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경제
에너지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기존의 에너지 흐름 유지, 자본 구조 구축, 기초 생활용 등으로 재투자해야 하는 에너지(필수 지출)와 자유재량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선택적 지출)가 그것이다. 선택적 에너지는 성장 혹은 번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잉여 에너지가 된다. 오늘날 잉여 에너지의 양은 줄어들고 있다. 필수 지출 부문은 매년 증가하는 반면 재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매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년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총량보다 현재와 미래의 행복에 훨씬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얻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다. 이를 순에너지(net energy)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유정을 발굴해 채굴 작업을 하는 데 석유 1배럴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석유 100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자. 이때 순에너지 수익률은 100:1이 된다. 1930년대 순에너지 비율은 100:1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생산된 석유의 순에너지 비율은 3:1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요즘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과거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유전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과거보다 훨씬 깊게 굴착해야 석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르샌드와 오일셰일에 함유된 막대한 양의 원유는 어떠한가? 이런 유형의 원유는 순에너지 수준이 극히 낮으며 투자 대비 생산 수익률이 100:1에 달하는 사우디 산 석유에 비할 바가 못된다. 타르샌드의 비율은 5:1 정도이고 오일셰일은 2:1에 불과하다.
재생가능한 에너지원도 순에너지 비율이 낮기는 마찬가지이다. 메탄올의 순에너지 비율은 2.6:1이고, 바이오디젤은 1:1~4:1 사이이다. 물론 태양에너지와 풍력은 순에너지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에너지원은 액체연료가 아니다. 피크오일은 ‘액체연료의 생산 정점’을 나타내므로 여기서 말하는 액체연료의 주된 에너지원은 석유를 말한다. 남아 있는 에너지 후보 가운데 순에너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올릴 방법을 서둘러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요구를 충족시킬 잉여 에너지는 화석연료 시대와 비교하여 그 양이 턱없이 줄어들 것이다. 에너지 생산 비용은 매우 높게 증가할 것이고 순에너지 비율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의 핵심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피크오일
에너지는 경제(복잡계) 활동의 근원이다. 이런 복잡계로 에너지가 지속 유입되지 않으면 질서와 복잡성 수준이 감소하고, 복잡계 체계가 점차 무너지면서 무질서 상태로 돌입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채를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이라면 부채 및 경제 팽창의 원동력인 에너지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급속하게 팽창하는 시스템은 급속하게 축소될 위험도 크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에너지 덕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경제는 반대로 그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급속하게 붕괴될 것이다.
피크오일을 원유의 고갈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크오일은 생산 정점에 달할 때까지 생산량이 다소 증가하다가 그 이후로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정점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비교해 후반부에는 원유 추출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정점을 기점으로 추출한 원유의 시장 가치보다 추출하는 비용이 더 많아지게 되면 해당 유전의 경제적 효용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다. 피크오일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관찰된 사실이다. 수많은 소규모 유전으로 구성된 전 세계 유전은 점점 고갈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피크오일을 경험하고 있다.
피크오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피크오일의 정확한 시점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피크 오일의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2005년을 기점으로 이후 30년 안에 그런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석유 생산 정점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아내는 것은 학자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석유 수요가 공급을 능가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석유 시장에 영구적이고 급작스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가장 먼저 유가 폭등이 올 것이다. 석유 부족 사태가 감지되는 순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석유의 대외수출을 금지할 것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유가 상승의 문제는 석유 부족 문제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크래시 코스”에서 극히 일부 요약발췌, 크리스 마틴슨 지음, 역자 이은주님, 미래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