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께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를 때 그녀는 뱀을 애완동물로 키웠다. 죽음의 이미지에 매료되어 장의사나 흡혈귀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꿈을 꾸었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자살을 시도하며 십대 시절을 보냈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며, 심리치료를 받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배우가 되고선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할리우드의 요부, 나쁜 여자로 통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가 현재는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함께 입양 자녀 세 명과 친자식 세 명까지 합쳐 모두 여섯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또한 유엔의 친선대사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것을 인정받아 유엔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세계 시민대상’(2003)과 미국유엔협회에서 수여하는 ‘세계인도주의자상’(2005)을 수상하였다. 수입의 3분의 1을 자선 사업에 기부하고 있으며, 2008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위에 올랐다.
안젤리나 졸리를 성공으로 이끈 힘은 바로 그녀만의 열정적인 삶에 있다. 그 열정들은 그녀를 할리우드의 반항아에서 세계적 박애주의자로 변신시킨 에너지이다. 『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은 안젤리나 졸리의 극적으로 변화된 삶을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드러낸 현대 여성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이다. 저자는 오늘날 김빠진 맥주처럼 열정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안젤리나 졸리의 삶을 통해 본 열정의 메시지를 전하며 진짜 자기 삶을 살라고 말한다.(요약)
첫 번째 열정,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라!
유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는 것: 1987년, 존 보이트는 딸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말 놀라운 아이입니다. 어쩌면 저를 조금씩 닮아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걱정이 됩니다. 안젤리나는 재치있고 상상력이 대단한데다 대단히 활동적인 아이예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성격을 지녔지요. 마치 똘똘한 사내 아이 같아요. 아기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어요. 알파벳을 처음 배울 때도 도움을 거부하더군요. ‘싫어, 나 혼자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다니까!’라고 말했으니까요. 그게 바로 안젤리나의 본성입니다. 저를 닮았지요. 고집 세고 남의 말 듣길 싫어해요.” 한편, 안젤리나는 아버지가 유명인이라는 것을 불편해했다. 어느 날 존 보이트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반가운 표정으로 알은체를 했다. 그러고는 식사를 방해해서 죄송하다며 혹시 영화배우가 아니냐고 물었다. 안젤리나는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는지 그 남자에게 이렇게 쏘아 붙였다. “그게 뭐 어때서요? 이제 좀 그만 하세요. 우리도 사생활이란 게 있다고요.” 물론 그 남자는 매우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물러섰다. 존 보이트는 이날 유명인을 둔 아이들이 내색은 잘 하지 않아도 불편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팬들과 더 가까워질수록 안젤리나는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냥 귀여운 여자 아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명 배우의 딸로서만 바라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안젤리나는 스크린에서 예쁘게 나오는 배역을 원하지 않았다. 1999년 아버지 존 보이트와 함께 출연한 인터뷰에서 안젤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배우가 영화에서 옷을 걸친 상태로 나오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저는 주연 남자 배우의 예쁜 애인 역할은 맡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은 여배우들이 성적인 대상 또는 섹시 코드로서만 영화에 이용된다는 뜻이다. 안젤리나는 여배우로서 섹시하게만 보이거나 나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개성 강한 연기력과 강인한 열정을 가진 여자들을 연기하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들이 바로 <본 콜렉터>(1999)와 <처음 만나는 자유>(2000)이다. 이 영화들에서 안젤리나는 옷을 벗고 나오거나 주연 남자배우의 애인 역할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지적이고 냉철한 여형사 역할과 거칠지만 강한 성격의 정신질환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두 영화 때문에 그녀는 좀 더 확고히 연기파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게 되었다.
2부 두 번째 열정,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라!
방황과 일탈의 경험을 통해 변화해라!
안젤리나 졸리는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께 강아지나 아기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사달라고 조를 때 안젤리나는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의 도마뱀을 키웠다. 또 다른 애완동물로 뱀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자 친구들이 발레리나를 꿈꿀 때 안젤리나는 흡혈귀나 장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림을 그려도 노인의 얼굴이나 나체여성, 고함치는 입 등을 그리곤 하였다. 어른들이 보기에 안젤리나는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잦은 이사와 외도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안젤리나의 정서에 불완전한 가족의 배경이 영향을 줬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안젤리나의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저는 영원히 한곳에 정착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어요. 그래서 항상 다락방을 갖고 싶어했죠.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고 올라가기만 하면 옛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나는 다락방 말이에요. 다락방은 포근히 절 안아 줄거라 생각했어요.” 십대 시절 안젤리나의 이런 면은 더욱 도드라졌다. 이때부터 자살을 생각하게 됐고,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며 만족감을 느꼈다. 또한 거친 행동으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혔고, 열여섯 살에 남자친구와 자신의 집에서 동거를 하기도 했다.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소녀: 안젤리나가 9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소녀에게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은 굉장히 매력적인 의식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장례식이라면 왠지 마음이 움츠러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안젤리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가 9살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생전에는 활기차고 멋진 분이셨는데, 장례식은 아주 끔찍했어요. 모두가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지요. 저는 장례식이 생명을 경축하는 행사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가보니까 방 안 가득 당황한 표정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전 죽는 게 두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들 절 보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사실 전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안젤리나는 자신을 이렇게도 설명했다. “저는 전통이나 뿌리와 관련된 부분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장례식에 그렇게 정신이 팔렸었나 봐요.”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안젤리나는 검정색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산책할 때도 무덤 주변을 걸어 다녔고, 책을 읽을 때도 시체를 방부 보존하는 방법이나 시체 안치에 관한 과학 책을 읽었다. “죽음에 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안정되는 게 느껴져요.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 보면 지금 나의 삶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감상하는 게 가능해지지요.”
