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필리어스 포그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생활은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아무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포그 씨는 클럽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80일 동안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는 엉뚱한 제안으로 2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상금을 걸고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이 소문은 영국 전역에 퍼져 포그 씨는 모든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포그 씨가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에 마침 은행도둑 사건이 있었고, 단순하고 의무감이 많은 런던 경시청 소속의 픽스 형사는 거액의 돈을 갖고 여행길에 오른 포그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 어디라도 쫓아가 그를 잡으려고 한다.
한편, 포그 씨는 이러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픽스 형사와 줄곧 여행을 함께 하고 그를 친절하게 대한다. 포그 씨는 인도를 여행하던 도중 아우다 부인이라는 불쌍한 인도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산 채로 화형당할 뻔한 그녀를 구출한 뒤 함께 여행을 한다. 픽스 형사는 어떻게 해서라도 포그 씨를 잡으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생각 끝에 픽스 형사는 파스파르투에게 포그 씨가 은행도둑 범인임을 말하고, 자기를 도와주면 상금을 나누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인을 믿고 있는 착한 파스파르투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리고 얼마 후, 파르파르투는 행방불명이 되는데…(내용 요약)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필리어스 포그 매사에 빈틈이 없고 침착함을 잃지 않는 40대의 영국신사다. 하인
파스파르투와 80일간의 세계일주에 오른다.
파스파르투 의협심이 강하며 무슨 일이든 곧잘 흥분하는 30대의 프랑스 사람이
다. 포그씨의 하인으로 세계일주에 동행한다.
아우다 부인 우아하며 품위있는 30대의 인도 여인. 산채로 화장될 뻔 하지만 포 그씨와 파스파르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픽스 형사 런던 경시청 소속의 형사로서, 포그 씨를 은행도둑의 범인으로 단정 하고 끈질기게 뒤쫓는다.
크로마티 장군 인도 베나레스에 주둔한 여단장으로 50세쯤 되는 금발의 장군. 아우
다 부인을 구출할 때 행동을 같이 한다.
프록터 대령 미국 유군 대령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선거운동에서 포그 씨와 우연히
만나게되고, 후에 기차에서 다시 마주치자 결투를 하려한다.
포그 씨, 2만 파운드로 내기를 걸다
오늘밤 당장 떠나겠어. 오늘은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80일 뒤인 12월 21일 토요일 오후8시 45분에 런던으로 돌아와 이 살롱에 앉아 있겠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할 때에는 2만 파운드는 자네들의 것이 되는 거야.
1870년의 일이다. 영국 런던에 필리어스 포그라는 한 신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부자이며 유명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클럽의 회원이다. 그런데 그의 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다소 성격이 까다로운 편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지만 인색하지 않으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하는 일이라곤 클럽에서 신문을 읽거나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 하루일과의 전부였다.
10월 2일 아침, 그날도 여느 때처럼 면도를 하는데 하인인 포스터가 미지근한 물을 가져왔다고 하여 포그 씨는 그를 당장 해고시켜 버렸다. 면도를 할 때 쓰는 물은 항상 화씨 86도여야 하는데 그날은 84도밖에 안된 것이었다. 그래서 11시쯤에는 새로운 하인이 오기로 했고, 포그 씨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30세쯤 되어 보이는 한 젊은이가 들어왔고 자신을 파스파르투라고 소개했다. 포그 씨는 자신의 하루일과를 꼼꼼히 적은 종이를 보여 주며 해야 할 일들을 말해 주고 나서 혁신클럽으로 갔다.
클럽의 안쪽 테이블 한 구석에선 랄프 은행의 도둑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야기하고 있던 친구들은 포그 씨를 보자 범인이 잡힐 수 있을지에 대하여 그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그는 지구가 좁아졌으니 범인은 숨을 곳이 없을 테고, 곧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비록 옛날과는 달리 세계를 석 달만에 일주할 수 있긴 해도 지구가 좁아진 것은 아니라고 한 친구가 말하자 포그 씨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80일이면 돼.” 처음 말을 꺼냈던 스튜어트는 펄쩍 뛰었다. 그런데 나머지 친구들은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2만 파운드를 걸고 내기는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만일 포그 자네가 80일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자네가 건 그 2만 파운드는 없어지고 마네!” 이 말을 들은 포그 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오늘밤 당장 떠나겠어. 오늘은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80일 뒤인 12월 21일 토요일 오후 8시 45분에 런던으로 돌아와 이 살롱에 앉아 있겠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할 때에는 2만 파운드는 자네들의 것이 되는 거야.” 당장 그 자리에서 내기 계약서가 만들어졌고 6명의 신사들은 사인했다.
포그 씨는 집으로 돌아와 하인 파스파르투를 불러 10분 뒤에 세계일주를 하러 곧 떠날것이라고 하자 파르파르투는 어안이 벙벙했다. 포그 씨는 하인의 손가방 안에 어느 나라에서든지 쓸 수 있는 돈다발을 넣은 뒤, 마지막 점검을 하고 하인과 함께 집을 나와 런던역 대합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클럽의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후, 파스파르투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자기 방에 있는 가스램프 끄는 것을 깜박 잊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포그 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여행이 끝났을 때 돌아와서 네가 가스값을 물면 되지.”
