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얼굴들
세상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익숙하고 어떤 이들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 - 친구나 부모, 조부모, 혹은 배우자나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얼굴이 사라집니다. 그의 존재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습니다. 삶의 현장에는 빈자리가 생기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습니다. 새로운 얼굴이 고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익숙하지도, 친근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이라는 얼굴입니다.
슬픔. 당신은 슬픔에 관련해 어떤 경험을 갖고 있습니까? 슬픔은 흔히 우리에게 상처와 혼돈, 당황스러움과 위협감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강한 마음의 고통, 또는 날카롭게 찌르는 슬픔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하던 세계의 바닥이 뻥 뚫려버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삶의 근간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 여겨집니다. 이로 인해 짙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예수님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계셨다는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이셨습니다”(사 53:3).
애통은 슬픔의 경험에 따르는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것은 슬픔이 표현되는 과정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복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슬픔을 고치거나, 더 낫게 만들거나, 떠나보내거나, 극복해버릴 수 없습니다. 슬픔은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나는 여행과 같은데, 그곳에는 골짜기와 봉우리, 사막과 가끔씩 만나게 되는 오아시스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여행의 각 부분을 통과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 끝은 짐작하기 어려우며, 어디에서 여행이 끝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마침내 목적지에 닿게 될 것입니다.
슬픔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힘든 작업입니다. 시간이 지체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종류의 상실에 필수적입니다. 슬픔과 대항해 싸우거나 막으려고 애쓰지 말고 슬픔을 품어버리거나 수용하려 들면 더 많은 회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슬픔으로 하여금 당신의 삶 속에서 애통의 작업을 시작하도록 허락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슬픔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고, 자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끼는 것을 잃어버릴 때 슬픔은 찾아옵니다. 뿐만 아니라 슬픔의 동반자인 고통도 함께 찾아옵니다. 우리에겐 고통에 대한 면역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침입해오면 저항합니다. 어떤 이들은 부인함으로써 고통과 싸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아니야,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줘’, 또는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라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슬픔의 과정은 여러 단계의 부인을 통해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머리로 받아들이고, 다음에는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마지막에는 삶의 양식을 드러난 현실에 맞게 조정을 하게 됩니다. 부인하는 태도가 줄어들면 고통이 스며듭니다. 이러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협상을 하거나 자신 안에 파묻혀버리거나 분노를 폭발합니다. 파괴적인 슬픔 슬픔은 너무도 무질서하게 진행이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조절할 수도 없고, 언제 슬퍼할 것인지 예약할 수도 없습니다. 슬픔은 또한 우리의 사고나 감정의 능력을 방해합니다. 혼돈이 찾아오고 기억력이 사라집니다. 보통 때라면 상당히 결단력이 있던 사람도 쉽게 집중을 못하거나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별 후 1년 이내에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들은 이 시기의 강렬한 감정들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슬퍼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슬퍼하거나 애통해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채 가슴속에다 쌓아둡니다. 침묵하는 것은 아직 낫기도 전에 상처를 덮어두는 것과 같아서 감정적으로 세균에 감염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슬픔은 그렇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짐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껏 슬퍼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노만 라이트 지음, 역자 금병달 목사, 김정진 사모, 노란숲> 슬픔은 왜 존재합니까? 왜 슬픔이 있어야 합니까? 왜 꼭 이런 경험을 통과해야만 합니까? 무슨 목적이 있는 건가요? 슬픔을 통해 성경 속의 인물, 욥의 고백처럼 새로운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슬픔은 상처도 가져오지만 또 다른 면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느 작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에 완전히 잠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죽음을 진정으로 심각하게 경험하게 될 때, 당신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obert Veninga, A Gift of Hope) 슬픔은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정도 아니지만, 가치 있는 여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품이나 인생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속되는 슬픔에 잠겨 사는 동안 이러한 슬픔이 평생을 가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들 때는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마음껏 슬퍼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노만 라이트 지음, 역자 금병달 목사, 김정진 사모, 노란숲>
▣ 저자 노만 라이트(H. Norman Wright)
저명한 기독교 상담가로서 30년 이상 상담사역에 헌신해 왔으며, 전미 지역에 혼전상담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이다. 그는 현재도 왕성하게 결혼세미나, 자녀양육세미나, 인생의 상실로부터의 회복, 트라마 위기상담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한 위기상담전문가로서 애도, 상실, 트라마로부터의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오고 있다. 본서 『마음껏 슬퍼하라(Experiencing Grief)』는 삶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던져진 치유지침서로서 널리 권해지고 있는 책이다.
그는 미 연방정부 산하의 다양한 부서들(전미 피해자지도목사회와 상담가협회, 아동학대사회복지과, 병원들)과 연계하여 많은 워크숍과 실습훈련을 실시하였으며, 9.11테러와 카트리나 홍수 때는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치유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였다. 저서로는 『마음껏 슬퍼하라』, 『위기상담학』, 『상실로부터의 회복』, 『당신의 과거와 화해하라』, 『여성을 위한 카운슬링』, 『부모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외 70여권이 있다.
참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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