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두 문장이다.
1. 저는 뉴욕으로 갑니다. 어디로 가세요?
2. 어디로 가세요? 저는 뉴욕으로 갑니다.
경험에 따르면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두 번째 문장이 첫 번째 문장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상대방이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처럼 문장의 순서만 바꾸어도 효과가 발생한다.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 또한 좋지 않다. 말이 중간에 끊어져도 머릿속 테이프는 계속 돌아가게 마련이어서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간에 말이 끊어져서 기분이 상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협상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사실부터 제시한다. 가령 집을 살 때 “시장 상황에 따라 20만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 합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비율은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해관계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니 지금 파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이해관계는 실질적인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인식과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 “집이 정말 좋네요. 얼마나 오래 사셨어요?” 이런 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가장 좋다. 이렇듯 상대방의 인식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하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협상에서 질문은 단정적 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협상에 있어 말을 할 때는 대부분 질문 형태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상대방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계속 체크할 수 있다.
표준과 프레이밍에 대하여
표준은 의사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관행이나 정책 혹은 참고사항을 말하며 이는 선언, 약속 혹은 보증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회사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따라야 할 규칙들을 담은 표준이다. 하지만 정책 못지않게 정책의 예외 역시 강력한 도구로 삼을 수 있다. 항공사에서 표를 변경하는 데 100달러의 수수료를 청구한다면, 과거에 한번도 예외를 둔 적이 없는지 물어라. 만약 있다면 예외 조항을 적용시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몇 년 전 동업자와 함께 작은 화물 항공사를 인수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소형 항공기로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회사의 설비를 점검했다. 어느 쾌청한 오후, 나는 버진 아일랜드의 토르톨라 섬에 내렸다. 공항 도착 라운지에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 직원은 지난 몇 년간 자주 본 사이인데도 조종사에게 온갖 양식의 서류를 들이밀었다. 입국장에서 불과 40 미터 떨어진 회사 사무실을 둘러보기만 하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나는 표준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근처 벽에 버진 아일랜드 총리의 인사말이 적힌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입국을 환영합니다. 예의와 존중을 갖춰 여러분을 모실 것을 약속합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뭐죠?” 그녀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저게 정말 총리가 한 말 맞나요?” 그러자 그녀는 조금 주저하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저 말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그로부터 5분 만에 우리는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날 이후 그 포스터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표준을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프레이밍이다. 여기서 프레이밍이란 상대에게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 즉 표준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뜻한다. 이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특정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이 프레이밍의 핵심이다. 마치 제품의 다양한 특징을 한 줄로 표현한 광고 카피와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는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코카콜라는 ‘상쾌한 이 순간’이라는 광고 문구로 수십 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적절한 프레이밍은 명확한 상황 인식에서 출발한다. 뛰어난 협상가들은 언제나 분명한 사실부터 철저하게 파악하고 넘어간다.
와튼스쿨에 다니던 리나 초우는 아멕스 카드에 가입하라는 권유서를 받았다. 가입 보너스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50달러에 해당하는 5,000마일의 항공사 마일리지였다. 그러나 그녀가 가입하기 위해 전화를 걸자, 상담 직원은 그녀가 이미 아멕스 카드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료 마일리지는 신규 회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리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서 책임자에게 상황을 설명한 다음 문제를 제기했다. “아멕스는 회원들이 특전을 누린다고 광고하지만 비회원들이 회원들보다 더 많은 특전을 누리는군요.” 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즉시 그녀에게 마일리지를 제공했다. 리나는 프레이밍을 통해 아멕스가 기존 회원보다 신규 회원을 더 우대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의 말이 맞는다면 스스로 내건 표준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멕스는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같은 사실이라도 프레이밍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난다. 뛰어난 협상가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다른 그림을 만드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시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특정 수술에 대하여 어떤 환자들은 생존율이 90퍼센트라는 말을 들었고, 어떤 환자들은 사망률이 10퍼센트라는 말을 들었다. 두 집단은 정확히 같은 정보를 들었지만 생존율이 90퍼센트라는 말을 들은 집단에서 수술을 선택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가치의 교환
긍정의 힘이 만드는 시너지: 뛰어난 협상가가 되려면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 안에 숨겨진 기회를 찾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제를 장애물로 보지 말고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기회로 생각하라. 상대방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형의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지, 파이를 키울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라.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여러 협상 도구 중에서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건 프레이밍이다. 상대방의 니즈를 목적 달성에 유리한 방식으로 제시하라.
맥라렌은 청각 장애가 생겼는데도 보청기를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66세의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아버지,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세요?” 그날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보청기를 샀다. 보청기에 대한 아버지의 니즈를 자신의 목적 달성에 유리한 방식으로 제시한 프레이밍이 톡톡히 효과를 본 것이다. 흔히 협상 테이블에 오른 사안들이 많을수록 협상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다. 사실은 그 반대다. 그만큼 교환할 대상이 늘어나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나 역시 가능한 많은 사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고 한다.
한 학생이 6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부부가 함께 소유한 소프트웨어 기업에 관련된 문제였다. 남편은 60퍼센트, 아내는 40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소유한 회사는 자금이 없었는데, 한 회사가 선뜻 합병할 뜻을 내비쳤다. 문제는 부부가 별거를 하게 되었고, 아내가 두 기업 간 합병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합병하지 않으면 파산할 것이 뻔했고 그녀는 돈도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나는 남편의 요청에 따라 그의 아내를 만났고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단독 양육권이요. 생활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저보다 남편이 더 많은 돈을 갖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났으며 원하는 대로 남편에게 상처를 줄 방법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한 곧 대학에 입학할 자녀에 대한 단독 양육권을 놓고 남편과 다투면서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며 그녀를 설득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목표 달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합병에 동의했다.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전혀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상대방의 니즈와 목표를 묻고 중요한 무형의 가치를 파악한 다음, 긍정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분명히 삶의 질이 월등히 높아질 것이다.<“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역자 김태훈님,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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