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늙으면서 아름다워지는 얼굴!

[중산] 2011. 9. 6. 14:08

 

성형수술이 대유행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성형수술 관광을 하러 온다고 한다. 연예인들의 수술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구는 몇 번 이상 했느니 하는 말도 들린다. 인터넷에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얼굴이 비교 게시된 것을 본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진 연예인의 얼굴에 깜짝 놀라면서 성형수술의 위력에 새삼 감탄사를 터뜨렸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고친 얼굴이 ‘미(美)’가 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얼굴을 수술로 젊게 보이게 만들었다고 해서 정말 젊음을 되찾은 것일까?

 

5년째 허리 때문에 입원해 계신 장모님을 뵈었다. 생신이라 병원 근처 식당에 휠체어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왔다. 그런 연유로 노인분들이 주로 입원해 계신 요양 병원에 한 달에 한 번은 가보게 된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노쇠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거나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톡스나 지방흡입수술도 임시방편이지, 젊음을 되찾게 해줄 수는 없다. 늙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우리는 이것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동안’에 대한 과도한 칭송이나 ‘어려 보인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대해 과다하게 기뻐하는 현대 사회 풍조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 이후 ‘세계의 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헵번이 나오는 영화를 중학생 시절, 즉 흑백텔레비전 시절 ‘주말의 명화’ 시간에 많이 봤는데 ‘어쩜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다 있을까’,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한창 사춘기여서 헵번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할리우드에 늘씬한 몸매의 배우도 즐비하고 고혹적인 미녀배우도 즐비하지만 ‘섹스어필’이 아닌, 청초하고 순결한 이미지는 오드리 헵번의 전매특허였고 바로 이 점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2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오드리 헵번의 유년기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부모가 일찍 이혼했고, 네덜란드에서 어머니와 살던 어린 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군이 마을을 점령했다. 헵번은 전쟁의 공포 속에 우울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미국 아카데미상 역사상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또 있을까? 1953년 <로마의 휴일>로 그녀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외에도 뉴욕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 편의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뒤 후속타 불발로 사라지는 배우도 많지만 오드리 헵번은 연기력도 쌓아가며 ‘세계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얻고 또 그렇게 된다. <사브리나>, <전쟁과 평화>, <하오의 연정>, <로빈과 마리안> 등 대표작도 부지기수이고, <녹색의 장원>으로 뉴욕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영국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샤레이드>로 영국 아카데미상 주연을 또 받았고, 노년인 1990년에 골든글러브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상복도 아주 많은 배우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그녀는 <로마의 휴일>로 스타덤에 오른 지 1년 만에 영화배우 멜 퍼러와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오드리 헵번은 25세였으며 배우자 멜 퍼러는 이 결혼이 세 번째였고 오드리 헵번보다 열두 살이 많았다. 멜 퍼러는 배우이기도 했지만 제작자였고 프로듀서, 감독이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은 멜 퍼러와의 사이에 아들 숀을 얻었고 멜 퍼러가 제작하거나 연출하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14년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부부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열등감이 두 사람을 힘들게 했다. 멜 퍼러 자신도 유명한 영화배우였지만 아내의 눈부신 명성 앞에서 늘 기가 죽었다. 여기에다 매력적인 남자였던 멜 퍼러가 외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점도 부부 생활에 문제가 되었다. 결국 그들은 1968년에 이혼하였다.

 

 

이혼의 충격을 달래준 것은 친구 사이였던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였다. 그녀보다 아홉 살 연하였던 도티는 멜퍼러와 이혼한 뒤 비탄에 잠겨 있는 오드리 헵번과 그녀의 아들 숀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둘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와 단출하게 살아온 헵번에게 도티의 따뜻한 가족과 친척들은 새로운 세계였다. 이듬해 헵번은 스위스에서 안드레아 도티와 결혼식을 올리고 로마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배우로서의 삶을 접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드리 헵번의 오산이었다. <로마의 휴일>에서 아름답게 빛나던 오드리 헵번을 사랑했던 도티는 그녀가 평범한 아내로 머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도티는 평범한 여인 오드리가 아니라 배우 오드리 헵번을 사랑했던 것이다. 도티와의 사이에 아들 루카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 결혼 역시 오드리 헵번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안드레아 도티는 이탈리아 남자답게 다른 여성과 쉽게 어울렸고 그의 의도는 번번이 가십 기사로 다루어졌다. 결국 도티와의 결혼 생활도 1979년 이혼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두 남편과 모두 외도 때문에 이혼했다는 점에서는 오드리 헵번의 결혼 생활은 매우 불행하였다.

이혼 후 오드리 헵번은 소울 메이트인 로버트 월더스를 만나지만 다시는 결혼하지 않는다. 월더스는 오드리 헵번을 만난 이후 그녀의 구호 활동을 도왔으며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그녀는 연기상 외에 특별한 상을 60대에 들어서서 받는다. 1993년 제5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허숄트 박애상’을 받게 되었는데 병중이라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한다. 그녀 인생의 마지막 행로는 배우가 아니라 유니세프 홍보대사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박애상’을 받은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 중 이런 상을 받은 이가 또 있을까? 오드리 헵번이 유일한 것 같다.

 

유니세프 홍보대사로서 헵번이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었던 그녀가 아프리카 오지를 돌아다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닌가. 특히 늙어서 쪼글쪼글해진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우리 스스로 십시일반으로 돕자고 말하며 떨쳐 일어난 오드리 헵번의 주름진 얼굴이 젊은 날의 얼굴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병이 찾아오긴 전, 그녀의 60대는 몸이 좀 고달팠지만 마음은 행복한 나날이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했으니 말이다. 헵번은 1993년 1월 20일, 대장암에 걸려 6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이 말은 전 세계 신문을 장식한 헤드라인이 되었고 그녀가 영화에서 했던 어떤 대사보다 아름다운 말로 뽑혔다.

 

나도 노후의 내 쭈글쭈글해진 얼굴이 부끄럽지 않아야 할터인데…….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보면 ‘미모’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와 함께, 화장술이 얼마나 대단한 요술인지를 알게 된다. 아울러 60세 이후가 되면 자신의 얼굴을 무엇으로 가꿔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도 성형수술과 과도한 치장으로 젊게 보이려 하느니 그 돈과 시간으로 남을 위해 살아야 할 텐데, 과연 그렇게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의 얼굴에 신경을 쓰는 동안에는 행복을 못 느끼겠지만 봉사의 나날을 살아간다면 행복을 느낄 것이 틀림없으리. 사람이 자신만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살아가면 노년의 얼굴에 정확하게 나타난다고 믿는다.

 

늙어서 오히려 아름다운 얼굴을 지녀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헵번은 사후 십수 년이 지나 2006년,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데일리 미러>가 선정하는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 1위가 되기도 하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행복해지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승하 외 지음, 북오션>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진실되고 사실적인 표현을 하는 시인,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등이 있고, 시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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