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1907)
당시는 많은 선교사들이 정신적, 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채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해외 선교를 나갔다가 깨어지고 실망한 가운데 돌아오는 일이 흔했다. 그는 “오늘날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나라에 연관된 방대한 주요 문학을 무시하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듯한 영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선교지로 나가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전달하는 데 전혀 맞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챔버스는 비록 4개월간에 불과하지만, 그가 내렸던 결론들을 이 ‘이방’ 땅 일본에서 실제 삶에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일본에 도착한 챔버스는 날마다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고, 그 내용을 7월 말 일기에 담는다.
벌써 일본에 온 지 3일이 되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실제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볼거리가 가득할 뿐 아니라 차나 음식 등 난생 처음으로 내 입에 들어오는 것들도 대단하다. 이곳의 인상이나 기분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치유의 신이 있는 산당들을 보고 있노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다. 사람들이 하도 우상을 만져서 우상이 다 닳아 있었다. 내일 우리는 YMCA에서 3일간의 환영 집회를 시작한다. 모든 순간이 놀랄 만하고 한없이 흥미롭다. 밤에 지쳐서 돌아오고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잠잘 시간이 거의 없다. 모든 모임마다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드는 사람들의 간절함은 참으로 놀랍다. 구원을 삼켜버릴 듯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다.
카우만과 킬보른에 의해 설립된 동양선교회는 그때 겨우 6년 반이 되고 있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내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과의 끈끈한 유대는 그 선교회에 기도와 경제적 도움의 든든한 밑받침이 되어 주었다. 집회 기간이 끝나고 8월 6일, 챔버스는 길보른과 나카다와 함께 카루이자와에 있는 선교 센터에 갔다. 이곳은 선교사들을 위한 여름 휴양지였다. 이곳에 대해 적힌 챔버스의 일기장에는 그가 공중 앞에서나 사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내면의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한 그룹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전혀 그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나약한 가운데 축 늘어진데다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큰 성경을 들고 다니며 “대단히 사랑스러운 사람, 하나님의 향기로운 사람, 너무나 사랑스러운 누구누구” 등 과장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구토가 나올 정도로 역겨운 사람들이었다. “여러분이 거룩해지면 주 예수님께 즐거움이 될 줄을 아시지요?” 그는 양손을 깍지 끼고 사람들에게 거슬리지 않게끔 달콤한 웃음으로 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이 하늘의 왕의 대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다.
챔버스는 극단적인 낙천주의자가 아니었고 무지와 두려움 가운데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영적 타조도 아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나오거나 분명치 않은 못마땅한 말투로 전달되는 기독교 메시지에 사용되는 종교적, 상투적인 단어나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선호했다. 그는 카우만과 킬보른의 선교 사역에 대해서는 “나는 그들의 사역이 이렇게 정교하고 멋지게 조직적인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고 말했다.
챔버스는 카우만 부부가 자신들과 함께 영국으로 동반해 줄 것을 부탁함으로써 일본에서 채 한 달도 체류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카우만 부부는 챔버스가 동양선교회가 운영하는 도쿄 성경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것보다 고국에서 자신들의 선교 단체를 대변하는 설교가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다. 그들은 8월 21일 출발해서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콜롬보, 아덴(아테네), 홍해, 수에즈 운하, 포트사이드, 지중해, 그리고 로마와 스위스, 마르세이유, 파리를 경유했다. 10월 3일, 챔버스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면서 형 아서에게 편지를 쓴다.
형, 상상해봐. 오늘 12시에 우리는 배에서 시내산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어! 홀로 외로이 있는 광야. 사나우며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광야, 말로 표현 못할 외로움의 그 큰 고통과 바짝 마르게 하는 열기 속에서 시내산은 말 못할 깊은 신비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 신비는 인간들에게 친숙하지도, 평범하지도, 평안하지도 않겠지. 수천만 년 동안 흉터와 마른 모래로 가득한 이 산들은 현대 문명의 발전과 자랑을 ‘솥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로 만드는 신비를 담고 있었어. 오늘 밤 내 마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평생 지울 수 없는 평강을 체험했어 <“순종의 길(1부-3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빗 맥캐스랜드 지음, 역자 스테반 황교수, 토기장이>
늦가을 메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