그런데 포그 씨가 떠난지 7일 뒤, 런던 경시청에는 잉글랜드 은행 도둑인 필리어스 포그를 미행 중이니 봄베이로 그의 체포영장을 보내달라는 전보 한통이 날라왔다. 이 전보로 인해 포그 씨는 꼼짝없이 도둑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평소 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터라 그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10월 9일 수요일, 수에즈에서 오전 11시에입항할예정인몽골리아호를기다리며두명의사나이가항구에서서성대고있었다. 한 사람은 영국 영사이고, 또 한 사람은 런던 경시청 소속의 픽스 형사였다. 상금을 탈 욕심에 픽스 형사는 눈이 빠지게 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적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이윽고 몽골리아호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났다. 배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몰려나왔고 항구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픽스 형사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때 한 사나이가 영국 영사관이 어디냐며 여권을 내밀었다. 무심코 쳐다본 여권에는 바로 그가 찾는 사람이 있었다.
픽스 형사는 위치를 알려 주고는 재빨리 영사관으로 돌아와서 범인을 찾았다며 입국허가증을 내주지 말 것을 부탁하지만 영사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가 들어왔다. 포그 씨는 수에즈를 지나갔다는 표시가 필요하다며 입국허가증을 부탁했고 영사의 사인을 요청했다. 여권을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므로 영사는 입국허가증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수속을 끝낸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가 나가는 것을 보며 픽스 형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 포그 씨는 선실로 돌아와 쉬고 있었고, 파스파르투는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픽스 형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시장을 안내해 주는 척하며 앞으로의 여행계획과 포그 씨에 대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픽스 형사는 영사에게 찾아와 말했다.
“저는 인도까지 포그 씨의 뒤를 밟겠습니다. 그곳은 영국 영토니까 체포영장만 있으면 잡을 수가 있죠.”
아우다 부인을 구해 내다
15분 뒤, 픽스 형사는 간단한 여행준비를 하고 몽골리아호에 올라탔다. 한편, 포그 씨는 갑판에 올라오거나 홍해의 경치를 보려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 배 안에서 꼬박꼬박 식사를 하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수에즈를 떠난 다음 날인 10월 10일, 갑판 위에서 파스파르투는 픽스 형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픽스 형사는 그에게 그의 주인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 뒤로도 그는 파스파르투와 자주 만났고 그들은 배 안에 있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픽스 형사는 그와 사이좋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0월 20일 정오쯤 몽골리아호는 봄베이에 닿았고, 이는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진 것이었다. 포그 씨는 만족해하며 이런 사실을 수첩에 기록했다.
봄베이에서 캘커타로 가는 기차는 아침 8시에있었다. 포그 씨는 배에서 내려 파스파르투에게 필요한 몇 가지를 사오게 하고, 영사관으로 가서 사인을 받았다. 계속 뒤쫓아오던 픽스 평사는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지만 영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마침 조로아스터 교도의 자손인 파시족의 축제일이어서 볼거리도 많았다. 거리에는 가장행렬이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축제구경을 마치고 역으로 돌아오던 파스파르투는 마리바르 언덕의 사원 앞을 지나게 되었고, 문득 사원 안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리스도 교도는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설령 그들과 같은 교도일지라도 사원에 들어갈 땐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파스파르투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사원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돌층계로 내동댕이 처져 실컷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본래 힘이 세고 날렵한 그는 벌떡 일어나 중들을 쓰러뜨리고 사원에서 도망쳤다. 중들은 곧 뒤쫓았지만 그들의 긴 옷자락 때문에 그를 놓치고 말았다. 파스파르투는 기차가 출발하기 5분 전에 간신히 역에 도착했다. 물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산 물건까지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
플랫폼에는 픽스 형사가 나와 있었다.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가 8시에 떠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캘커타까지,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갈 생각이었다. 인도 대륙을 가로지르는 캘커타행 기차는 정각 8시에움직이기시작하여곧밤의어둠속으로사라져갔다.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 맞은 편 자리에는 코로마티 장군이란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베나레스의 여단장으로 부임하러 가는 길이었다. 50세쯤 되어 보이는 이 장군은 젊었을 때부터 인도에서 살았으므로 인도의 풍습이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파스파르투가 겪었던 사원에서의 일을 듣고난 후, 인도 정부는 종교의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10월 22일 오전 8시, 기차가 갑자기 넓은 들판에서 멈추었다. 알고보니 아직 철로가 다 놓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곳에서 80km 정도 되는 알라하뱃까지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포그 씨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파스파르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바로 코끼리였다. 파스파르투가 코끼리 얘기를 하자 포그 씨는 반가워했다.
코끼리 농장이 있는 곳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코끼리의 수가 점점 줄어가는 형편이어서 몹시 비쌌다. 포그씨가 값을 계속 올려도 주인은 배짱을 튀겼다. 마침내 2천 파운드까지 흥정이 되자 그제서야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영리하게 생긴 한 젊은 파시인이 안내를 자청했다. 포그 씨는 먹을 것을 사고 크로마티 장군과 파스파르투와 함게 코끼리 안장 위에 올랐다.
종려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 밀림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다들 피곤했으므로 그들은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쉬었다가기로 했다. 날이 밝자 일행은 아침 일찍 다시 출발했다. 안내인은 그날 밤으로 알라하뱃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포그 씨도 여행시간을 절약했던 48시간 중에서 일부만 소비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후 4시쯤, 주변에서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왔고, 거대한 무리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행렬 속의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울한 소리로 주문을 계속 외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동양식으로 만든 화려한 옷을 입은 바라문 교도들이 비틀거리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한 여인을 앞세우며 오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크로마티 장군은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안내인은 거기에 덧붙여 분델칸트 자치령의 임금이 죽어서 그의 아내가 함께 화장될 것임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난 포그 씨는 그 여인이 무척 가엾게 느껴져서 그녀를 구하자고 말했다. 포그 씨의 깊은 인정에 마음이 끌린 크로마티 장군도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파스파르투 역시 포그 씨의 훌륭한 계획에 따르기로 마음먹었으며, 주인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무척 기뻤다. 남은 것은 안내인뿐이었는데 그 안내인도 선뜻 나서는 것이었다. 안내인은 내일 아침이면 산 제물이 될 여인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파시인으로 봄베이에 사는 큰 장사꾼의 딸이며 이름은 ‘아우다’라고 했다. 봄베이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를 영국인인줄 알았다. 어려서 부모를 여윈 아우다 부인은 분델칸트의 나이 많은 왕에게 강제로 시집을 왔는데, 결혼한 지 겨우 석달 만에 왕은 죽었다. 닥쳐올 운명이 너무도 뻔해 도망쳤던 아우다 부인은 곧 잡혀서 왕의 친척들에 의해 끔찍한 형벌을 받게된 것이다.
