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하나이기에 아름답다

[중산] 2011. 7. 28. 12:50

 

하늘이 파랗게 갠 4월 어느날, 어느 한 지인(知人)이 칼라우레아로 히페리온을 초대하게 된다. 배에 오른 히페리온은 육지에서 맡아보지 못했던 바다 내음과 공기를 온몸으로 맡으며 항해하기 시작한다. 도착한 그 곳은 소나무 골짜기의 흐름 속에서 레몬 숲과 종려나무와 가련한 풀과 성스런 포도로 무성했다. 히페리온은 말할 수 없는 동경과 평화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기이한 힘이 히페리온을 점령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히페리온은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그 이야기는 친구 벨라르민에게 띄우는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벨라르민에게

나는 한때 행복한 적이 있었다. 벨라르민이여. 그렇다면 지금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녀와의 만남이 한순간으로 그쳤다 해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을.

 

그녀의 이름은 아름다움이다. 자네는 원하는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는가? 지금도 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느낌으로 알 수는 있다.

 

과연 그녀와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강물이 바다로 순리대로 흘러가듯이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넓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려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은 바로 내 운명적인 사랑, 디오티마 당신과 함께 내 삶은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당신을 몰랐을 때의 나날은 삶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오오, 디오티마여, 디오티마여, 그대 숭고한 사람이여!

 

 

벨라르민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잊도록 하고, 하루하루를 헤아리는 것을 그만두자. 두 개의 영혼이 이처럼 서로를 예감하는 순간에 비하면, 몇 세기의 세월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도 나는 노트라가 처음으로 나를 그녀의 집으로 안내해 주던 그때의 저녁을 그려본다. 그녀의 모친은 사려 깊고 부드러운 여인이었고, 그녀의 동생은 솔직하고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 두 사람의 태도와 말투에서, 그들이 디오티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녀가 내게 다가와, 내 귀볼에 그 깨끗한 숨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심정을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떨리는 마음을 조아리면서 어떤 말도 그녀에게 건넬 수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황혼은 우리의 이별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난 그녀에게 “편히 쉬십시오, 천사의 눈이여!” 라는 말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운명의 그날, 가슴 떨린 마음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네. 아니 난 영원히 그 마음 그대로 살 거라네.

 

어느날 디오티마가 아프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유는 어려서부터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히페리온이 간직할 수 있는 행복도 잠시였던가. 그녀와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벨라르민에게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운명의 여신이여,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깨끗한 샘물이여, 그것을 증언해 주지 않으련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다소곳이 듣고 있던 나무들과 햇빛과 에덴이여, 그녀는 내 것이 아니었던가? 생의 온갖 음조 속에서 그녀는 나와 하나가 된 것이 아니었던가?

 

나만큼 그녀의 가치를 안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그리고 나만큼 그녀의 빛을 모은 거울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가 내 기쁨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장려함에 대해 놀라지 않았을까. 아아, 내 마음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녀 곁에 있었던 마음이 어디 또 있을까. 내 마음만큼 그녀를 채워 주고, 또 그녀에 의해 채워지고, 눈썹이 눈을 위해 존재하듯이 다만 그녀의 마음을 포옹하기 위해 존재한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 두 사람은 하나의 꽃이 되었고, 우리 혼은 하나로 융합된 것이 분명하다.

 

<“히페리온(Hyperion)‘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글쓴이 최가희님>

 

저 자 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 lderlin(17701848)

          독일의 시인.

                                                                     <구절초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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