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권의 에세이집을 냈다. 2009년 9월 『남자의 속마음』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냈다. 이어 2010년 4월 『삶이 행복한 이유』, 11월 『여자의 속마음』, 2011년 4월 『사람풍경 세상풍경』을 잇따라 냈다. 다작임에 틀림없다. 내가 기를 쓰고 내려고 한 것도 아닌데 기회가 찾아왔다. 출판사를 비롯 모든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나를 격려해주는 독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글의 생명도 독자의 관심에 비례한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을 목말라 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관심을 보여주는 한 분, 한 분이 정말 고맙다. 나는 인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무명작가인 나에겐 누구보다 훌륭한 네 분의 독자가 있다.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분들이다. 그 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나의 행복론을 설파하고자 한다.
광주광역시에서 안경점을 하는 조영호 씨,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있던 2008년 4월 첫 메일을 받았다.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보통 메일은 한두 번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분은 지금까지 계속 메일을 보내주신다. 물론 나도 짤막하나마 답장을 빼놓지 않는다. 그 분은 독서량이 워낙 방대해 박학다식하다. 작가임을 자처(?)하는 나보다 관심 분야도 훨씬 많다. 성경은 물론 철학, 역사, 지리, 천문, 수학, 생물 등에도 조예가 깊다. 내가 책을 펴낼 때마다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다. 독후감도 빼놓지 않고 평론가 이상의 필력을 자랑한다. 지금껏 그분이 보내준 메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하고 있다. A4용지로 400장은 족히 넘을 것 같다. 언젠가 그분을 위해 책을 펴낼 생각을 갖고 있다.
두 번째 나를 감동시킨 독자는 인천의 가정주부 조OO 씨.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도 암으로 떠나보낸 뒤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나에게 세 번째 에세이집을 주신 분이다. 그 분과의 인연으로 『여자의 속마음』을 공동으로 펴냈다. 나에게 보내준 메일도 실렸다. 글을 아주 잘 쓰신다. 여성의 섬세함과 한국 엄마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연히 『남자의 속마음』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73학번 숙명여대 출신으로 사는 곳은 인천이며 장성한 두 딸의 엄마입니다. 취미는 책 읽기와 일기 쓰기(일기 쓰기가 취미라니까 좀 웃기네요). 그리고 몇 년 전 암으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결혼하고 그만둔 사회 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그늘에서 편히 살던 저에게 사회 생활은 너무 혹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은 병을 얻어 지금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네요. 물론 직장 생활은 그만두었고요. 올해 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겨우 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매일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가진 것에 좌우되는 건 아니니까요.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사소한 일상을 꾸밈없이 소박하게 표현해 내는 글솜씨가, 꾸며진 작가들과는 달라서 아주 매력적입니다. 하루이틀 연습하거나 또는 가식적인 것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흔히 젊은애들이 말하는 내공에서 나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꾸민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 우리 인생살이 아닙니까. 보기 드물게 따뜻하고 수수한 분을 알게 되어 참 기쁩니다. 평안하십시오.”
이런 글을 받고 나면 누군들 감동하지 않겠는가. 졸저를 읽고 독후감을 보내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역시 답장을 보내드렸고, 이후 계속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물론 그 분의 인천 집으로 찾아가 만난 적도 있다. 100일째 되던 날 찾아갔다. 처음 뵈었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친누님이 오래된 동생을 대하는 것 같았다.
가장 최근에 보내준 글 역시 나로 하여금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저녁 나절에 경비실에서 택배가 와 있다고 하여 보니 선생님의 책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책 표지가 너무 예쁘고 매력적입니다. 이미 읽었던 내용이 많았는데도 새 옷을 입어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졌어요. 이번 책으로 인해 선생님의 색채가 더 공고히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조미료 없는 집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개운한 뒷맛…… 주부라서 늘 밥에 비교를 하네요. 아무튼 책을 거듭할수록 더 확고해지는 선생님만의 색채, 참 좋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을 인공 조미료가 안 들어간 집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먹고 나서 속이 편해지고 개운해서 힘이 나는 밥과 같은 글, 오늘도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힘을 주는 영혼의 양식이 되길 바라면서. 또 소식 드릴게요.” 이처럼 다정다감하다. 독자의 주문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써온 대로 계속 쓰겠다고 다짐한다.
경북 구미에 살고 있는 주부 서정숙 씨도 잊을 수가 없다. 경북 청송이 고향인 그녀는 여전히 문학소녀답다. 어릴 적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지인이 전해준 내 책을 보고 메일을 보내왔다. 그래서 인연이 닿았다. 남편과의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메일 구석구석에 그녀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 번째 에세이집 『사람풍경 세상풍경』이 나오자 가장 좋아했던 사람도 그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보내온 글에도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야 글을 보냅니다. 그동안 아들과 딸이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고등학교는 내신을 잘 받아야 하기에 인터넷도 못하고 아이들 공부할 때 저는 『사람풍경 세상풍경』을 읽으며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책은 재미있게 잘 보았어요. 살다 보면 작은 것에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산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네요. 비 오고 바람 불고 황사까지 날리는 고요한 봄날 …… 몇 개월 세월이 지났지만 정작 인사 한번, 성의표시도 한 번 못했는데 그저 좋은 인품과 귀한 인연, 고마움에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삶의 향기, 희로애락, 인생을 노래하는 글을 보따리 보따리 풀어서 쓴 이야기를 일독하며 순간 눈물이 왈칵할 때도 있었고 가슴에서는 감동이 되어 스파크 튈 때도 있어서 참 많이 행복합니다.”
구미에 계신 주부는 아직 보지 못했다. 메일과 전화로만 소식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런데도 남같지 않다. 마치 여동생을 대하는 기분이다. 가정사를 얘기하는 정도까지 이르렀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최근엔 그 주부의 친정아버지로부터 두릅과 고춧가루를 선물로 받았다. 모두 자연산. 딸에게서 내 얘기를 전해 듣고 보냈다고 했다. 행복이 배가 됨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나는 겨우 내 책 두 권을 보내드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 모씨. 먼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안녕하십니까? 동안 옥체 만강하옵시며 두루 집안이 평안하옵신지요. 요즘 날씨가 따뜻한 햇빛이 완연해지는 걸 보니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 저는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최 모란 사람입니다. 현재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어 복역하고 있습니다. 만기는 2012년 5월 15일입니다. 저는 지금 방황의 늪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임과 서성대며 하루하루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헌데 우연히 교도소 측의 배려로 『여자의 속마음』이란 에세이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조풍연(내 성을 조씨로 바꿈) 선생님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의 내용을 보고 정말 감명깊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조풍연 님의 연보를 보려고 또한 연락처를 몰라서 황 사장님께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조 선생님의 진솔하고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인생사의 한 단면을 연상케 하는 글귀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고맙다는 글이라도 조풍연 선생님에게 올리고 싶습니다…”<“그래도 행복해지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풍연 외 지음, 북오션>
<싸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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