여러가지로 의논을 한 결과 해가 지고 난 후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날이 어두워 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밤이 깊어가도 경비병들은 좀처럼 잠들지 않았고,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북소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고 아우다 부인의 죽음은 가까워져왔다. 크로마티 장군은 고개를 저었지만 포그 씨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파스파르투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지만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포기하려 했으나 한 번은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상대가 한없이 어리석은 자들이라서 어쩌면 잘 될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파스파르투는 살며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두 남자가 아우다 부인을 끌어 내었다. 군중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물이 될 아우다 부인은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죽은 듯이 왕의 시체 옆에 눕혀졌다. 기름이 부어져 있는 장작에 횃불을 갖다대자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포그 씨가 장작더미 쪽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크로마티 장군과 안내인이 양쪽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포그 씨가 재빨리 두 사람의 팔을 뿌리치고 나가려고 했을 때,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죽어 있던 늙은 왕의 몸이 마치 유령처럼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아우다 부인을 번쩍 안아올려 장작더미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라문 교도들은 너무 놀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놀란 이들은 포그 씨와 크로마티 장군이었다. 되살아난 늙은 왕은 포그 씨 옆으로 다가와 어서 달아나야 한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바로 파스파르투였다. 네 사람은 재빨리 숲속으로 몸을 숨겨 코끼리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파스파르투의 대담한 모험은 멋지게 성공했다. 10시경, 포그 씨 일행은 알라하벳 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캘커타까지는 기차로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파스파르투가 시내를 바쁘게 돌아다녀 아우다 부인에게 줄 것을 사왔을 때 부인이 정신을 차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포그 씨에게 그녀는 홍콩에 사는 친척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포그 씨는 부인을 홍콩까지 책임지고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기차시간이 가까워졌고 포그 씨는 충실했던 안내인에게 선물이라며 코끼리를 주었다. 그는 몹시 기뻐했다. 잠시 후 포그 씨, 크로마티 장군, 파스파르투는 아우다 부인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12시 30분,기차는 베나레스에 닿았고 크로마티 장군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기차는 계속 달려 다음날 아침 7시, 마침내 캘커타에 도착했다. 홍콩으로 가는 기선은 정오에떠나기때문에아직다섯시간의여유가남아있었다. 이 날은 런던을 떠난지 23일째가 되는 날인데, 그러고 보면 여행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셈이었다.
파스파르투, 행방불명되다
포그 씨 일행이 막 역을 나서려고 했을 때 한 경찰관이 다가와 함께 경찰서에 가주어야겠다고 말했다. 파스파르투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항의하려 했지만 포그 씨가 잠자코 따라가자는 눈짓을 했으므로 얌전히 따라나섰다.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한참을 달려 법정 앞에 멈추었다. 아우다 부인은 모두 자신때문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홍콩으로 떠나는 배는 정오에 있었고, 어쨌든 포그 씨는 그 배를 타야 했다. 8시 30분,문이 열리더니 경찰관이 들어와 그들을 법정으로 데리고 갔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세 바라문 교도가 들어왔다. ‘역시 아우다 부인을 태워 죽이려던 자들이구나.’ 라고 포그 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판사는 증거품이라며 구두 한 켤레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파스파르투의 것이었다.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는 봄베이의 사원에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는 법정에 서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판사는 15일간의 구류와 300파운드의 벌금형을 내렸으나 포그 씨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보석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판사는 가능하다고 했고, 2천 파운드를 보석금으로 정했다.
포그 씨는 보석금을 치르고 법정을 나와 항구로 향했다. 시간은 11시였다. 배가 떠나려면 아직도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픽스 형사는 포그 씨 일행이 배에 오르는 것을 보자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이왕 저놈을 놓치게 될 바에야 이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말테다. 저런 식으로 돈을 뿌리고 다니다간 훔친 돈을 다 써버리겠군.” 한편 랭군호까지 쫓아온 픽스 형사는 생각 끝에 우선 파스파르투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갑판으로 나가 우연한 만남임을 가장하며 파스파르투에게 말을 걸었다. 이때부터 픽스 형사는 교묘한 수법으로 파스파르투와의 만남을 자주 만들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파스파르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픽스 형사가 어쩐지 귀찮을 정도로 자기를 뒤쫓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는 여러 생각 끝에 픽스 형사는 혁신클럽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생각한 파스파르투는 포그 씨에게 말하지 않고, 기회가 되는데로 픽스 형사를 골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포그 씨의 여행계획표대로라면 6일 안에 홍콩에 도착해야 한다. 홍콩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가는 배가 6일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픽스 형사가 파스파르투에게 다가와 예전처럼 말을 걸었는데 웬일인지 그는 홱 돌아서 가버렸다. 픽스 형사는 혹시 그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포그 씨는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아우다 부인의 친척을 찾아나섰지만 그들은 이미 유럽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없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우다 부인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자 포그 씨는 재빨리 함께 유럽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파스파르투는 상냥하고 젊은 아우다 부인이 함께 여행을 계속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면서 호텔을 나섰다. 호텔을 나온 파스파르투는 시무룩한 얼굴을 한 픽스 형사를 발견하고 미국까지 함께 갈 것이냐며 빈정대듯 물었다. 픽스 형사는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때 사무원이 다가와서 배가 내일 아침에 떠나기로 되었지만 예정보다 빨리 오늘 밤 8시에떠날것이라고했다. 파스파르투는 신이 나서 포그 씨에게 알리기 위해 가려고 하자 픽스 형사는 술이나 한잔 하자며 부둣가 술집으로 데려갔다. 픽스 형사는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맘먹고 자신은 형사이고 잉글랜드 은행 도둑사건의 범인이 포그 씨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면 상금의 일부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버럭 화를 내며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쯤 되자 픽스 형사는 파스파르투를 포그 씨에게서 떼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테이블 위에는 아편 빨대가 있었다. 픽스 형사가 그것을 건네자 파스파르투는 담뱃대인줄 알고 불을 붙혀 몇 모금 빨더니 그대로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파스파르투가 깨어날 때까지는 카르나티크호의 출발이 빨라진 것을 포그 씨는 알리 없고, 설사 출발하더라도 그를 버려두고 갈 생각을 하자 픽스 형사는 빙긋 웃음이 나왔다.
