리카를 만나 결혼을 한 것은 레오나르도가 다섯 살 되던 무렵이었다.
나날이 불어나는 레오나르도의 체중은 집안일에 관심조차 없는 카테리나의 눈에도 거슬릴 정도였다. 카테리나는 은밀히 편지를 써서 세르 피에로에게 보냈다. 며칠 후, 세르 피에로는 몹시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찾아왔다. 그는 몇 달 사이에 더욱 뚱보가 되어 있는 레오나르도를 한번 흘깃 보더니 곧장 베로키오(레오나르도의 스승) 공방으로 향했다. 레오나르도를 베로키오의 작업실로 들여보내며 세르 피에로는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뭐든 배워서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쌓일 때까지 여기서 나올 생각일랑 하지 말아라. 여기서 나오면 네 어머니도 나도 다시는 받아주지 않기로 했으니까.” 억지로 끌려 들어간 공방에서 레오나르도는 원치 않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베로키오의 공방 생활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수개월이 지났건만 그 문제는 아직까지 극복되지 않는 숙제였다. 대장일이나 조각, 그림에 대한 베로키오의 가르침 역시 레오나르도로서는 소화해 내기가 어려웠다. 작업에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려는 레오나르도의 시도를 베로키오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로키오에게 레오나르도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골치 아픈 제자였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아이는 어느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레오나르도는 확실히 다른 수련생들과는 달랐다. 독창적인 생각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바글거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기초가 충분히 다져질 때까지 새로운 시도는 위험하다고 믿는 베로키오로서도 그 타고난 재주만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낮에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밤이 되면 ‘세 마리 달팽이’에서 술과 음식 접시를 나르면서도 레오나르도는 호시탐탐 주방을 넘보았다. 그는 이 술집의 안주와 음식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리법만 복잡할 뿐 완성되어 나오는 음식들은 볼품이라곤 없었다. 메뉴도 고기요리 일색이었다. 왜 요리에 채소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그럼 좀 더 담백하고 맛깔스러워 보일 텐데. 왜 메뉴를 혁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똑같은 것을 몇 년씩 내놓는 걸까?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선 늘 그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보티첼리가 숨을 헐떡이며 레오나르도의 작업실로 달려왔다. “레오나르도, 지금 베키오 다리 근처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어.” 레오나르도는 붓을 내려놓고 작업복에서 팔을 빼내며 물었다. “그럼 ‘세 마리 달팽이’는?” “아마 지금쯤 모두 다 타버렸을 걸?” 그 순간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엔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거듭하던 두 사람은 작업실을 박차고 나가 술집을 지을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세 마리 달팽이’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술집을 세웠다. 상호는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었다. 술집은 레오나르도가 처음 구상했던 대로 짓지는 못했다. 비용이 턱없이 모자란 게 문제였다.
보티첼리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보강된 안주는 선도 보이지 못했다.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에 가면 안주라고 나오는 게 잇새에 끼는 멸치절임 몇 마리가 고작이더라는 소문이 피렌체 술꾼들 사이에 쫙 퍼져버린 것이다. 레오나르도와 보티첼리는 손님도 없는 술집에 앉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말았다. 두 사람의 불타는 열정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술집은 업자들의 손에 넘어가버렸다. 술집이 망하고 나서 레오나르도에겐 고전의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술집을 여느라 무리했던 탓에 빚도 남아 있었고, 생계도 유지해야만 했다. 레오나르도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성을 떠남과 동시에 피렌체를 뜰 생각이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보티첼리와 만돌린을 연주하면서 만난 음악가 미글리오로티가 배웅을 나왔다.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는 서로 부둥켜안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미글리오로티는 밀라노로 동행하기를 원했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차 대공이 받아주기만 한다면 음악가로 성공할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를 데려가기로 했다. 미글리오로티는 스포르차 대공이 받아들여주지 않더라도 밀라노에 남아 음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두 사람은 함께 피렌체를 떠났다.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