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야만인을 기다리며!

[중산] 2012. 1. 27. 18:16

 

 

치안판사는 몇십 년 동안 자그마한 변경 정착지의 일들을 관장하면서, 야만인들과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걸 무시하며 살아온, 제국의 충실한 하인이었다. 그러나 취조 전문가들이 도착하면서, 그들이 제국의 전쟁 포로들을 잔인하고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갑자기 그 희생자들을 동정하게 되면서 돈 키호테 같은 반역 행위를 하게 되고 급기야 제국의 적으로 낙인찍히는데…(요약).

 

 

1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그의 눈앞에는, 작고 동그란 유리 두 개가 철사로 매달려 있다. 그는 장님인가? 그러나 그는 장님이 아니다. 유리는 검은 색이어서 밖에서 보면 불투명하지만, 그는 그걸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그것이 새로운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고향에서는 다들 이걸 씁니다. 우리는 술병과 호두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가장 좋은 여관방에 앉아 있다. 우리는 그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여기에서 비상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 나는 여관 직원들에게 그가 중요한 방문객이라는 걸 강조한다. 죨 대령은 정보부에서 파견 나온 분이오. 정보부는 요즘, 경찰청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라오.

 

 

우리에게는 죄수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범죄도 별로 많지 않으며, 죄를 지을 경우 벌금형을 내리거나 강제노동을 시키는 게 보통입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이 오두막은 곡물창고에 딸린 저장실일 뿐입니다. 그곳엔 두 명의 죄수, 노인과 소년이 묶인 채 바닥에 누워 있다. 그들에게서 악취가 난다. 노인은 자신이 가축 습격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나는 진실을 밝히고자 수도에서 찾아온 사람인 죨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노인을 설득한다. 그는 팔에 종기가 난 아이를 가리키며 그 아이가 자기 누이의 아들이며 의사에게 가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방문객과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되돌아간다.

 

 

오랫동안 죄수라고는 이들밖에 없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당신에게 보여줄 야만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을 텐데, 참 우연이군요. 노인의 말은 어쩌면 사실일 겁니다. 습격하러 온 자들이, 노인과 아픈 아이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나는 내가 그들을 변명하고 있다는 걸 의식한다. 그래도 저들을 심문은 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따분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거쳐야 하는 절차가 따로 있으니까요.

 

 

죨 대령이 한가할 때, 그를 다시 만나게 되자, 나는 고문에 관한 얘기를 해본다. 그가 말한다. 처음에는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면 더 거짓말을 합니다. 거기에서 더 압력이 가해지면 그때서야 진실을 얘기합니다. 그것이 진실을 알아내는 방법입니다. 고통은 진실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죨 대령과의 대화에서 얻은 것이다.(반면에, 그와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에게 위임장에 명시된 대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제국은 그 하인들에게 서로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그가 치안판사인 내게 제출한 보고서는 간략하다. 취조하는 중 죄수의 증언 중 모순되는 것이 드러났음.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자, 죄수는 격노하여 취조자를 공격했음.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죄수의 몸이 벽에 심하게 부딪쳤음.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음. 나는 보초를 호출하여 그의 증언을 청취한다. 그가 말을 마치자 나는 그가 서명해야 할 곳을 가리킨다. 그는 내게서 공손하게 펜을 받아든다. 나는 그를 물러가게 하고 매장 허가서를 쓴다. 그러나 나는 침대로 가기 전에, 후방 도로들을 거쳐 곡물창고로 간다. 나는 내가 국가 기밀이 간직된 신성한, 혹은 신성치 않은 곳 - 그렇게 구분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 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은 구석에 있는, 짚으로 된 침대 위에 잘 누워 있다. 살아 있다. 그의 손은 묶여 있고, 다른 쪽 구석에는 기다랗고 하얀 꾸러미가 있다. 나는 보초를 깨워 누가 시체를 그곳에 두라고 했는지 힐문한다. 보초는 높은 분과 함께 왔던 남자가 그랬다고 대답한다. 나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보초에게 아이의 손을 묶은 끈을 느슨하게 해줄 것과 먹을 것을 갖다 줄 것을 명령한다. 나는 이런 것에 휘말려 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나는 그것이 어디서 끝날 것인지 모른다. 나는 한가로운 변방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책임 있는 시골 치안판사이자 관리이다. 나는 조용한 시대에 조용한 삶을 사는 것 이상의 것을 바란 적이 없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야만인들 사이에 불안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들이 수도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축의 도난이 빈번해졌고, 관리들이 공격받았다고 했다. 결국 제국은 틀림없이 일어날 전쟁에 대비해서 사전의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은 이처럼 불안한 징후에 대해서 아무것도 본 게 없다. 내게 야만인의 군대를 보여준다면야, 나도 믿을 것이다. 나는 소년에게 다시 가 물을 먹이고 그가 봄이 되면 제국에 대한 전쟁에 동참하려고 했다는 자백을 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물어보았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를 불러 소년을 치료하도록 했다.