포그 씨는 이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파스파르투가 보이지 않자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우다 부인과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부두에 닿았지만 카르나티크호는 이미 떠난 후였다. 그는 전혀 난처하거나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난감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아우다 부인을 위로했다. 그때 픽스 형사가 나타나서 자신도 배를 놓쳤다며 걱정스러운 얘기를 했다. 그러자 포그 씨는 자신이 다른 배편을 알아보겠으니 함께 가자고 한다. 픽스 형사는 어이없어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를 알아보다 간신히 소형 배를 구한 포그 씨는 30분 뒤에 떠나도록 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홍콩 경찰서에 들러 파스파르투의 얼굴을 그려 놓고서 만약 그가 나타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그에 필요한 돈을 넉넉하게 내놓았다. 파스파르투는 아직도 아편에 취해 있는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이윽고 소형 배 탕카딜호는 물결 사이를 누비듯 달리기 시작했다.
포그 씨는 감쪽같이 행방을 감추어버린 파스파르투에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하면서도 어쩌면 카르나티크호가 떠날 무렵에 소식을 듣고 그 배에 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자 바람이 일고 기상조건이 악화되었다. 폭풍은 더욱 거세졌고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밤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서서히 좋아지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순항을 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인 11월 11일 아침, 포그 씨는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 앞엔 이미 상하이를 떠나는 미국행 기선이 있었다. 탕카딜호 뱃머리에는 조그마한 대포 하나가 장치되어 있었는데, 짙은 안개가 끼었을 때 위급을 알리는 데에 쓰이는 신호용 대포였다. 포그 씨는 포구에 화약을 넣어 발사하도록 시켰다. 이 신호를 보고 미국행 배가 진로를 바꾸어 이쪽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포 소리는 넓고 넓은 공중에 울려퍼졌다.
스우족의 습격을 받다
카르나티크호는 11월 7일 오후 6시 30분에홍콩을떠나서요코하마를향해전속력으로달리고있었다. 이튿날 아침, 뱃머리에 나와있던 승객들은 잠이 덜 깬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의 한 사나이가 비틀거리며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파스파르투는 픽스 형사가 준 아편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것이다. 지난 일들을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모두 픽스 형사때문이었다. 그는 갑자기 주인 어른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이 생각이 나 선실로 가서 탑승자 명단을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그는 배의 수리가 예정보다 빨리 끝나 출항시간이 앞당겨진 것을 알리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 어른이 배를 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픽스 형사에게 더욱 화가 났다. 그러나 조금 뒤 이성을 되찾은 그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래, 어짜피 배는 요코하마로 가고 있으니까 곧 도착할꺼야. 그리고 거기서 주인님을 찾는거야.’
13일 아침, 카르나티크 는 드디어 요코하마항에 돛을 내렸다. 그는 미리 지불해 놓은 식비로 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빈털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축 늘어져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중, 어깨에 맨 북을 치면서 큼직한 깃발을 펄럭이며 가는 한 사람을 보았다. 서커스단의 공연을 알리는 것이었다. 한때 서커스 단원이었던 파스파르투는 잘 됐다 싶어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단장을 만나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단장은 그를 위아래로 훓어보더니 인간 피라미드 서커스에서 같이 일을 하라고 했다. 숙식이 해결된 파스파르투는 몹시 기뻤다.
오후가 되고, 공연히 시작되었다. 파스파르투의 역할은 인간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역할이었다. 그는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피라미드는 끝까지 올라갔고 구경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라미드는 종이로 만든 집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밑에 있던 파스파르투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나서 특별석으로 뛰어가 구경하는 손님의 발 아래 엎드리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아, 주인 어른!” “자네였군! 그래, 아무튼 배로 돌아가자.”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은 파스파르투를 데리고 아수라장이 된 공연장을 빠져나와 배로 갔다. 그런데 포그 씨가 어떻게 해서 상하이에서 요코하마의 이 서커스단 천막까지 온 것일까?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팅카딜호의 신호에 요코하마행 기선은 배가 조난된 것인줄 알고 키를 돌려 다가왔다. 그래서 포그씨와 아우다 부인, 픽스 형사는 무사히 요코하마행 기선으로 바꿔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요코하마에 도착한 그들은 길거리를 구경하다가 서커스단 포스터를 보고 파스파르투가 생각나서 공연을 보러온 것이었고, 마침 거기서 파스파르투를 만난 것이다.
