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인간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중산] 2011. 8. 4. 22:25

 

인간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R(랄프 비너) : 생의 의지, 즉 존재하려는 맹목적인 의지를 현세의 모든 숨은 원동력으로 보는 사상은 쇼펜하우어보다 훨씬 전인 고대의 인도 철학에도 이미 있었다.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창조를 기리는 찬미가인 『리그베다에서는 비존재에 뿌리를 박고 있는 존재의 모습을 성욕性慾과 동일시하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그리스 철학자들도 생의 의지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표명된 이 인식들을 하나의 웅장한 체계로 통합한 것은 쇼펜하우어가 처음이었다. 그뿐만 아니고 그는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모든 사람들이 이 어려운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쇼펜하우어 : 기존의 망상에 얽매임이 없이 자연의 손을 잡고 거침없이 진리를 따르라! 우선 젊은 동물을 보면 그 모습에서 나이를 초월한 그 동물의 유적類的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유적 존재는 그것이 가진 영원한 젊음의 모상模相인 일시적 젊음을 각각의 새로운 개체에게 선사하고 마치 오늘날의 세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양, 새롭고 생생하게 그 새로운 개체를 발현시킨다. 금년 봄의 제비가 첫 번째 봄의 제비와는 다른 제비이며 이 두 제비 사이에 수백만 번에 걸친, 무無에서의 창조라는 기적이 매번 완전한 소멸과 함께 실제로 일어났겠는지 솔직하게 자문해 보라.

R : 그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의 대담한 사행시로 표현한다.

쇼펜하우어 : 세계를 만들었고 / 유지하고 있는 의지는 / 또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 즉 책상은 네 발로 다니고 있는 것이다.

 

R : 쇼펜하우어는 같은 취지의 시적 묘사를 동물의 세계에도 적용한다.

쇼펜하우어 : 모든 동물의 형상은 상황이 불러일으킨 생의 의지의 동경憧憬이다. 예를 들어 나무 위에서 살고 그 가지에 매달려 그 잎을 먹으며 다른 동물들과 싸우지 않고 영원히 땅을 밟고 싶지 않다는 동경이 생의 의지를 사로잡았다고 하자. 이 동경은 영원토록 나무늘보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거의 걷질 못한다. 오직 나무만 타게끔 고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땅에서는 속수무책이지만 나무에서는 날쌔며 육식 동물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 동물 자체가 마치 이끼 낀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R : 이에 비추어 다음의 간결한 언급은 그저 당연할 뿐이다.

쇼펜하우어 : 또한 황소는 뿔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기 때문에 뿔이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 존재와 본질은 의존적인데 행동은 자유롭다는 것은 모순이다. 만일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졸작拙作들에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생긴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동은 성질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이 나빴다면 그것은 우리의 성질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성질은 당신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벌은 당신 자신이 받아야 합니다.

 

R : 이것을 간명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쇼펜하우어 :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즉 하고자만 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 스스로가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하고자만 한다면!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기에는 그것에 반하는 동기들이 나를 너무도 강하게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내가 어떤 성격, 더 구체적으로 말해 성인聖人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자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쇼펜하우어 : 의지가 철저히 꺾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왜 그렇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그러한 것인지와 상관없이 다만 의지가 철저히 꺾였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가장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지 자체가 바로 그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R : 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운명에의 순응을 추구할 만한 덕목으로 칭송하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에 접근한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운명은 결국 신의 의지이기 때문에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쇼펜하우어는 다른 설명을 한다.

쇼펜하우어 : 유신론자有神論者들은 행한 대로 당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시간과 한 재판관 겸 보복자의 매개를 통해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하는 반면 나는 직접적으로 그렇다고 말한다. 즉 나의 증명에 따르면 행하는 자가 곧 당하는 자인 것이다.

R :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모든 생명체 각각에 대해 타트트밤아시(네가 그것이다라는 산스크리트어)라는 명제를 주장하며 각각의 모든 생명체가 전全 자연 및 그 안의 생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R : 유신론과 범신론에 대한 쇼펜하우어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증 논거는 근본적으로 신의 정의에 대한, 그 오랜 회의이다. 현세의 경험은 신의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다른 곳에서 강조하듯 타트트밤아시라는 인도 사상이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이다. 또 세계가 이렇게 비참한 것은 바로 신이 모든 가능성을 다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 역시 그런 입장에서 비롯된 또 다른 논거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는 신을 내면과 동일시한 스피노자 철학의 탁월성을 어떤 식으로든 느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매우 위대한 사람이다.

 

R : 스피노자는 칸트와 더불어 그에게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의 철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 : 사람들은 나의 철학이 음울하고 절망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 그리고 그에 이어 인간이 무에서 창조되었다는 가르침처럼 절망적인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낮이 지나면 밤이 되듯이 인간이 죽으면 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위로의 시작과 기초는 인간의 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랄프 비너 지음, 역자 최흥주님, 시아>

 

                                                        

                                                                 이고들빼기 : 어린 잎은 데쳐 나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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