 

 

대령은 마음이 조급하다. 그는 소년을 안내인을 삼아 유목민들을 신속하게 습격하여 더 많은 죄수를 붙잡고자 한다. 나는 야만인들을 잡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설명하며 그의 마음을 단념시키려고 해본다. 그는 내 말을 모두 듣고 있지만 나중에 나를 불온하다고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습격할 준비를 계속한다. 나는 그가 도착한 두 번째 날부터,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신경이 쓰여, 나무라는 태도 이상으로 그를 대할 수가 없다. 나는 잠을 자다가 꿈을 꾼다. 곡물창고에 있는 시체에서 꿀에 젖어 끈적끈적한 벌들이 사타구니에서 나와 날개를 파닥거린다.

 

 

대령과 함께 원정대가 출발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은 오늘, 대령이 잡아들인 죄수들이 도착한다. 나는 그들이 모두 어부임을 알고 그에게 소리를 지른다. 그가 봉인된 편지를 내민다. 이 자들과 다음에 보내는 사람들을 외부로부터 격리시킨 상태에서 감금하시오. 나는 편지를 창문에 던져 버린다. 이 사람들이 제국에 위험한 존재라고? 그물을 갖고 사는 어부들과 화살을 갖고 사는 기마 유목민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말인가? 나는 보초에게 명령한다.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정문을 닫아라. 이들이 도망칠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빈둥거리는 인간들이 들어와서 이들을 구경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렇다. 그렇게 해서 나는 분노를 억제하고 대령이 요구한 대로 죄수들을 외부로부터 격리시켜 놓았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자, 이 야만인들은 집을 두고 떠나왔다는 것을 잊은 듯하다. 많은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는 것에 매료된 그들은 긴장을 풀고, 모든 사람에게 미소 짓는다. 그들은 여기에서 행복하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단숨에 잃고 만다. 더러움과 냄새와 그들의 싸움 소리와 기침 소리가 너무 심하다. 내가 한밤중에 빗장을 풀어놓으면, 어부들이 살그머니 달아나 줄까? 그게 궁금하지만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죨 대령이 돌아온다. 나는 행렬의 중간쯤에서 내가 그 동안 두려워했던 것을 본다. 검은 마차가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밧줄로 목과 목이 함께 묶여진 죄수들이 질질 끌려온다. 나는 대령이 개선하는 장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내 방으로 돌아간다. 아래 뜰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온다. 내 방은 영원히 감옥으로 바뀌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늙어버린 것 같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만 싶다. 잠은 망각이며 밤마다 소멸 상태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나는 곡물창고 옆의 오두막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등불을 들고 그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일단 등불을 집어든 이상, 그것을 다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매듭이 안에서 엉켜 있다. 나는 그 끝을 찾을 수 없다.

 

 

다음 날, 대령은 심문을 시작한다. 그는 진실을 캐는 데 있어서 지칠 줄을 모른다. 내가 법원에 있는 사무실에 있을 때, 실내에서도 검은 안경을 낀 죨 대령이 들어와 맞은 편에 앉는다. 그는 떠난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좋아한다는 걸 숨겨야 할까? 대령, 유목민들과 원주민들에 대한 심문은 당신이 기대했던 만큼 성공적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치안 판사님. 다른 변경 지역에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수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특히 그렇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동쪽 길로 떠나간다.

 

 

그가 떠난 후, 내가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죄수들을 찾아간 것이다. 나는 군인들에게 땀과 배설물로 역겨운 막사 건물을 청소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지난 닷새 동안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른다. 만약 세계사의 어두운 한 장이 지금 당장 종식될 수 있다면, 이 추한 사람들이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지워지고, 우리가 더 이상의 불의와 고통이 없는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 새 출발을 하겠다고 맹세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지역의 법과 질서를 관장하는 권한이 오늘 나한테 넘어오자, 죄수들에게 음식을 주고, 의사를 불러 그들을 치료하게 하고,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이 본래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다.