그날 밤,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배가 있어서 그들은 배를 탔다. 그 배는 ‘그랜트장군호’ 였다. 포그 씨는 배를 타자 파스파르투에게 그 동안의 일들과 픽스 형사와 동행한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파스파르투는 픽스 형사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알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12월 3일, 그랜트장군호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포그 씨는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뉴욕으로 가는 가장 빠른 열차가 오후 6시에있다는것을알아내고,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뒤 아우다 부인과 함께 영국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다. 우연히도 거기서 픽스 형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는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며 함께 길동무가 되어달라고 포그 씨에게 부탁한다. 포그 씨는 그의 속마음도 알지 못하고 선뜻 허락한다.
영사관을 나온 그들은 큰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것저것을 구경했다. 길 한복판에 이르자 선거유세운동으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갑자기 양쪽 선거운동원들이 싸움을 일으켰고 가뜩이나 복잡한 거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포그 씨와 픽스 형사는 가까스로 아우다 부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어깨가 딱 벌어진, 얼핏 보기에 한 패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나이가 포그 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픽스 형사는 그것을 날쌔게 막았다. 바로 포그 씨를 때린 사람은 육군 대령 스탬프 프록터였다.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포그 씨 일행은 프록터 대령과 떨어지게 되었다. 제정신을 차린 픽스 형사는 기차시간에 늦겠다며 서둘렀다.
6시 15분 전 역에 도착한 그들은 여유 있게 기차를 탔다. 기차는 6시에 오클랜드역을 떠나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포그 씨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으려니 몹시 지루해했다. 이를 알아챈 파스파르투는 승무원을 찾아가 카드를 빌려왔다. 그래서 카드놀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파스파르투를 뺀 세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였다.
다음 날 정오였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기적소리가 울리며 기차가 멈췄다. 포그 씨는 파스파르투에게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파스파르투는 기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벌써 다른 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그 가운데 프록터 대령도 있었다. 철도원의 말에 따르면, 1.5km 정도 더 가면 강물 위에 매달려 있는 한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의 줄이 몇가닥 끊어져 있어서 기차가 지나가기에는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파스파르투 역시 포그 씨에게 이 상황을 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프록터 대령은 차장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기관사가 좀 무모하긴 하지만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즉, 기차를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면 건널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프록터 대령은 기차가 건널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기관사를 재촉했고 승객들을 설득시켜 기차에 오르게 했다. 파스파르투도 하는 수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제까지의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 픽스 형사는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기차는 날카롭게 기적을 울리며 1.5km쯤 뒤로 물러난 후, 두번째 기적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갔다. 차츰 속력을 더하더니 마침내는 놀랄만한 속력으로 달렸다. 무척 빨랐기 때문에 기차의 무게가 미처 선로에까지 미칠 겨를도 없었다. 기차가 막 강을 뛰어넘는 순간, 이미 파손되어 있던 다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강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기차는 보기좋게 강을 건넜다! 이쪽 강가에서 저쪽 강 기슭으로 훌쩍 날은 것 같았다.
그날 밤, 기차는 줄곧 달렸다. 포그 씨와 그 파트너들은 다시 카드놀이를 시작했고 포그 씨가 스페이드를 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이었다. “나였다면 다이아몬드를 낼 텐데….” 포그 씨, 아우다 부인, 픽그 형사는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얼굴을 들었다. 놀랍게도 프록터 대령이 서 있던 것이다. 프록터 대령과 포그 씨는 단번에 상대편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포그 씨는 불쾌한 듯 스패이드 10을 내던졌다. “다이아몬드가 좋을텐데….” 프록터 대령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카드놀이에 대해선 모르는 것 같군요.” 포그 씨가 벌떡 일어나서 쏘아붙였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다른 승부요!” 프록터 대령은 난폭하게 대꾸했다. “난 언제라도 상대해 주겠소!” 포그 씨는 될 수 있는 대로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프록터 대령은 지금 당장 할 것을 제의했고, 포그 씨는 승락했다. 그는 차장에게 허락을 구했고, 차장과 나머지 승객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객차길이가 17미터쯤 되었으므로 결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포그 씨와 프록터 대령은 각각 6연발 권총을 손에 들고 객차 안에 남았다. 결투가 시작되기 한 2분 전,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연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객차 안에 남은 두 사람이 쏜 것이 아니었다. 기차가 인디언 스우족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다.
승객들은 대부분 권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스우족과 싸웠고, 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스우족은 기관실로 들어가 기관사와 석탄을 넣는 화부를 몽둥이로 때려 기절시켰다. 족장은 기차를 세우려고 했으나 기계를 다룰 줄 몰랐으므로 증기조절밸브를 닫는다는 것이 오히려 열어서 기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우다 부인 역시 권총을 들고 깨진 유리 너머로 권총을 쏘았다. 승객들이 용감하게 맞서자 20명쯤 되는 스우족들이 죽어서 떨어졌다. 차장은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기차를 빨리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포그 씨가 나서려고 하자 파스파르투가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기관실로 갔다. 다행히도 스우족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기관실로 들어온 파스파르투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기관실의 연결봉의 걸쇠를 분리시켰다. 떨어져나간 기관차는 더욱 빠르게 달렸고, 객차는 서서히 속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기차는 완전히 멈춰 섰다. 객차는 역에 도착했고, 병사들이 몰려오자 스우족들은 도망갔다.
