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 왕조가 잉글랜드를 통치한 기간은 3대에 지나지 않는다. 전후의 다른 왕조들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튜더 왕조가 지배한 118년 동안 왕위에 올랐던 다섯 명의 튜더(세 명의 왕, 그리고 결혼이 아닌 고유의 권한으로 왕위를 물려받은 최초의 두 여왕) 중에서 한 명은 튜더 왕족의 기틀을 만들어 주었고, 한 명은 파란만장한 비극적이고 고독한 삶을 살았으며, 두 명은 불운하게도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가장 오래 산 마지막 여왕은 자신의 인생과 통치기간 내내 생존을 위해 개인적인 행복의 모든 기회를 희생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우울하다.
튜더 왕조가 사라지고 4세기 이상 흐른 지금도 그들 중 한 명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어쩌면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으로, 또 한 명은 가장 유명한 여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두 사람은 단지 유명한 역사 속 인물로 남은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크고 작은 영화나 대중소설에 위대함과 명예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차갑고 무자비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잔인한 행동을 일삼고 백성들의 행복에 무관심했던 두 사람이 이렇게 마치 스타처럼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튜더 왕조의 핵심 인물인 헨리 8세는 다른 군주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세계사를 바꿔놓았으며, 학자들이 그의 치세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에는 늘 신앙의 문제가 거론되었다. 헨리와 그의 딸 엘리자베스가 단순한 통치자를 넘어 정치적 선전과 연기의 달인이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은 실제와 거의 연관성이 없는 허구의 자신을 만들어놓고 그 뒤에 숨어 살았지만, 그럼에도 당대의 집단적인 생각에 성공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들이 만든 페르소나(Persona, 삼위일체에서 파생된 지혜와 자유의지를 갖는 독립된 인격적 실체)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그 페르소나가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정치적 유용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엄격하고 학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인 튜더 학자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수 있을 뿐이며, 저자가 제시한 사실이나 주장은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내용이다. 하지만 왕조 전체를 다룬 이야기는 그 어느 전기보다도 오히려 깊이가 있다. 튜더 왕조의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전후의 배경과 함께 원인과 결과가 제시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요약)
지나친 튜더 가의 행운 1485~1532
헨리 튜더의 행운
헨리 7세의 위대한 유산: 헨리는 운명이 가져다준 커다란 기회를 포착해 성공으로 이끌었고, 남은 인생을 바쳐 그동안 자신이 이룬 것들을 조심스럽게 통합해 나갔다. 매사에 빈틈이 없었던 그는 보스워스 전투 전날을 통치 기간의 첫날로 기록하여, 전투 당시 자신에게 맞선 모든 이들에게 반역죄를 적용했다. 헨리 7세는 교회의 권력도 빼앗았다. 잉글랜드에서 주교직은 왕실에 공헌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되었다. 따라서 왕에게 충성하는 데 익숙하고 자신의 지위가 왕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치인들이 교회의 지배 계급을 장악하게 되었다. 귀족들은 프랑스의 왕이 더 이상 예전처럼 약하지 않다는 사실은 모르고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 대륙으로 쳐들어가 잃어버린 가문의 재산을 되찾고 싶어 했지만, 헨리는 전쟁을 피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헨리 7세의 유산 중 오늘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선명히 기억되고 있는 부분은, 그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법을 악용하여 부유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은 탐욕스러운 왕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판은 완전히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헨리는 전혀 구두쇠가 아니었으며, 왕실에 상비군이 없고 비상시에 귀족들에게 전력을 의지하는 오랜 관행도 점점 무너지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국고를 채우는 일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는 겨우 52세였지만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잉글랜드 백성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건강을 되찾은 헨리 7세가 아니라 그와 이름이 같은 아들이었다.
헨리 8세의 등장: 17세의 ‘헨리 8세’는 잉글랜드 역사상 거의 90년 만에 처음으로 경쟁자 없는 정권 교체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이러한 정권 교체만 봐도 헨리 7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냈는지 알 수 있다. 왕이 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었다. 대포의 출현으로 인해, 오랫동안 방어에 꼭 필요했던 중세의 춥고 어두운 석재 요새는 공격에 취약해져 곧 사라졌다. 새로 발명된 대포는 기술적으로 불완전하고 옮기기도 힘들며 사용하기에 안전하지는 못했지만 이 무기 덕분에 중앙정부는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이들보다 훨씬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갑자기 온 왕국을 통치하게 된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즉위하기도 전에 결혼함으로써 독신생활을 청산했다.
그가 이렇게 빨리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교양 있는, 왕비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형의 미망인이자 스페인 왕 페르디난도의 딸인 캐서린이었다. 헨리 7세 통치 말기의 어둡고 우울하던 왕궁에 이제는 음악과 춤과 웃음이 넘치기 시작했다. 왕실의 중심에는 행복한 왕과 왕비가 있었다. 젊은 왕은 지적 수준이 비슷하면서 자신보다 훨씬 더 경험 많고 성숙한 왕비에게 푹 빠져 있었다. 백성들은 헨리가 어떤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수년간 음울한 시간을 보낸 그들은 이제 열정적이고 활기 넘치는 젊은이가 왕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잉글랜드에 새로운 아침이 밝은 것 같았다. <“튜더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G. J. 마이어 지음, 역자 채은진님, 말글빛냄>
▣ 저자 G. J. 마이어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우드로 윌슨 장학생으로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때 기자로 활동했고, 하버드대학교 니먼 장학회에서 언론 장학금을 수여받았다. 그는 디모인, 세인트루이스, 뉴욕 등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A World Undone: The Story of the Great War』,『Executive Blues』, 그리고 미국추리작가협회 에드거상 수상작 『The Memphis Murders』 등이 있다. 현재 그는 영국 고링온템스에 거주하고 있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의 중대사 (0) | 2011.11.11 |
---|---|
다음 20년을 맞이하는 자세 (0) | 2011.11.11 |
소셜 웹 (0) | 2011.11.11 |
자본주의의 네 단계 (0) | 2011.11.11 |
탈구속적 소비자 (0) | 2011.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