안젤리나, 방황에서 벗어나다: 안젤리나는 십대 시절 자신이 대단히 제멋대로 행동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폭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데 자신은 전혀 그러지 못했고 오로지 자기 문제밖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하였다. “제 심술궂은 행동과 자해를 보며 아마 의사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소곤댔을 거예요. 14살 때 누군가가 저를 아시아나 아프리카 한가운데 떨어뜨려 놓았다면, 제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깨달았겠죠. 그곳에서는 고통, 죽음과의 진정한 싸움이 한창이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면, 자신과의 어리석은 싸움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안젤리나에게 십대 시절의 반항과 방황은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그녀의 연기에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의 난민과 불쌍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감정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이 되었다. 만약 그녀가 마냥 행복하기 만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온실 속의 꽃처럼 보호받고 자랐다면 지금의 안젤리나처럼 세계의 위험한 곳은 모두 헤치고 다니며 박애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 또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국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충분히 사랑을 줄 만한 용기와 자애를 가지게 되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느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처럼 성형 수술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녀는 청소년기에 스스로를 자해하며 학대했지만 그러한 마음을 이기고 자존감을 지켜냈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사랑해 나가는 데 그녀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폭발할 듯 넘치는 애정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불우한 십대를 보냈던 안젤리나의 성공적인 변화는 지금 불우하고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의 문제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가져라!
여전사에서 박애주의자 안젤리나 졸리로
<툼 레이더> 촬영이 끝난 후 안젤리나가 다시 LA의 빌리 밥에게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비단 안젤리나의 외모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가정에서 멀리 떠나 지내던 그녀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고, 세상을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즉 빌리 밥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안젤리나는 결혼할 당시와는 거의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미국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다: 이러한 변화를 야기한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는 안젤리나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뉴스를 시청한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면서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는 그동안 미국적인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걸 깨달았고, 영국에 머무는 동안 전에는 경험하지 못하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눈으로 목격하였다. 안젤리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미국 역사에 대해서만 배웠어요. 그리고 정치적 이슈나 사건이 터지면 저 자신과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만 관심을 가졌지 전 세계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영국에서 뉴스를 시청하면서 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보호막이 되었는지 깨달았어요.”
캄보디아와 같이 슬퍼하다: 캄보디아를 방문한 후 안젤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너무나 관대하고 마음이 넓고 친절해요. 캄보디아에 와 보기 전에는 아직도 매일 지뢰를 밟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직접 와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안젤리나는 캄보디아 국민들이 처한 처절한 상황에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꼈다. 그래서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런 감정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던 안젤리나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연락을 취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 물어 보았다. 현명하게도 안젤리나는 영화배우라는 자신의 지위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캄보디아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명인의 지위를 공익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른 젊은이들도 동참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박애주의자로 첫발을 내딛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연락을 취한 직후, 안젤리나는 처음으로 유엔을 방문했다. 이후 2001년 2월, 안젤리나는 시에라리온과 탄자니아를 방문하며 자선 활동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방문을 마치고 아프리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깨달은 바가 너무도 많았다. “아프리카 정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았어요. 온몸이 먼지와 진흙으로 범벅이었지만 저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졌죠. 그런데 순간, 주변 사람들이 제가 영화배우라는 걸 알고 흘깃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제 모습 때문에 다들 놀란 눈치였지요. 일등석에 탄 사람들은 모두 비싼 양복을 입고 있었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있었어요. 잡지를 보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때 저는 파티나 영화 등급에 관한 기사, 또 누가 무슨 물건을 갖고 있는지, 누가 가장 섹시한지에 대한 잡지 기사를 들추며 기분 상해 있었죠. 전 그때만큼은 잡지에 난 그런 세상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답니다.” 아프리카를 방문할 때 안젤리나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가장 값비싼 디자이너의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화려하게 살 수 있었지만, 베스트 드레서 목록에 이름이 올라가는 게 그녀의 야망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여전사에서 존경받을 만한 박애주의자로: 안젤리나는 두 재단을 창설했다. 하나는 ‘매덕스 구제 프로젝트(Maddox Relief Project)’로 캄보디아 문제를 다루는 재단이고, 또 하나는 ‘졸리 재단(Jolie Foundation)'으로 고아 어린이를 돕는 재단이다. 또한 2005년에 안젤리나는 세 가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두 프로그램은 MTV에서 제작했는데 그중 하나는 <안젤리나 졸리와 제프리 D 삭스 박사의 일기(The Diary of Angelina Jolie and Dr Jeffrey D Sachs)>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이다. 삭스 박사는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부관으로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후원자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청자들은 케냐의 사우리 지역 마을을 여행하는 삭스 박사와 안젤리나는 따로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양실조와 물 부족, 허술한 건강관리의 실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젤리나가 출연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는 <비인간적인 거래(Inhuman Traffic)>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다. 안젤리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여성과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권한을 깨닫게 되기를’ 기대했다.