승객들의 수를 조사해 보니, 몇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파스파르투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 행방불명이었다. 생각보다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은 프록터 대령이었다. 그래서 그는 급히 치료해야 할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역의 건물로 옮겨졌다. 아우다 부인은 다치지 않았다. 포그 씨도 대담하게 싸웠지만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픽스 형사는 팔에 약간의 상처만 입었을 뿐이다. 포그 씨는 파스파르투가 너무도 걱정이 되어 병사를 모집하여 길을 떠났다. 그러나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동쪽에서 기적을 울리며 기관차가 오고 있었다. 기절했던 기관사와 화부를 태운 기관차였다. 기관차가 객차에 연결되는 순간 승객들은 무척 기뻐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으로 중단된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차는 곧 떠날 것이라고 했다. 아우다 부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포그 씨가 있었기에 떠날 수 없다고 하자 픽스 형사 역시 어쩔 수 없이 남게 되었다.
저녁이 되었다. 아우다 부인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플랫폼을 왔다갔다 하였다. 아침이 되어도 포그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몇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1km 전방에서 포그 씨와 구출된 파스파르투 그리고 두 승객과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우다 부인과 옆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환호하며 그들을 맞았다. 구원부대가 닿기도 전에 파스파르투와 두 승객은 묶였던 밧줄을 풀고 스우 족들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고 구조대가 그곳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파스파르투는 스우족의 총을 빼앗아서 벌써 세 사람이나 쓰러뜨리고 있던 것이다. 픽스 형사는 아무 말도 없이 포그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는 갖가지 감정을 분석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 사람은 진정 훌륭한 면이 있다. 그러나 악인은 어디까지 악인일 수 밖에….’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포그 씨의 여행은 스우족의 습격사건으로 예정보다 늦어졌다. 파스파르투는 포그 씨가 파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맥이 탁 풀려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픽스 형사가 포그 씨에게 다가와 돛을 단 썰매를 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포그 씨는 망설이다 썰매를 보러갔다. 썰매는 배처럼 돛대가 있었고, 뒤쪽에는 키와 노의 역할을 하는 도구가 갖추어져 있어 방향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썰매의 주인인 무디는 얼어붙은 들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상태라면 기차보다도 더 빠르게 오마하 역까지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오마하까지 가면 시카고나 뉴욕으로 가는 기차가 자주 있으므로 늦어진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포그 씨는 빠르게 달리는 썰매가 추위가 심할 것을 생각하여 아우다 부인은 파스파르투와 다음 기차를 타고 오라고 말했지만 아우다 부인은 포그 씨와 떨어져 가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다.
8시에 썰매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 포그 씨 일행은 썰매에 올라타고 여행용 담요를 뒤집어썼다. 썰매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 마침내 오마하역에 도착했다. 포그 씨는 무디에게 충분한 사례를 했다. 오마하역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시카고로 직행하는 기차가 막 떠나려 하고 있었고, 포그 씨와 일행은 서둘러 기차에 탔다. 그리하여 이튿날인 10일 새벽 4시 10분에시카고에이르렀다.
시카고에서는 기차편이 다양했고, 포그 씨 일행은 특급기차를 탔다. 기차는 번갯불처럼 달려서 12월 11일 오후 11시 15분, 뉴욕역에 도착했다. 이 역은 미국과 영국 사이를 오가는 선박이 있는 항구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리버플로 가는 차이나호는 이미 떠난 뒤였다. 포그 씨는 대서양을 건너는 배의 시간표를 살펴보았지만 신통한 수는 없었다.
다음 날, 포그 씨는 파스파르투와 아우다 부인에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호텔을 나와 항구로 갔다. 떠날 준비를 한 배가 몇척 있긴 했지만 모두 돛단배였다. 체념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멀리 있는 증기선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포그 씨는 그 길로 달려가 선장을 만났다. 포그 씨가 리버플까지 태워 줄 수 없냐고 묻자 앙리에타호의 선장은 목적지가 프랑스 보르도라며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보르도까지 한 사람당 백 달러를 준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포그 씨는 다시 2천 달러를 주겠다고 하자 선장은 그제서야 허락했다. 선장은 9시에 떠날 것이니 그때까지 오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포그 씨는 그러겠다고 대답한뒤 호텔로 돌아와 픽스 형사도 함께 데리고 앙리에타호에 올랐다.
앙리에타호는 롱아일랜드를따라 동쪽을 향해 쾌속으로 달렸다. 이튿날인 12월 13일 정오무렵, 한 사나이가 앙리에타호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왔다. 물론 그를 선장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천만뜻밖에도 그는 포그 씨였다. 선정과 선원들의 좋지 않은 사이를 알아챈 포그 씨는 선원들을 모두 돈으로 매수하여 선장을 선실에 가둔 것이다. 선장은 선실에 갇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12월 16일, 런던을 떠난 지 7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한 선원이 포그 씨에게 다가와 석탄이 다 떨어져가므로 리버플까지는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참을 생각한 포그 씨는 선장을 불러오도록 시켰다. 포그 씨는 선장에게 6만 달러를 주겠으니 이 배를 파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20년이나 더 된 낡은 배를 비싼 값에 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단번에 승락했다. 6만 달러를 받아들고 선장이 물러가려고 하자 포그 씨가 그에게 물었다. “선장, 그럼 이제 이배는 내 것이지요?” “물론이오, 돛대 꼭대기까지 모두 당신의 것이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그 씨는 갑판, 선실 등 나무로 된 것은 모두 부수어 땔감으로 쓰게 했다. 그리고 최고 속력을 내게 하였다. 리버플까지 도착하려면 24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느새 연료는 바닥이 나고 있었다. 우선 가까운 항구를 찾아보니 아일랜드의 퀸즈 타운 항구가 있었다. 새벽 1시쯤, 앙리에타호는 퀸즈 타운 항구에 도착했다. 포그 씨 일행은 서둘러 기차 역으로 갔고, 1시 30분에 퀸즈 타운을 떠나는 기차에 탔다. 12월 21일 오전 11시 40분, 포그 씨는 마침내 리버플에 닿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런던까지는 6시간이면 넉넉했다. 바로 그때 픽스 형사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왕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이 말을 들은 파스파르투는 화가 나서 픽스 형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포그 씨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는 리버플의 세관에 갇혔다. 이를 지켜 보는 아우다 부인과 파스파르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시가 되었다. 갑자기 픽스 형사가 뛰어들어왔다. “요, 용서하십시오. 너, 너무나 닮았기에 그만 엉뚱한 짓을…. 용서해 주십시오. 은행도둑은 사흘 전에 자, 잡혔습니다.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
그말 이 끝나자 포그 씨는 말없이 픽스 형사에게로 성큼 다가가더니 똑바로 노려보고는 얼굴을 힘껏 때렸다. 픽스 형사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 파스파르투는 곧바로 리버플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급행열차는 시간은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포그 씨는 가까스로 특별기차를 주문하여 런던행 기차에 올랐다. 포그 씨가 런던역에 닿았을때는 10분 전 9시였다.
