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 사고의 본질
현대 세계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사실 너무 많아서 목록 작성조차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전쟁, 기아, 고문, 약탈, 질병, 정치적으로 자행되는 온갖 더러운 속임수들을 볼 수 있다. 동서로 나뉘어 대립하는 일종의 양극화 현상도 보인다. 서양은 개인과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고, 동양은 모두와 보살핌을 받는 집단 사회(collective society)의 가치를 주장한다. 또한 남과 북의 양극화도 보인다. 여기서 북은 부유하고 남은 가난하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남아시아 등지에는 엄청난 문제들이 산재한다. 심각한 빈곤과 부채, 경제 파탄, 총체적 혼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어쩌자고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파괴적이고, 위험한 상황, 불행과 직결된다는 것이 빤히 보이는 이런 상황을. 모두가 뭔가에 홀려서 판단 능력을 상실했나 싶을 정도다. 정상으로 보기에도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뭔가 해결책이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이념, 혹은 종교 같은 것에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희망은 과거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사고의 작용 방식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진정한 위험은 눈에 보이는 사건들, 즉 전쟁, 범죄, 약물, 경제위기, 오염 등에 있지 않다. 진정한 위험은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사고 안에 있다.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 항상 그렇다. 누구든 그런 사고에 대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 누구나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중대한 오류에 빠져 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저런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들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야. 나는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이런 태도야말로 잘못이라고 본다. 사고는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바이러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어찌 보면 세계 곳곳에 사고, 지식, 정보의 질병이 퍼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바이러스의 확산을 멈출 면역체계를 우리가 갖추고 있는가?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고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 문제의 근원을 보게 된다. 이는 누구한테도 공통되는 사항이다. ‘저기 있는 어떤 사람(혹은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된 사고를 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사고 전체 과정에서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는 것이 원인이며, 이는 집단적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의문을 품어야 하는 핵심 가정은 사고가 개인의 것이라는 가정이다. 사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 우리는 어느 정도 사고의 독립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신중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개인적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사고는 너무 미묘한 무엇이다. 전제 없이 사고는 진정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안에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일반적인 형태의 사고 대부분은 사실은 개인적이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사고는 우리가 경험한 것의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을 보여주는 능력이 있다. 사고의 이런 속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깊이 생각한다면, 개념과 이미지들이 그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이유를 보다 깊이 통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어 단어 ‘Representation’은 이런 맥락에서 참으로 적절한 단어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re-present’, 즉 다시(re) 제시한다(present)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차적인 인식이 뭔가를 제시하고(present), 사고는 그것을 추상적인 형태로 다시 제시한다(re-present)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말하자면 표상은 단순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제시’와 융합되고, 따라서 ‘제시된’ 것이 많은 부분에서는 이미 ‘다시 제시된’ 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감 없이 ‘제시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알고 보면 감각, 사고, 어쩌면 약간의 통찰 등이 결합된 산물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제시’에 통합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뭔가를 경험하는 방식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represent)’에 달려 있다.
< “창조적 대화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비드 봄 지음, 역자 강혜정님, 에이지21>
▣ 저자 데이비드 봄(1917~1982)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사상가로, 20세기 후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양자역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일 뿐 아니라 인류와 자연의 조화, 인류의 융화 등을 철학적인 필치로 서술한 사색가로서도 유명하다. 저서로 『전체와 접힌 질서』가 있다.
▣ 역자 강혜정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출판사 기획편집 업무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텅 빈 레인코트』, 『자본주의의 아킬레스건』, 『리더를 만드는 카리스마』, 『에비에이터 하워드 휴즈』,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독립 외교관』, 『내 생애 꼭 한 번 가봐야 할 여행지』, 『비이성의 시대』, 『포용의 리더십』, 『리더란 무엇인가』 등 다수가 있다.
자란 : 관상용으로 심고 있으며, 덩이줄기를 한방에선 '백급'이라 부르고 지혈제, 수렴제,배농제로 사용한다. 주란,백급,대암풀이라고도 함,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티벳 동부지역, 중국에 분포하며 남쪽 해변 산지 바위틈에서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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