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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일체설

[중산] 2011. 7. 28. 12:49

 

만물일체설: 인간을 우주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라 보는 겸손의 철학

동아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물이 각기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사지가 서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하나의 인간을 이루는 것처럼 만물은 우주라는 하나의 통일적 전체를 이루는 유기적 구성요소라고 보았다. 이를 만물일체설이라 한다. 그러나 만물일체설의 내용은 취하는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노장사상에서는 만물들의 지위를 동일하게 파악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사물이나 동물들보다 나을 게 없다. 다른 사물이나 동식물들도 모두 인간과 같은 존재론적 지위를 가짐으로써 우주라는 통일체를 구성하게 된다. 사람이 나비 꿈을 꾸는지, 나비가 사람 꿈을 꾸는지 분간할 수 없다는 장자의 아이디어는 노장 사상의 만물일체설을 문학적으로 설명한다. 노장사상에는 인간중심적 윤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 유교사상, 특히 성리학은 만물이 일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만물들 사이에 위계가 엄존한다고 주장한다. 노장사상과 달리 윤리라는 척도를 도입함으로써 이런 위계적 사유를 합리화한다. 세상은 노장사상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작정 일체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만물 위계설에 의하면 가장 윤리적인 존재는 인간이다. 그 다음으로 동물이 부분적으로 윤리적 존재로 대접받는다. 식물에게서 윤리성을 찾기란 매우 힘들며, 무생물에게는 윤리성이 거의 없다. 호랑이를 의로운 존재라고 파악한다든가 수달을 예절 바른 존재로 파악하는 것 등은 이런 입장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만물이 원칙적으로는 일체를 이루되 실제로는 위계적일 수밖에 없는 근거는 기의 차이에 있다. 성리학자들은 기를 윤리적으로 파악한다. 기가 깨끗하면 품성도 깨끗하고, 기가 더러우면 품성도 좋지 않다고 보았다. 인간이 타고난 기는 동식물의 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유전학적으로 넘을 수 없는 종의 장벽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설은 사회적 차별을 긍정하게 만든다. 윤리적 위계설은 엄격한 유교적 신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의 노릇을 해왔다. 만물일체설은 유교적 입장에서 볼 경우 원론적 이상에 그칠 뿐 현실은 아니었다.

 

 

이와 달리 양명학은 성리학의 위계설을 강하게 부정하며 진짜 만물일체설을 설파한다. 이러한 만물일체설에 도달하기 위해 양명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우주의 근본적 원리, 즉 이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성리학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인 를 우선 인간의 밖에 둔다. 인간은 원칙적으로 그러한 이를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원칙적 차원에서만 그럴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의 제약에 의해 이의 원칙을 인간의 본성이 완벽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본연지성과 기질기성이라는 이분법이 발생한다. 기의 제약은 곧 윤리적 위계설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양명학은 성리학과 달리 인간의 마음에 완벽히 우주의 이치가 구현되어 있다고 본다. 심즉리는 성즉리보다 더 래디칼한 성선설을 주장한다. 온 우주의 원리가 인간의 마음에 선험적으로 이미 완벽히 갖춰져 있으므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만 제대로 드러내면 된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면 곧 온 우주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작업은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일관된 원리를 발견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를 통해 만물이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통해 만물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양명학은 신분사회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물론 사회적, 시대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신분철폐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사농공상의 위계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지만, 사의 권위만을 강조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농공상의 조화를 중시하는 정도의 입장에는 도달할 수 있었다. 양명학의 만물일체설은 청나라 말기 강유의 와 담사동 등이 주장한 대동사회론에 영향을 줌으로써 근대화에 이바지하기도 한다.<“철학 개념어 사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채석용 지음, 소울메이트>

                                                                           <참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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