결국 포그 씨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끝냈으나 단 5분이 늦어서 내기에 지고 만 것이다. 포그 씨는 집에 돌아와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파스파르투는 우선 자기 방에 켜있는 가스램프를 끈 뒤, 우울해하는 부인을 찾아가 위로했다. 다음 날 아침, 11시 30분이 되어도 포그 씨는 클럽에 가지 않았다. 동료들이 이미 자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파스파르투를 불러 저녁 7시 30분쯤 아우다 부인과 얘기를 나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스파르투는 이를 전했고, 그녀는 좋다고 했다. 시간이 되자 포그 씨가 아우다 부인의 방으로 갔다. 그는 망설이던 끝에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자 아우다 부인은 포그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잠시 후, 그는 초인종을 눌러 파스파르투를 불렀다. “윌슨 목사에게 월요일에 식을 부탁해도 너무 늦은건 아니겠나?” “결코 늦지 않을 겁니다.”
한편 12월 21일 저녁, 혁신클럽에는 친구들이 미리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시계바늘은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포그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8시 44분이었다. 역시 포그 씨는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내기는 점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8시 44분 57초가 되는 순간 홀의 문이 활짝 열리며 포그 씨가 유유하게 들어왔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지금 돌아왔소.”
그렇다. 그는 분명 포그 씨였다. 그럼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그날 밤 즉, 8월 21일 7시 50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인님의 심부름으로 결혼식 부탁을 하러간 파스파르투는 내일은 일요일이니 예식을 할 수 없다며 월요일에 오라는 목사의 말을 듣고 파스파르투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3분만에 집으로 돌아와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말했다. “토요일이라니? 그럴 리가!” “아닙니다. 주인 어른께선 하루를 잘못 알고 계십니다.”
포그 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을 뛰쳐 나갔고 마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클럽을 향해 달렸다. 그가 홀에 들어섰을 때 큰 시계는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포그 씨는 약속대로 80일 동안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그렇듯 꼼꼼하고 계산에 밝은 그가 어떻게 날짜를 잘못 계산한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포그 씨는 동쪽을 향해 여행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를 벌었던 것이다. 즉, 동쪽을 향해 갔으므로 태양보다 앞서서 나간 셈으로 경도를 하나 넘을 때마다 4분씩 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그런데 지구 주위에는 경도가 360이므로 4분을 360 곱하면 정확하게 24시간이 된다. 이렇게 해서 포그 씨는 2만 파운드를 차지했지만 여행하는 동안 1만 9천 파운드를 써버렸기 때문에 돈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1천 파운드는 둘로 나누어 충실한 하인 파스파르투와 픽스 형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약속은 약속이라며 1천 9백 20시간 분의 가스값은 파스파르투가 물게 하였다.
결국 포그 씨는 냉정함과 정확함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성공했다. 사람들은 그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하겠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 것이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그것도 고작 8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과연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는 클럽의 친구들에게 2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돈까지 내기로 걸며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물론 주변에서는 다들 80일 동안 그가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지만 포그 씨 자신만큼은 여행에 대한 성공을 확신했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포그 씨가 했던 치밀한 계산이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갈 때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계산으로 그는 자신의 여행에 대해 사실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잘 쓰여진 한편의 이야기를 읽고 있기보다는 마치 꼼꼼하게 적힌 항해일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항해를 하면서 여러 척의 배가 등장하는데 포그 씨는 이러한 배를 타고 여행을 할 때마다 예지력 있는 판단력으로 정확하게 대처하고 또한 항해사에 버금갈 만한 풍부한 지식으로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특히, 탕카딜호가 미국행 기선을 멈추게 하기 위해 포탄을 쏘아 신호를 보냈던 일이나 앙리에타호에서 리버플로 향하는 도중 석탄이 부족하자 배의 나무갑판을 뜯어내어 땔감으로 사용한 일들, 그리고 예정대로 여행을 마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과 같은 일들은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 준다.
