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중산] 2011. 8. 4. 22:37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아이들을 다룰 때 나의 라틴어나 그리스어 실력, 나의 업적, 나의 돈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의 영혼만이 도움이 될 뿐이다. 내가 고집이 세면, 아이도 똑같이 나에게 고집을 부린다. 그러면 난 부끄럽게도 완력을 이용해서 아이를 때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버리고, 영혼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영혼을 우리 둘 사이의 심판관으로 삼으면, 아이의 눈에서도 똑같은 영혼이 빛을 발한다. 나와 더불어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진리와 마주하면, 즉시 그것이 진리임을 알아차린다. 회의적인 사람이나 냉소적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당신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그러나 진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진리임을 안다.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장 황홀한 순간

신의 뜻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소통이다. 이것은 생명이라는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 앞에서 개인의 작은 흐름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때, 위대한 행동을 할 때, 자연의 심장에서 비롯된 전율이 우리의 가슴을 관통한다. 이런 영적인 소통 속에서 나오는 힘은 행동하는 의지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 힘에 순종할 때 통찰이 생기고, 순종은 환희에 찬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런 영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

겸양과 정의, 사랑, 열망을 가진 사람은 이미 과학과 예술, 말과 시, 활동성과 우아함 같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상에 서 있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를 이미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처녀에게는 연인이 능력도, 기술도 없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더 없이 높은 정신에 스스로를 내맡긴 사람은 절대자의 모든 일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특별한 앎과 힘에 도달하게 된다.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추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춘다. 반면에 시인은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전자는 자연이 뿌리 박혀 고정된 것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자연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자연 위에 자기의 존재를 새긴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세계도 시인에게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곳이 된다. 시인은 먼지나 돌에도 인간성을 부여해서, 그것을 이성의 언어로 만든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성이 물질계를 이용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어느 시인보다도 탁월했다. 그는 제왕 같은 시혼(詩魂)으로 삼라만상을 마치 장난감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던지며,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상들을 표현하는 데 이 장난감을 이용했다. 

 

영혼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주인이다

몽상의 순간에, 후회의 순간에, 열정의 순간에, 경악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깊이 생각해보면, 이따금 우리가 가면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꿈의 교훈을 잘 생각해보면, 자연의 비밀을 분명하고 폭넓게 깨닫게 해주는 여러 가지 암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이 하나의 기관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기관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작동시켜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혼이 기억력이나 계산력, 비교력 같은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그 모든 능력들을 손이나 발처럼 이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혼이 하나의 능력이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지능이나 의지가 아니라 지능이나 의지를 부리는 존재라는 것을, 모든 것들을 포옹하는 존재의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유되어지지 않고 소유되어질 수도 없는 무한이 영혼임을 보여준다.

 

힘은 변화의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을 뿐, 과거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활동을 멈추고 휴식하는 순간 힘은 사라진다. 힘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새로운 상태로 옮겨가는 순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고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에 존재한다. 세상은 영혼이 변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의 가치를 영원히 훼손시키고, 모든 부를 빈곤으로 바꾸고, 모든 명성을 치욕으로 만들고, 성자와 악한을 혼동하며, 예수와 유다를 똑같이 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기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영혼이 존재하는 이상, 거기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는 힘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역자 박윤정님, 끌레마>

 

                       

                                                                                       이삭여뀌 : 관절통,위통 등에 약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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