 

 

 

2

그녀는 문으로부터 몇 야드 떨어진 막사 벽의 그늘 밑에, 너무 헐렁한 코트로 몸을 감싸고, 땅바닥에 털 모자를 벌려놓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야만인들처럼 그녀의 눈썹은 검고 반듯하며, 머릿결은 검고 윤이 난다. 야만인이, 그것도 여자가 시내에서 동냥을 하다니 무슨 일이지? 모자에는 몇 개의 동전밖에 없다.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나는 그녀를 고문했던 사람들과 내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몸서리를 친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물과 대야를 갖고 온다. 발가락은 뭉툭하고, 발톱에는 흙이 엉겨 있다. 나는 그녀의 발을 씻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리듬에 몰두한다. 그녀가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이다. 어쩌면 내 자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야를 밀치고 발을 닦는다. 나의 눈이 감긴다. 그리고 금세 잠이 든다. 나는 춥고 몸이 굳어져 한밤중에 잠에서 깬다. 불이 꺼져 있고, 여자는 가고 없다.

 

 

그 이후로 1주일이 흘렀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는 지금 발가벗은 상태이다. 나는 그녀의 몸에 아몬드 기름을 바른다. 나는 지금 불빛에 반짝이는 이 단단하고 작은 몸속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것에 자신을 맡긴다. 때때로 그녀는 내가 그 일을 끝내기 전에 잠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처럼 곤히 잤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녀의 한쪽 눈구석에 희끄무레한 주름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들이 만졌던 곳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내 손을 밀쳐낸다. 그녀의 엉덩이에도 매를 맞은 자국이 여러 군데 있는 게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한테 얘기해라. 그것을 신비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말아라. 고통은 고통일 뿐이니라.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팔로 감싸고 입술을 그녀 귀의 우묵한 곳에 대고, 말을 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어둠이 내려온다.

 

 

나는 수치스러운 구걸 행위로부터 그녀를 구해주고 막사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게 했다. 이렇게 둔감한 여자에게 붙들려 있는 내 자신이 놀랍다. 내가 그녀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기억할 수 없다. 그녀를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녀는 나의 감정이 이렇게 요동치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의 하루는 판에 박힌 채 흘러갔고, 그녀는 그것에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일을 마치면 나에게 온다. 그녀는 옷을 벗고 누워,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정성을 기다린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며 결코 오지 않을 피의 활력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의 욕망은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동작에서 옛날 자유로운 상태에 대한 암시라도 찾아내기를 바라며, 그녀가 옷을 벗는 것을 지켜본다.

 

 

겨울이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온다. 앞으로 넉 달간은 끊임없이 불어댈 것이다. 올해에는 야만인들이 찾아온 적이 없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유목민들이 집단으로 찾아와 물물교환을 하곤 했다. 우리는 그들의 가죽 제품을 높이 평가했다. 나는 그들이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상점 주인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들의 물건을 시시한 장신구와 교환하거나 술에 취해 시궁창에 드러눕고,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게으르고 부도덕하며 더럽고 어리석다는 주민들의 편견을 굳히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문명이라는 게 야만인들이 가진 미덕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문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했다.(지금은 야만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입장의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너는 네가 원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거니? 그녀는 벌거벗은 채 누워 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욕망이, 보통의 경우에는 아주 모호한 형태의 것이지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있다. 지금, 그 징후가 보인다. 나의 손이 움직이고 그녀를, 그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진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 그렇죠. 그녀가 불평한다. 그 순간의 단순함이 끝나버리고 만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말없이 누워 있다. 어느 새가 가시덤불 속에서 노래를 하고 싶겠는가?

 

 

언제나 그 질문만 하시니, 지금 얘기해드릴게요. 포크였어요. 빨갛게 달군 포크로 사람들의 몸을 지졌어요. 그 남자는 내 눈을 지지겠다고 말했지만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 남자는 그걸 내 얼굴에 아주 가까이 대고 나로 하여금 그걸 바라보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해줄 얘기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그때 다치게 된 거예요. 저는 그 후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그게 전부예요. 넌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얘기하는 데 지쳤어요.

 

 

변경에서 3년간의 복무 연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을 대체할 신병 부대가 도착한다. 이 부대를 인솔하고 있는 젊은 장교와 그의 동료 두 사람을 여관으로 초대한다. 음식도 괜찮고 마실 것도 많다. 우리는 야만인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오는 길에 야만인들이 거리를 두고 그들을 따라왔다고 말한다. "그들이 야만인이라는 게 확실하오?" 내가 묻는다. 그가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누구였겠습니까?" 그의 일행이 말한다.

 

 

사령부 주변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봄이 되면 야만인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해 그들을 변경에서 산악 지역으로 몰아붙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젊은 장교가 말한다. 그건 분명히 소문에 지나지 않소.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유목민들이오. 그들은 저지대와 고지대를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처음으로 장벽이 느껴진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로 그게 전쟁입니다. 우리가 강요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 말입니다. 그는 지금쯤 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내가 정보부 소속의 경찰에게 비협조적이었다는 얘기 말이다.