그러나 포그 씨가 이러한 모험정신만 발휘한 것은 아니다. 인도를 여행하던 도중 죽은 남편과 함께 화형을 당하려는 아우다 부인을 발견했을 때 측은하게 여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또한 하인인 파르파르투가 스우족에게 잡혀갔을 때에도 주저하지 않고 많은 돈을 들여 병사들을 모집한 뒤 그길로 파르파르투를 구출하러 길을 떠난다. 이러한 정의로운 그의 행동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감동하게 만든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인데,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그 성격들도 가지각색이다. 우선 영국신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포그 씨를 보기로 하자.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전형적인 영국인의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항상 같은 시간에 클럽에 나간다든지 아니면 정확한 온도의 물이 있어야지만 면도를 할 수 있는 것 등과 같은 까다로운 그의 성격 역시 영국인의 한 모습이다. 말하기 좋아하며, 조금은 성격이 급하여 흥분을 잘하는 프랑스인 파스파르투는 포그 씨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포그 씨와 기차 안에서 결투를 하려고 했던 미국인 프록터 대령 역시 그의 말이나 행동들에서 그 성격을 잘 알 수가 있다.
작가 쥘 베른은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언급하면서 그 지방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특히 당시 유럽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도나 일본과 같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풍물과 풍습을 마치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생동감과 더불어 흥미진진함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건강한 정의감과 늠름함 모험심을 가진 꺾이지 않는 의지의 인간형인 포그 씨, 여기에 곁들여 팔팔한 프랑스 젊은이 파스파르투, 그리고 끈질긴 기질을 드러낸 픽스 형사가 벌이는 이 기묘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거치며 재미는 배가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세계지도가 한 장 정도 옆에 있다면 우리들의 세계일주 여행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쥘 베른 지음, 글쓴이 이진숙님>
▣ 저 자 쥘 베른 Jules Verne(1828∼1906)
역사적 휴머니즘의 신봉자
쥘 베른은 인도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공상과학 소설이기는 하지만 인류에 대한 관심과 정의감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카톨릭적 사상가로서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했고 휴머니즘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가 그려 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건강하고 정의감이 있으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려고 하는 성격들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게 해 주고, 현재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역사적 휴머니스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그는 미래의 꿈나무들인 아동들을 위해 책을 집필함으로써 자라나는 아이들이 상상력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첫 소설 『5주간의 기구여행』을 출간한 뒤 「교육과 오락」지를 편집하는 출판사 사장 엣젤(Hetzel)과 20년 동안 매년 아동들을 위해 공상과학 소설을 출판할 계약을 맺는다.
낙관적인 진보주의자
그의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소재들을 살펴보면 당시로서는 생각해 내기 어려웠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100년 전에 예상한 기구나 비행기에 의한 공중 여행, 잠수함에 의한 바닷속 여행, 라디오나 텔레비젼에 의한 의사전달 등과 같은 것들은 이제 모두 현실화되었고 과학적인 공상만으로 생각했던 달여행도 실현되고 있다. 그 당시로선 퍽 어려운 높은 수준의 과학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베른은 정말로 과학의 천재였다. 1849년, 부모님의 뜻에 따라 파리에서 법률공부를 시작했지만 1950년 법률공부를 중단하고 만다. 그 후, 글을 써서 모은 돈으로 지리학과 공학, 천문학 등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그의 이런 노력은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지구물리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여러 학분을 두루 섭렵한 그는 다른 사람이 감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요컨대 그는 무한한 과학기술이 개척하게 될 미래를 믿고 있었던 낙관적인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소설의 아버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베른은 공상과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 낸다.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장르로서도 인정받은 그의 작품들은 문학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준 것이고, 이것은 오늘날의 문학장르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소설은 세계의 많은 발명가와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고, 오늘날 초기의 공상과학 영화들 중에는 그의 소설을 각색하여 제작한 영화들이 많을 만큼 그의 영향은 여러 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그의 꼼꼼하며 섬세한 성격들이 공상과학 소설을 만들어 내는 데에 한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편집자와의 한 일화에 의하면, 그는 지우개 자국이 없는 완벽한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 주었다고 한다. 즉, 그가 여러번의 교정을 거친 후에야 최종적인 원고를 주었으므로 인쇄소에서는 수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문단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새로움과 도전으로 이루어진 자리이다. 베른은 평생 쓴 104편에 달하는 공상소설을 가지고 미래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예언했다. 『지구에서 달까지 』가 나온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은 프랑스의 많은 유명한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의 업적을 다시 한번 기리는 바이다.
▣ 생애와 작품
1828 8월 2일, 낭트에서 공증인의 장남으로 출생하다.
1840 12살의 나이에 견습선원으로 항해하다.
1847 파리에서 법률공부를 시작하고, 희곡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가기 시
작하다. 알렌산드르 뒤마 페르의 제자로서 극작을 배운다.
1850 법률공부를 중단하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작품을 팔기 시작한다.
이후 파리에서 지리학, 공학, 천문학 등을 공부한다.
1857 1월 10일, 오노린과 결혼하다.
1859∼1860 스코트랜드와 스칸디나비아 등지를 여행하다.
1863 첫 소설『5주간의 기구여행』을 집필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이때
부터 출판업자 앳젤(Hetzel)과 20년간 매년 2권씩 공상과학 소설
을 출판할 것을 계약한다.
1864 『지하여행』을 집필하다.
1966 지중해 북아프리카 연안을 여행하다.
1870 『해저 2만리』를 집필하다.
1873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집필하다.
1874 『신비의 섬』을 집필하다.
1876 계속되는 대성공으로 부자가 된다. 큰 요트를 사서 유럽을 여행하
기 시작하다. 『미셸 스트로곱』을 집필하다.
1878 『15소년 표류기』를 집필하다.
1879 『베겡 여황의 유산 5억프랑』을 집필하다.
1880 『증기의 집』을 집필하다.
1882 『로뱅송의 제자들』을 집필하다.
1885 『마디아스 상돌프』를 집필하다.
1896 『깃발을 바라보면서』를 집필하다.
1904 『세계의 지배자』를 집필하다.
1905 아미앙스의 바닷가에서 배가 침몰하여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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