세 번째 열정,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라!
안젤리나는 남들과 다르게 보인다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이런 성향은 반항적인 그녀의 성격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베벌리힐스의 패션과 관습을 거부한 안젤리나의 태도는 어찌 보면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사회적인 적응을 못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눈치 보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자신을 꾸몄던 안젤리나가 십대의 자유로운 정신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안젤리나가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나 문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몸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스타일 좋게 옷을 빼입을 줄도 몰랐고 쇼핑을 즐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안젤리나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색의 면 셔츠와 청바지만 입고 머리카락을 질끈 고무줄로 묶고 다니기만 해도 그녀를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여자한테서 찾아볼 수 없는 안젤리나만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신념을 몸에 새기다: 안젤리나는 매덕스를 입양하면서 왼쪽 어깨에 매덕스의 보호를 기원하며 기도문을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다. 이 문신은 승려들이 해주었는데, 안젤리나가 제일 좋아하는 문신이다. 손으로 쓴 캄보디아 글씨가 세로로 다섯 줄인데,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글이라고 한다. 영화 촬영장에서 분장사들은 안젤리나의 문신을 가리느라 진땀을 빼지만, 그녀는 문신 덕분에 영화에서 누드 장면을 찍어야 할 일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노출 장면을 촬영할 때, 안젤리나의 문신을 본 감독들은 단순히 옷을 벗기기보다는 다른 창의적인 방식으로 섹시함을 표현하고자 고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안젤리나가 문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안젤리나는 순전히 섹시한 외모 때문에 배역을 맡는다거나, 그런 역할을 위해 자기 몸을 주문에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힘들어했다. 그런데 문신이 영화에서 옷을 벗어야 할 기회를 그만큼 줄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젤리나는 문신이 연기할 때 자기 관리 능력을 되찾게 해준다고도 생각한다.
안젤리나가 금발의 귀여운 여인들과 다른 점: 안젤리나가 제일 파격적으로 선택한 영화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에서의 금발 머리 여기자 레이니역이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물인데, 주인공 레이니는 허영에 들뜬 철없는 금발 미녀로 텔레비전 기자이다. 그녀는 어느 날 통찰력 가진 예지자로부터 이기적인 생활방식을 철저하게 바꾸지 않으면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안젤리나가 이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에게도 밝고 유머러스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실제로 안젤리나는 금발 가발을 쓰고 자신이 ‘마릴린 먼로’처럼 분장한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안젤리나와 레이니라는 인물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면, 십대 시절의 레이니에서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십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새침데기 소녀같이 변해버린 지금의 레이니 모습은 자신과는 전혀 다르다고 얘기했다. “저는 쇼핑을 잘 안 해요. 매일 같은 옷을 입죠. 구두창과 지퍼를 네 번이나 고치고 갈아 끼운 신발도 있어요. 다른 신발은 안 살 테니까 고칠 수밖에요. 심지어 저는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제 브래지어 사이즈도 몰랐어요.”
안젤리나는 자기 옷을 살 때는 아주 인색했지만, 남을 돕는 자선 사업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안젤리나가 존중받고 할리우드의 대다수 배우들과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여배우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외모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 이렇듯 안젤리나는 금발의 철없는 여인들과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 나오는 안젤리나의 화려한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니다. 그녀는 유엔 사절단의 아프리카 방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더러워진 옷가지들을 더 애틋해하고 더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여자이다. 안젤리나는 자신의 본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낀다. 마치 그런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말해 주는 것처럼.