 

 

제국의 안보가 위태롭다는 이유로 최근에 그들을 이유 없이 공격하고, 극도로 잔인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그 며칠 동안에 일어난 피해를 복구하려면 몇 년이 걸릴 거요. 하여간 그 얘긴 그만둡시다. 내가 지난 20년 동안 치안판사로서 싸워야했던 문제는 가장 저질적인 마부들이나 농사꾼들이 야만인들을 모욕하고 경멸한다는 사실이었소. 특히, 그 경멸이라는 것이 식사 예절이 다르고 눈꺼풀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의 뿌리를 어떻게 뽑을 수 있겠소? 이 야만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쳐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해줬으면 좋겠소. 지금 제국은 1백 년도 넘게 이곳에 있었소.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이곳에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방문객으로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우리는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사고는 경직되어 있다. 아마도 군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게다. 나는 한숨을 쉰다.

 

 

 

3

본인은 정보부의 공격적 행동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다독거리고, 전에 있었던 바와 같은 상호간의 신뢰와 선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야만인들을 잠시 방문하고자 합니다. 나는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봉인을 한다. 사흘째가 되는 날 나는 종이를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 떠날 준비를 한다. 나는 수행할 세 사람을 선발한다. 나는 여자에게 부족에게 데려다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녀는 좋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3월 3일 우리는 출발한다. 수행인들은 여자가 있다는 게 수줍기도 하고, 여자의 위치가 어정쩡하기도 하고, 특히 그녀를 야만인들한테 데려다줘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녀에게 말도 걸지 않는다.

 

 

닷새가 지나자 말들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결국 짐을 실을 말이 먹이를 거부한다. 우리는 짐을 옮겨 싣고 장작 중 일부를 버린다. 도중에 폭풍이 몰아쳤다. 천막이 날아가 버리고 없다. 우리는 장작더미와 말 뒤에서 다섯 시간 동안이나 웅크리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을 저주한다. 날 저주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처럼 궂은 계절에 미덥지도 않은 안내인을 데리고 험난한 길을 나선 자신이 저주스러울 뿐이다. 열흘째가 되는 날, 하늘은 맑고 바람도 부드럽다. 안내인이 산이라고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산이 아니다. 그가 멀리 가리키는 점들은 말을 탄 사람들이다. 야만인들이 아니고 누구랴! 우리는 반시간 동안 그들을 향해 길을 재촉하다가 거리가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인다.

 

 

나는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북쪽을 바라본다. 텅 빈 평원 위로 점들이 나타난다. 나는 막대기에 흰 린넨 셔츠를 묶어서 들고 그들을 향해 말을 타고 간다. 언덕 위에 열두 명이 조그맣게 보인다. 나는 어깨 위로 하얀 기를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나는 언덕의 정상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그들이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총을 든 남자가 서서히 다가온다. 그녀는 그들을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남자들이 말에서 내려 그녀의 주위에 몰려든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게 무슨 낭비란 말인가! 저 애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긴긴 저녁시간에 자기네 말이나 나한테 가르쳐주며 한가롭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젠 너무 늦었구나. 그녀가 떠나려 한다.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어도,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방인. 낯선 곳에서 왔다가 행복하지 못한 방문을 끝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방문객.

 

 

안녕. 내가 말한다. 안녕. 그녀가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도 내 목소리만큼이나 생기가 없다. 나는 비탈길을 내려오기 시작한다. 바로 오늘, 우리는 돌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겠지만, 내가 위험을 감수한 것은 잘못된 게 아니었다.(이제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넌지시 암시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야만인들에게 가는 사절이 아니라 한 여자, 그것도 야만인 죄수이자 치안 판사의 하찮은 매춘부에 불과한 여자를 호위하고 호송하는 일을 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우리는 왔던 길과 같은 길을 가능한 한 되짚어 오려고 한다. 이윽고 1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감시탑이 보인다. 안내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3주 동안 씻지도 않고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들에는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희미한 트럼펫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린다. 우리를 환영하는 기병들이 햇빛에 헬멧을 반짝이며 문에서 나온다. 그들의 눈은 무표정하다. 그들은 내가 질문하는 것에 답변하지 않고, 우리가 죄수라도 되는 것처럼 열린 정문으로 들어가게 한다. 우리는 광장에 있는 천막을 보고 소란한 소리를 듣고서야, 군대가 여기에 주둔해 있으며 야만인들에 대한 예정된 작전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안다.

