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빼앗는 금융회사
올해로 직장 생활 20년을 넘긴 A씨. 그는 지난 3월 3,000만 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의 만기를 연장하려다 달라진 금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 연 9%를 적용했는데 이제부터는 연 10.54%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시장 상황이 변했고 애당초 통장계약을 체결할 때 캠페인성으로 유치하던 탓에 금리를 싸게 매긴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연체 없이 은행에 이자를 납부해 온 A씨로서는 돈은 돈대로 내고 이자는 더 올라갔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은행들은 잔뜩 분칠한 얼굴로 예쁘게 꾸민 채 고객을 응대한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려는 은행의 호객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돈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대우도 좋다. 최초 거래 고객에게는 예금금리를 더 얹어 주고 대출금리는 깎아 준다. 아예 “다른 은행의 고객을 빼오라”고 주문하는 은행도 있다. 문제는 기존 고객들이다. 은행들은 꼬박꼬박 이자를 내거나 금융거래를 해온 기존 거래 고객들은 당연시한다. 물론 거래 기간이 오래되고 금액이 많아질수록 수수료 감면과 이자 혜택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기존 거래 고객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는다. 은행은 이렇게 자신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고객을 정교하게 배신한다. 금리와 관련된 영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일반 고객은 금융수수료와 대출이자로 은행을 충실하게 돕고(?) 있지만 은행은 오래된 고객도 단순 영업 대상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금융 상품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점을 이용해 고객들을 일단 끌어들이고 보자는 미끼 상품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주요 시중은행이 문을 닫자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동원해 은행 자산을 깨끗하게 해줬다. 당국은 은행들이 다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줬다. 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지난 2008년 말에는 이른바 자본 확충 펀드(은행의 자본 확보를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만든 펀드)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국민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정부는 해외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고 은행들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은행들은 금리 따먹기 장사에만 몰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놓는 논리는 오히려 대담하기까지 하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장사를 한다고 욕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일본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도 대단한 금융기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은행들은 속된 말로 금리 따먹기로 장사를 합니다. 그것도 금융입니다.”<“은행의 거짓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영기, 김영필 지음,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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