내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대부분의 아기 어머니들은 아기를 돌보느라 거울을 보며 외모를 가꿀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인정받던 안젤리나는 아이를 키우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겉모습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자기 만족감은 안젤리나가 내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와 같은 관련이 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던, 만난 적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자, 안젤리나는 내적으로 새로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아름다움도 깨닫게 되었다. “제 모습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요즘 전 제가 옛날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고 느껴요.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한밤중에 아이가 흘린 음식으로 몸이 범벅이 된 채 아이를 안고 살살 흔들며 재우는 제 모습은 지저분하고 지친 모습이지만, 전 그때의 제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어머니 역할을 통해 깨달은 게 많은데, 그중에 아름다움은 오직 내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야 배웠어요.” 물론 헐렁한 실내복에 기저귀를 가는 모습이 섹시하지 않다는 걸 안젤리나도 인정한다. 다리털을 면도할 시간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전에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도, 삶의 목적도 알지 못한 채 방황했지만 마침내 ‘이전의 모든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모성의 발견: 안젤리나는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바뀌기 전에도 아름다운 모성을 가진 여자였다. 사실 안젤리나는 매덕스 입양 전에도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남편이었던 빌리 밥에겐 전처에게서 나은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젤리나는 그 아이들에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새엄마였지만 그 아이들을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했고, 또 모성애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대단히 좋아했다. 한마디로 안젤리나는 빌리 밥의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가 있다는 걸 행복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빌리 밥의 두 아들은 정말 멋진 아이들이에요. 이제 막 7살, 8살이 됐으니까 사실 아직은 아기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현재 친 엄마와 함께 사는데, 그 분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아이들이 저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저희 집에 아이들을 보내주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들은 이미 가족인 셈이죠.” 2001년 11월, 안젤리나는 두 아이들과 할로윈 파티를 즐긴다는 사실에 굉장히 들떴었다. “저희 모두 토끼 옷을 입고 상자로 만든 터널을 지나다니며 당근을 먹었어요. 빌리 밥과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끼 옷을 입고 있었는데, 꼭 커다란 분홍색 잠옷 같았죠.
그리고 다 같이 <찰리 브라운>과 <스쿠비 두> 만화를 봤고, 또 호박으로 등을 만들었어요. 직접 보셨다면 놀라셨을 거예요. 완전히 난장판이었거든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안젤리나가 가족의 유대감과 사랑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안젤리나는 본래 모성이 강한 여자이며, 가정적인 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전에 아파트에서 살 때 차를 타고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어요. 전 항상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식구들이 하루 일과에 대해 대화하는 그런 집에서 살아 봤으면 하고 꿈꿔 왔었죠.” 빌리는 아주 사소한 집안일만 거들어 주었지만 그래도 안젤리나는 가정을 이루었다는 데 큰 기쁨을 느꼈었다. 물론 그 가정은 얼마 안 가 깨졌지만 그때의 안젤리나는 마치 어머니 역할에 완전히 매료된 젊은 엄마가 처음으로 아이에게 걷기 연습을 시켰을 때 희열을 느끼듯 행복해 보였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안젤리나는 아프리카에서 매덕스를 맞이할 최상의 준비를 미리 갖추고 있었는데,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남편 없이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빌리 밥과 이혼하기 전 안젤리나와 빌리는 한 사람이 영화를 촬영하면 다른 한 사람은 일을 하지 않고 일을 하는 배우자와 함께 지내기로 약속했었다.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매덕스가 도착했을 때 아기를 돌보아 줄 남편 빌리 밥이 옆에 있어야 했다. 두 사람의 이혼은 안젤리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아기를 혼자서 돌봐야 했고, 상심한 마음도 혼자서 추슬러야 했다. 옆에 빌리 밥이 없어서 외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안젤리나는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야 할 강한 어머니가 되려면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그냥 잊어버려야 해요. 어머니가 된다는 건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죠. 그래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결혼 생활에서 잘못된 부분에 슬퍼하는 사치를 부려서는 안 돼요.”
안젤리나는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고,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매덕스가 알려 준 사랑은 일이 년 만에 열정의 불이 꺼져버리는 그런 사랑이 절대 아니었다. 안젤리나는 자신이 이제까지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만날 남자에 대해서는 좀 더 현명하게 사랑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그 남자는 나타났다. 안젤리나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그녀와 함께 세계의 가난한 난민들과 어린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진정한 남자로서 말이다. 안젤리나는 그 남자가 매덕스를 자상하게 돌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이미 안젤리나는 그 남자와의 사랑으로 깊은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아름다움이 조금씩 더 밝게 빛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로나 머서 지음, 역자 전은지님, 글담>
▣ 저자 로나 머서
유명 인사의 소식을 다루고 있는 주간지 《뉴(New)》의 기자로, 세계 여러 나라 연예계의 주요 인물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런던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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