 

 

 

4

한 남자가 법정 뒤편에 있는 내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 라일락 색의 푸른 제복 상의에 달린 기장을 보면, 그는 준위다. 정보부의 준위. 그건 뭘 뜻하는 것일까? 짐작컨대, 그건 5년 동안 사람들을 발길로 차고 때리고, 일반 경찰과 정당한 법 절차를 경멸하고, 나 같은 관리가 부드럽게 얘기하는 방식을 혐오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디 갔다 왔소?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소. 당신은 적과 반역적인 내통을 했소. 결국 그렇게 됐구나. 반역적인 내통, 책에 나오는 말이다.

 

 

우린 평화로운 상태요. 우리에게는 아무 적도 없소. 원주민들은 우리와 전쟁 중이오. 두 호위병에 끌려 감방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내가 기분 좋은 이유를 안다. 제국 수호자들과의 연합은 이제 끝났다. 나는 반대편에 서게 됐다. 유대감이 깨졌다. 나는 자유인이다. 하지만 얼마나 위험한 기쁨인가! 곡괭이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막사를 확장시켜 제대로 된 감방을 만들고 있다. 문명의 검은 꽃이 필 때가 된 것이다.

 

나에게는 일반 병사들과 같은 양의 급식이 주어진다. 한때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자가 형편없이 몰락한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는 사람들이 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종일 텅 빈 벽을 응시한다. 그걸 골똘히 응시하면 거기에 스며 있는 고통과 타락의 흔적이 나타날 지 몰라서다. 나는 식사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나는 개처럼 게걸스럽게 먹는다. 짐승처럼 살다 보니 진짜 짐승이 돼가고 있다.

 

 

오늘 운동하는 날인데, 나를 내보내줄 기미도 없다. 간수가 온다. 원하는 게 뭐야? 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는 나를 얼마나 혐오할 것인가! 잠깐만. 내 변기통을 비워야 하네. 냄새가 너무 지독해. 이런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대령 앞에 갈 수는 없잖나. 뜨거운 물과 비누와 걸레가 필요하네. 변기통을 빨리 비우고, 부엌에서 더운물을 가져오겠네. 그가 내 말에 이의를 달지 않는 걸 보니, 대령에 관해서 내가 추측하여 말한 것은 맞는 말인가 보다. 그가 서둘러!라고 소리치며 한쪽으로 물러섰다. 나는 큰 걸음으로 부엌을 가로질러, 어두운 구석으로 간다. 양고기를 매달아놓는 지하실의 열쇠가 머리 높이에 있는 못에 걸려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걸 호주머니에 넣는다. 돌아올 때, 내 손에는 나무통이 들려 있다. 여자가 끓는 물을 바가지로 퍼주는 동안, 나는 통을 들고 있다. 나는 감방으로 돌아와 몸을 씻고, 단 하나뿐인 바지를 빨아 쥐어짜 문 뒤에 있는 못에 건다. 그리고 누워서 밤을 기다린다.

 

열쇠가 부드럽게 돌아간다. 나를 제외하고 그 지하실 열쇠가 다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하실 열쇠는 막사 복도에 있는 커다란 벽장도 열 수 있고 내가 갇혀 있는 감방문도 열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며 30년을 보낸 게 그렇게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벽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내 발이 자갈밭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낸다. 여관 뒤쪽으로 통하는 문은 경첩이 썩어 넘어져 있다. 그곳에서도 썩은 냄새가 난다. 발코니와 하인들의 숙소로 통하는 나무 계단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오줌 냄새가 난다.

 

 

나는 계단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는 최대한 대담하게,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몸을 움츠리고 계단을 오른다. 통로는 텅 비어 있다. 여자의 방문이 열려 있다. 침대 시트에 손을 넣자 그녀의 온기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녀의 침대로 들어가 모든 것을 다 잊고 망각 속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것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 밑으로 겨우 들어간다. 너무 비좁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나를 끌어내, 그들이 계엄령 하에서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비공개 재판에 나를 회부할 것이다. 그들이 패배했거나 야만인들한테 당했다면, 그들은 나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것이다. 넌 일어나야 해! 나는 의도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아래쪽 뜰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가 내 냄새를 맡지 않았으면 싶다. 방의 문이 닫혔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하나의 시험대를 통과한 셈이다. 잠시 후 누군가 통로를 달려와 방에 들어선다. 나는 그게 여자라는 걸 안다. 바로 지금이, 나를 숨겨 달라고 그녀에게 애원할 때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지? 그녀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에게, 그것도 치욕스럽게 도망을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리라는 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서성이더니 갑자기 가버린다. 계단이 삐걱대더니 고요해진다.

