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받은 것만 기억하라

[중산] 2011. 12. 1. 11:56

받은 것만 기억하라

장애인 봉사단체에서 만나 알게 된 금자 씨와 영미 씨는 3년째 가깝게 사귀는 친구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근교의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하루 3~4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가끔 경치 좋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금자 씨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바리바리 싼 물건들을 영미 씨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밭에서 고구마를 좀 캤잖아. 혼자 먹기는 너무 많으니까 당연히 나눠 먹어야지. 그리고 이건 산나물인데 시골 사시는 이모님이 동네 뒷산에서 봄에 캐서 말렸다가 보내주셨더라. 이것도 가져가, 한두 번씩은 해 먹을 만한 거야. 금자 씨가 꺼내온 보자기를 풀며 이렇게 설명하자 영미 씨는 고마워하며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걸 자기네 텃밭에서 캤다고? 완전 무공해잖아! 너무 고마워. 허구한 날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 어떡하니? 금자 씨는 제 집 텃밭에서 나는 채소는 물론 그냥 장을 보러 갔다가도 좋은 게 있으면 많이 사다가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녀는 그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뭘 어떡해? 얻어먹기는 뭘 얼마나 얻어먹었게. 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 보면 더 주고 싶어. 오늘 커피값도 내가 낼게.

 

그 다음에도 만날 때마다 금자 씨는 건빵 한 봉지라도 나눠주곤 했으며 빈손으로 오는 날이 없었다. 그때마다 영미 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받아들곤 했다. 고마워. 난 줄 것도 없는데. 이 책 요새 읽는 중인데 참 좋더라. 너도 읽어봐, 선물이야." 금자씨가 열 번 정도 이것저것 나눠주는 데 비해 영미 씨가 가끔 읽던 책이 감동적이라며 주는 것은 한두 번에 불과했다. 그래서 영미 씨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금자 씨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영미 씨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실 때까지도 영미 씨는 선물은커녕 아무것도 건네지 않았다. 금자 씨는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 서운하다. 친구 생일이라는데 아무것도 안 주나? 내가 그동안 자기한테 퍼준 것이 얼만데. 돌려받자고 준 건 아니지만 대단하다. 아냐, 내가 주고 싶어서 줘놓고 왜 이러지. 그래, 그냥 밥 한번 샀다고 생각하자! 일부러 생일선물 받자고 점심을 산 건 아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금자 씨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덧 점심 식사와 수다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며 영미 씨가 말했다. 오늘 점심 정말 잘 먹었어. 생일 정말 축하해. 조심해서 잘 가. 그러면서 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금자 씨는 그렇게까지 무심하고 개념 없는 친구에 대해 온갖 생각을 다하게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챙겨 온 거였어? 친구 생일인데. 이게 뭐야? 왜 자꾸 본전 생각이 나는 거지? 그러면 안 되는데. 사실 쟤가 뭘 달라고 한 적은 없잖아, 내가 좋아서 준 거지.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좀 그러네. 생일인데. 금자 씨는 어떻게 왔는지 생각도 안 날 만큼 복잡한 심정으로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때 경비 아저씨가 소포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것은 귀한 상황버섯 두 세트였다. 바로, 영미 씨가 보낸 생일 선물이었다.

 

누군가에게 준 것을 일일이 기억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빚쟁이가 되고 만다. 그러니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상대방도 기억해 주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면, 내 마음이 움직여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준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준 것을 기억하고 몇 가지가 되돌아왔는지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상대방과 진정한 교류, 즉 소통이 아닌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상대방과의 무한한 소통을 원하는 감정의 다른 표현이다. 인사를 주고받고, 나아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교류하다 보면 내가 가진 것도 기꺼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한 자연스런 소통의 감정을 이기심으로 오염시키지 말라.

 

상대방이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할 필요도 없다. 번번이 당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 받는 상대 역시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으로 보답하지 않는다고 조바심내지 말라. 어쩌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나눠주는 행복한 일에 있어 대가를 기대하거나, 준 것만 기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 무조건 상대에게서 받은 것만 기억하라. 그것이 참으로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노크 없이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유재화 지음, 책이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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