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인간의 조건
위니콧의 주관적 전능감Subjective Omnipotence이라는 개념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적당한 말이 없어 빌려다 썼을 뿐, 앞에서 설명한 다른 개념들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관적 전능감이 있는 마음을 그냥, 건강한 마음 또는 잘 발달된 마음 또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행복하게, 또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세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 필요한 무엇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그것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등이 인간과 결합되어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인간과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배고파야 소크라테스? - 행복의 조건, 신애와 엘리의 신념
의미 있다는 느낌: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바란다.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다 죽는 게 좋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숨 쉬는 것? 먹는 것? 번식하는 것? 일하는 것? 뭔가 대단한 걸 남기는 것? 세상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삶의 의미를 결정할 기준 같은 건 없다. 우리 삶에 ‘보편타당’한 이유나 의미는 없다. 인류라는 종이 지구에 존속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 그냥 살다 가는 것이다. 의미라는 건, 꼭 있어야 한다면 각자 만드는 것이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늘 깔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은 살지를 못한다. 살려면, 제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냥 두면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마음을 뒤덮는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 그들은 삶의 의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서. 〈밀양〉(2007)에서의 신애도 그랬다. 의미를 만들기 위해 밀양에 갈 수밖에 없었다. 교도소에도 갈 수밖에 없었다. 신애는 신애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정신결정론의 관점에서).
강하고 유연한 신념: 〈콘택트〉(1997)에서 엘리는 천문학자다. 이성과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파머는 목사다. 신앙이 그의 세계관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의 신념을 존중한다. 서로 간섭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신념은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 개인적이라는 것, 누구든 자신의 신념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 누구에게도 남의 신념을 억압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것, 신념이 다르다는 것이 사람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정신분석이 사람의 마음을 보는 시각은 그런 것이다. 같은 질문이 유익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죽고 싶을 정도로 공허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배부르면 철학을 못한다고 정신분석은 생각하지 않는다. 배가 불러야 철학도 잘한다.<“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최병건박사 지음, 푸른숲>
<가시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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