 

 

다시 발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녀는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남자와 같이 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이런 걸 견뎌야 하다니 참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희극 속에 나오는, 서방질을 하는 여자의 남편처럼 숨을 죽이고 치욕감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든다. 그들은 내 몸 바로 위에 눕는다. 널빤지가 휘어지며 내 등을 압박한다. 여자가 몸을 요동치는 소리와 신음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여자가 쾌락의 절정에 사로잡힐 때 내는 소리를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나도 이 여자와 그랬으니까. 널빤지가 더 심하게 나를 압박한다. 마음과는 반대로 몹시 흥분되는 걸 느끼며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실제로 신음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낮지만 긴 신음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나와 그들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섞인다.

 

 

그들은 어린 소년과 소녀처럼 손에 손을 잡고 알몸으로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저토록 부드럽고 꽃 같은 아이에게 나의 몸을 밀착시키고 무슨 짓을 했던 것인가? 나는 천하고 퇴화하는 인간들 속에 있었어야 했다. 나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태양빛이 이글거리는 계단을 절뚝거리며 내려온다. 나는 담이 각진 곳 위에 있는 감시탑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게 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걸까? 텅 빈 거리가 나의 눈앞에서 새롭고 불길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남서쪽 탑에서는 한 보초가 사막을 쳐다보고 있다. 그에게 들녘에 홍수가 난 적이 있는가 물었다. 야만인들이 저쪽 둑의 일부를 터서 들판을 물바다로 만들었답니다.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요. 그들이 밤중에 와서 그랬으니까요.

 

나는 막사 뜰의 문을 덜컹덜컹 잡아당긴다. 간수가 급히 달려온다. 그는 내 팔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뜰을 가로지른다. 나는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간수에게 먹고 마실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게 전과 같이 된다. 터무니없는 감금 생활이 계속된다. 나는 매일매일, 빛이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걸 누워서 바라본다. 나는 먹고 마시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기다린다.

 

 

 

 

5

야만인들이다! 누군가가 소리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종소리가 이러한 소란 위로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머스킷 총으로 축포를 쏘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마음이 너무 그쪽으로 끌린다. 하기야 내가 더 이상 잃을 게 뭐가 있는가? 나는 문의 열쇠를 딴다. 축포소리와 박수소리가 계속 터진다. 야만인들이다! 이 말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불길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기병이 밧줄을 끌고 간다. 밧줄의 끝에는 목과 목이 서로 줄줄이 묶인 야만인들이 있다. 완전히 발가벗은 그 야만인들은 모두 이상한 모습으로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다. 나는 즉시 상황을 알아차린다. 철사줄이 모든 사람의 손바닥과 뺨에 꿰어져 있다. 그렇게 하면 야만인들이 양처럼 순해진답니다. 역겨워진다. 이제 나는 감방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대열에서 죨 대령을 발견하고 얼른 몸을 돌린다.

 

죨 대령이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올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와 내 눈길이 만난다. 안 돼! 나는 죨 대령을 향해 몸을 돌린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너 말이야! 할 말은 하자. 너는 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어! 그는 대꾸도 안 한다. 내 목소리가 광장에 가득 찬다. 완벽한 고요함이 깃든다. 뭔가가 내 등을 친다. 나는 먼지 속으로 나자빠져 헐떡거린다. 몽둥이가 내 몸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걸 막으려다가, 손을 정통으로 얻어맞는다. 팔이 부러졌다. 내 머리와 어깨에 몽둥이질이 가해진다.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단 시작했으니만큼, 하던 말을 마저 끝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부러진 손을 하늘 쪽으로 치켜든다.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그러나 이 기적적인 몸조차도 어떤 것에 맞으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단 말이야. 몽둥이가 내 얼굴 전체에 떨어진다. 눈이 안 보여! 나는 피를 삼킨다. 이 야만인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라며 내가 군중들과 감히 맞설 수 있을까? 정의라는 말을 한 번 입 밖에 내면, 그 끝이 어디일 것인가? 아니야. 맞아 죽어 순교자가 되는 게 더 쉽다. 야만인들을 위해 정의를 달라고 주장하는 것 보다 단두대에 머리를 대는 것이 더 쉽다.

