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약사(略史)
1990년대의 부채 위기: 부도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거의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1990년대 부채위기를 살펴보자. 1995년에 두 번째 멕시코 위기가 터졌다. 멕시코는 대규모의 달러화 부채를 안고 있었지만 외환위기에 대한 별다른 대비책이 없었고 페소화는 늘 압박에 시달렸다.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자본 유출이 일어났고 이자는 늘어났으며 외환 보유고는 고갈되어 갔다.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미국, IMF, 국제 결제은행이 공동으로 500억 달러를 들고 멕시코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국가가 파멸 상태에 근접하면 IMF가 개입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는 국제적 투기 세력으로 하여금 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향해 ‘한 건 건질 게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만들었다.
1998년에는 아시아 위기가 발생했다. 출발점은 방콕 상업은행의 파산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투기자본이 태국 바트화의 무릎을 꿇린 것이다. 곧 이어 아시아의 위기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한국을 덮쳤다. 곧 IMF가 자금을 공급하며 지원에 나서고, 피지원국이 IMF의 재정 건전화 지침을 진지하게 수용하면서 사태는 일단 진정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 러시아에서도 위기가 발발했다.
1990년대의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는 루블화를 일정 변동 폭 내에서 달러화에 묶어놓았는데, 나라가 해외에 빚을 지고 있었고 은행이 그 부채를 달러로 갚아야 했으므로 모든 것이 환율 안정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투자자들은 러시아에서 투자 자본을 빼내 버렸다. 러시아로서는 국채 구매자를 찾기 위해서 금리를 급격히 올려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도래했다. 1998년 8월이 되자 환율 자유화가 불가피해졌다. 자유화 직전에 월가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파이낸셜 타임즈에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요구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결국 이를 용인했고 루블화의 대외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져 엄청난 결과가 뒤를 이었다.
브라질 역시 위기에 처한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모형에 따라 진행되었다. 모든 사태는 1990년대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정부는 과거의 화폐를 버리고 새로운 헤알(Real)화를 도입하여 환율을 달러화에 1: 1(1달러=1헤알)로 고정시키는 화폐개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브라질은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부채에 의지했고, 1995년까지 부채는 다섯 배로 늘어났다. 마침내 1998년 11월에 IMF는 4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들고 뛰어들었다. 동시에 IMF는 급격한 건전화조치를 요구했는데, 이는 경제위기를 더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가부채는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예산 적자는 단박에 위로 치솟았다. 이러한 부담으로 인해 브라질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과거 단골 파산국인 아르헨티나가 또 이 대열에 섰다. 2001년 말, 아르헨티나는 지급불능을 선언했고, 이후 경제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지난 몇 해 동안 다시 과거와 같은 사태가 재발했다.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시피 2007년부터 그 다음 차례의 금융위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 위기는 개별 국가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부채 위기는 이 위기에서 발생했다. <“국가부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발터 비트만 지음, 역자 류동수, ▣ 역자 류동수님, 비전코리아>
층 꽃 나 무 ; 한국(전남,경남),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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