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은 형식논리와 달리 모순과 대립을 긍정하는 논리, 혹은 오히려 모순과 대립을 통해 사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를 말한다. 광의의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이나 제논의 역설 및 칸트의 가상논리학 등을 포괄하지만 협의의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변증법이라 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가리킨다.
변증법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형식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형식논리는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논리를 말한다. 모순율은 ‘갑은 갑이 아닌 그 어떤 것과도 같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만약 갑이 갑 아닌 다른 것과 같은 것이 되면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 된다. 배중률은 ‘중간영역을 배제한다’는 의미다. 즉 ‘갑과 갑 아닌 것 사이에는 중간에 그 어떤 것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수학은 모든 것이 형식논리적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삼각형’은 오로지 삼각형이어야만 하며, 삼각형이 아닌 것과 같을 수 없다. 또한 삼각형과 삼각형 아닌 것 사이에는 중간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삼각형과 사각형 사이에 4.6각형이 있을 수 없다. 허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이렇게 수학적으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채석용은 훈남이면서 추남일 수도 있고 섹시남일 수도 있다. 때로는 훈남이기도 하고, 술에 쩔어 지낼 때엔 훈남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현실을 수학적으로 형식논리만 가지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헤겔은 이렇게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는 형식논리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보고 변증법을 창안했다. 변증법은 형식논리와 달리 모순과 대립을 오히려 변화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긍정한다.
가령 ‘채석용은 선배이다’는 말과 ‘채석용은 후배이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선배’와 ‘후배’는 형식논리적으로 보면 서로 모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진술 모두 참이다. 일반적으로 보아 채석용은 선배이면서 후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석용이 만약 후배들만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위의 두 가지 진술 가운데 ‘채석용은 선배이다’는 진술만 참이 되고 ‘채석용은 후배이다’는 진술은 거짓이 된다. 이처럼 변증법은 현실의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판단할 것을 주문한다.
헤겔 이후 학자들은 헤겔의 변증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정, 반, 합이라는 도식을 도입했다. ‘채석용은 선배이다’는 진술을 ‘정’이라고 하면, 그와 모순된 진술인 ‘채석용은 후배이다’는 진술은 ‘반’이다. 그리고 현실 상황을 고려해 ‘채석용은 선배이면서 후배이다’라고 하거나 ‘이 모임에서만큼은 채석용이 선배이다’라고 하는 진술은 ‘합’에 해당된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진술들을 통해 새로운 합명제를 도출하는 과정을 지양이라 한다. 지양을 통해 서로 모순되는 진술들이 통합되고, ‘채석용’의 인간관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를 중시하는 헤겔의 관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형식논리에 따르면 역사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수학적 진리는 역사와는 무관하게 선험적으로 참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선험적 지식보다 더 참된 지식은 역사를 통해 발전하는 지식이라고 보았다.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역사는 진보하고 또 진보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 진보의 끝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헤겔은 그 끝을 유럽의 역사가 달성했다고 보았다. 변증법적 과정은 오로지 유럽에서만 완전히 달성되었고.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만 달성되었다고 보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때 19살의 청년이었던 헤겔은 그 후 유럽 지성계를 주름잡게 되는 친구 셰링 및 휠덜린과 함께 튀빙엔대학 교정에 ‘자유의 나무’를 심고 그 주위를 손잡고 돌았다고 한다.
헤겔은 역사의 진보를 설파한 점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지만, 그러한 진보가 오로지 유럽에서만 달성되었다고 본 점에서 지적 편협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의 진보를 설파한다는 점에서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가 오로지 유럽에서만 달성되었다고 본 점에서 지적 편협성에 물든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허나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왕의 목을 자르는 위대한 혁명정신은 실제로 전세계 민주주의의 기본 토양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철학 개념어 사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채석용 지음, 소울메이트>
▣ 저자 채석용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 서경대, 세명대, 경원대에 출강한 바 있으며 현재 대전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산학술문화재단 전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다산학사전』 편찬 사업에도 참여했으며, 역서로 『헤겔철학입문』이, 저서로는 『최한기의 사회철학』이 있다. 고교 시절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것을 계기로 서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구문명을 동경하며 전생에 독일 사람이었을 것이라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공자님 말씀을 접하고 유교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명랑유교’를 기치로 내걸고 동지들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어 낙심중이다. 대중적 저술 작업을 통해 동지들을 규합하고자 한다.
<더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