 

나는 여자 옷을 입고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던 날, 마지막 남은 권위의 흔적마저도 잃어버리고 늙다리 광대가 되어버린 상태다. 게다가 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1주일 동안이나, 바닥에 놓인 음식을 개처럼 지저분하게 핥아먹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감금당하지도 않는다. 나는 막사의 뜰 구석에서 잠을 잔다. 나는 더러운 여자 옷을 입고 살금살금 기어다닌다. 누군가가 나한테 주먹을 치켜들라치면, 나는 몸을 움츠린다. 나는 뒷문에 있는 굶주린 짐승 같이 살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뜰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만델이 잠을 깨운다. 그가 밥값을 벌기 위해 언제부터 일을 할 것인가 묻는다.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들에게 일해서 밥값을 벌게 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러자 그는 내가 죄수가 아니니 나가는 건 자유라고 말한다. 숨을 곳이 아무 데도 없다. 옛 치안 판사가 그런 수난을 당하고도 용케 살아남았다는 말들이 서서히 돌아다닌다. 내가 가까이 가면, 사람들은 침묵에 빠지거나 등을 돌린다.

 

 

원정군이 출발한지 거의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다. 더러는 원정대가 전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한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원정대가 본국을 방어하기 위해 소환되었으며, 이제는 야만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변경에 있는 도시들을 언제든지 과일처럼 주울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분별 있는 사람들은 매주 마다 동쪽으로 길을 떠난다. 겉으로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하면서, 열두어 가족이 같이 떠난다. 군인들이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들은 시위를 주도하며 겁쟁이들과 배반자들을 비난하고 제국에 대한 집단적인 충성을 확인한다. 우리는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충신들의 구호가 되었다.

 

 

나는 넓은 길을 따라 호숫가로 내려간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이 길을 밤중에 걸었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밤이 야만인들의 그림자로 득실거린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망쳐진 논들을 지났다. 나는 두 손으로 갈대를 가르며 더 깊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 제국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역사에 대해 음모를 꾸미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끝장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낮에는 적들을 쫓아다니다 밤이 되면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산다. 도시가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강간당하고, 죽은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이고, 수많은 땅이 황폐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 말이다. 그건 말도 안 되는 미친 상상이지만 전염성이 강하다. 부드러운 밑바닥 흙을 밟으며 물살을 가르고 있는 나도 충성스러운 죨 대령보다 그러한 생각에 덜 감염된 건 아니다.

죽은 채로 부대 깃발에 몸을 묶인 채 말에 실려서 돌아온 군인의 모습을 본 주민들에게 재앙에 대한 모든 징조가 실제로 확인된다. 처음으로, 진짜배기 공포가 사람들을 엄습한다. 사람들은 사재기에 몰두하고 학교는 문을 닫는다. 야만인들이 곧 공격해올 것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3개월 전에 그렇게도 의기양양하게 떠났던 군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다니.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문이란 문은 모두 닫히고 빗장이 걸린다. 내가 잠자는 곡물창고에 수레가 줄을 잇는다. 마지막 수레에 물건이 실린다. 문의 빗장이 풀어지고, 군인들이 말에 오른다.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군인들의 뒤를 따른다.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 문이 열려 있다. 안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나는 시트를 벗겨내고, 일종의 불편한 느낌이 내 몸에 스며들기를 기다리며, 매트리스 위에 눕는다. 뭐랄까, 이 방에 남아 있는 그 자의 냄새와 무질서 속에 아직도 떠돌고 있을 그 남자의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다. 방은 예전처럼 낯익은 모습이다. 그 끝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믿는 게 전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길거리에 난무하는 히스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소멸될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아무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이길래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그 환상에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 구세주에 대한 꿈을 꾸며 마지막 남은 며칠을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달리 있겠는가? 우리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 우리를 용서하면서, 칼을 휘둘러 적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지상낙원을 다시 한 번 건설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줄 구세주 말이다.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내가 수영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데 온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물보다 더 둔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잔물결도 일지 않고, 무색이고 무취이며, 종이처럼 메마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손발을 놀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6

때때로 아침이 되면 새로운 말발굽 자국이 들판에 나 있다. 순찰병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음날 사라졌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이틀 동안 무기를 허리에 차고, 멀리 떨어진 들에 나가 협동으로 수확을 마쳤다. 호수 기슭에 있는 물탱크를 채우는 동시에 성 안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언젠가 파이프가 잘리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북쪽 성벽에 헬멧을 가지런히 세워놓았다가 30분 간격으로 한 아이가 지나가며 헬멧 하나하나를 조금씩 움직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야만인들의 예리한 눈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다.

