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란 미래의 부에 대한 청구권이다. 그리고 부채 규모가 점진적으로 커진다면 이는 미래 경제가 현재보다 더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게다가 약간 성장에 그치면 안 된다. 부채를 전액 상환해 채무불이행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미래 경제가 현재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가 GDP의 360%를 넘고 총 부담금이 GDP의 1,000 %를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 미국의 GDP는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더 많은 자동차를 팔고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경제 구조가 더욱 복잡해져야 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부채에 따라 미래가 크게 좌우되는 은행, 연기금, 정부의 지급 능력 등은 모두 지속적인 성장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계속 부채를 늘려야 할 압박감이 발생하고 정부당국이 경제성장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계속 부채만 축적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부채를 축적하지 않으면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부채 시장이 미래에는 무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날은 두 가지 형태로 닥쳐오겠으나 결과는 오직 한 가지 형태로만 나타날 것이다. 즉 지금 우리가 부(weath)라고 여기는 많은 것이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부의 파괴는 두 가지 상반되는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 첫째는 채무불이행 과정으로 나타나는 디플레이션이며, 둘째는 인플레이션이다. 채무불이행 시나리오에서는 돈의 가치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우리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며, 그 결과 미래의 지급 청구액이 줄어든다. 인플레이션 시나리오에서는 돈을 돌려받지만 그 돈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어려우며 그 결과 미래의 지급 청구액이 줄어든다. 두 경우 모두 미래의 부가 줄어들며 그 충격은 동일하다. 단지 손해를 보는 메커니즘이 다를 뿐이다.
파괴적인 통화 발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자 선진국 정부 대다수는 거품 경제 유지를 위해 케인스식 경기 부양책으로 선회했다. 이는 경제 안정을 위해 부채 수준을 사상 최대 규모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역사가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건전한 부채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총 부채 규모가 과도하게 증가했다는 것을 인식하면 이들 국가는 거의 예외없이 화폐발행이라는 무기를 꺼내 든다는 사실이다. 화폐발행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해법이지만 그 파괴적인 효과가 현재가 아닌 미래 어느 시점에 나타나기 때문에 심판의 날을 뒤로 미룰 수 있다. 한 마디로 ‘약’ 속에 ‘병’을 숨겨 처방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시중에 화폐를 풀어놓은 경우 금융기관은 채권(부실채권)을 중앙은행에 교부하고 대신 현금을 받는다. 그 반대 과정은 금융기관이 다량의 현금을 준비하고 있다가 이를 중앙은행에 넘기고 그 대신 채권(부실채권)을 넘겨받는 식으로 전개된다. 현금이 금융기관에 그대로 쌓여 있는 경우는 없다. 현금이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현금을 조달하려면 다른 것을 팔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현금을 시중에 유포하는 것이 이를 회수하는 것보다 쉬운 것이다. 이처럼 화폐의 투입과 회수 과정 간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부채 부담을 줄인다. 인플레이션을 통한 부채 축소는 공식적인 계약 파기라든가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은밀한 형태의 채무불이행이라 할 수 있다.<“크래시 코스”에서 극히 일부 요약발췌, 크리스 마틴슨 지음, 역자 이은주님, 미래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