 

 

멘델이 남기고 간 수비대는 세 명이다. 그들은 번갈아 가며, 잠겨진 법원 앞에서 보초를 선다.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산다. 나는 이 지역을 수호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데 앞장을 선다. 아무도 내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 나는 수염을 가지런히 다듬고, 깨끗한 옷을 입고,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1년 전, 경찰청 요원들이 도착하면서 중단되었던 행정 업무를 사실상 다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아파트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광장에 도착한 죨 대령이 부하를 내게 보내 식량을 요구한다. 죨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문이 쾅 닫힌다. 안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유리창을 통해서 보니 침침한 안쪽 구석에서 얼굴을 단호하게 돌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마차의 지붕 위에 떨어진다. 죨의 호위병이 달려오며 아무것도 찾지 못했음을 보고한다. 마구간도 이미 텅 비어 있다. 나는 마차의 유리창을 깨고 죨 대령을 끌어내어 두들겨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마치 나의 살인적인 감정이 자신의 몸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나를 쳐다보며, 눈으로 나의 얼굴을 더듬는다. 검정색 안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우리 안에 범죄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한테 가해야 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럴 게 아니란 말이야. 죨 대령의 마차가 삐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떠난다.

 

 

세 번째 우물을 파던 중 두개골과 뼈들이 발견된다.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다. 나는 삽을 들어 뼈들을 다시 집어넣고 구덩이를 덮는다. 나는 꿈속에서 다시 구덩이에 들어가 있다. 땅은 축축하고 어둡다. 나는 밑을 더듬는다. 구부러지고 녹슨 포크가 나온다. 죽은 새도 나온다. 오염된 물이다.

 

 

저녁이 되면, 나는 한두 시간쯤을 난롯가에서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할당된 장작이 떨어지면,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예전에 즐기던 취미생활에 몰두한다. 사막의 폐허에 한때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도 정착지에 대한 기록을 작성해서, 벽 밑에 매장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게 지당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기록을 작성하는 데, 마지막 치안 판사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렇게 쓴다. 이 오아시스를 찾아오는 그 누구도 이곳 생활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 수 있는 길을 알 수만 있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양보라도 했을 것이다. 이곳은 지상의 낙원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겨울이 끝날 때가 되면, 배고픔이 정말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갈 때가 되면, 혹은 야만인들이 정말로 정문에 와 있을 때가 되면, 어쩌면 나는 문학적 야망을 가진 공무원이 쓰는 말투를 버리고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할지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행방불명된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수치스러워할 이유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나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살았다. 그러나 나는 품에 안긴 갓난아이보다 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곳 사람들 중에서, 회고록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부적합한 사람이다. 분노와 슬픔으로 울부짖는 대장장이가 그 일에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빵 맛을 보게 되면, 우리들이 사는 방식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곡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아는 남자들의 숙련된 기술과,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여자들의 기술 없이는,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어느 날, 사람들은 폐허 속을 뒤적거리면서, 내가 뒤에 남긴 것들보다도 사막에서 나온 유물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합당한 이유에서 그럴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무엇인가가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내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멈췄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첫눈이다. 지붕이 하얗다. 나는 아침 내내, 창가에 서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막사 뜰을 건너려고 하자, 눈이 벌써 몇 인치나 쌓여 있다. 발꿈치에서 뽀드득뽀드득 야릇한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며, 형언할 수 없이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향해 나아간다. 아이들은 놀라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나를 쳐다볼 겨를도 없다. 아이들은 커다랗고 둥근 몸통을 다 만든 상태다. 이제, 머리가 될 눈 뭉치를 굴리고 있다.

 

누가 가서 입, 코, 눈에 붙일 것들을 좀 가져와. 대장격인 아이가 말한다. 눈사람에게는 팔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참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몸통 위에 머리를 얹고, 조약돌로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만든다. 한 아이가 자기 모자를 눈사람에게 씌워 준다. 그다지 볼품 없는 눈사람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꿈에서 보았던 광경이 아니다. 요즘 들어서 다른 많은 경우에 그러한 것처럼, 오래 전에 길을 잃었지만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한 길을 따라 계속 걸음을 옮기는 사람처럼 나는 바보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곳을 떠난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존 쿳시 지음/왕은철옮김, 들녘, 역 자 왕은철교수>

 

저 자 존 쿳시

1940년,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와 미국에서 컴퓨터 과학자와 언어학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첫 작품은 『더스크랜즈(dusklands)』였다. 그 다음 작품은 『나라의 심장부였는데, 쿳시는 이 소설로 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인 CNA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쿳시는 『마이클 K』로 부커상 및 쁘리 에뜨랑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다음에 이어진 작품들은 『포우 철의 시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추락 등인데, 쿳시는 『추락으로 부커상을 2회 수상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J.M. 쿳시는 1987년에는 예루살렘 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미국에서 외국 작가에게 주어지는 라난 문학상(퓰리처상에 해당)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번역서, 언어연구서, 문학연구서를 펴낸 바 있으며, 『소년기청년기 등 두 권의 회고록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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