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여, 쇠사슬을 끊어라_ 루소 《사회계약론》
미완성의 성숙한 사상을 내놓다: 《사회계약론》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사상이 아니다. 루소의 논문 <학문·예술론>은 파리에 새로운 지식인이 등장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루소는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문명과 제도에 의해서 폐단이 생겼다. 따라서 사회조직과 학문·예술의 발달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하기는커녕 온갖 모순, 타락, 부패를 초래한다. 이런 루소의 사상은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루소는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게 평등했던 자연 상태를 설정한다. 그 자연인이 자연 상태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회 상태로 이행함으로써 정치사회에서 얼마나 불평등한 인간이 되는가를 루소는 철저히 고찰한다. 정치사회의 악을 만드는 것은 사유재산이었다. 루소는 그것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루소의 《에밀Emile》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교육론 저서로 손꼽힌다. 여기에서도 루소는 자연성을 존중한다. 에밀이라는 고아가 태어나서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며 그는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배격하고 인간의 자연성을 존중하는 전인 교육법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루소는 ‘정치제도론’이라는 거대한 저서를 구상했다. 그 전에 루소는 실제적인 정치를 경험하게 된다. 루소는 잠시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비서가 되면서 정치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관찰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물은 결국 정치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 그리고 국민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부의 성격에 의해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사회현상은 결국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어릴 때부터 받은 온갖 천대와 멸시도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제도와 정치의 부조리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루소는 인간의 선량한 본성과 자연적인 감정, 하늘이 부여한 자유를 토대로 올바른 사회질서만 정립된다면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사회질서와 정부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제도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되지 못했고 《사회계약론》만 끝낼 수 있었다.
이 작은 논문은 자신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내가 수년 전에 쓰기 시작했다가 오랫동안 내버려두었던, 훨씬 방대한 저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저서에서 추려낼 수 있는 여러 단편들 중에서 이 논문이 가장 중요하고, 또 일반 독자들에게도 가장 가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밖의 나머지 부분은 이미 없어져버렸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원래 구상했던 저서의 일부분이며, 동시에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루소 자신도 그 사실을 위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원래 구상했던 저서는 아쉽게도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계약론》만으로도 세상에 충격을 주기에 족했다.
《사회계약론》, 혁명의 모태가 되고 민주주의의 산파가 되다: 《사회계약론》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 상태로 가게 되는가 하는 문제, 법률의 제정 문제, 정부의 형태, 민주정·군주정·귀족정 등과 바람직한 정치제도의 문제, 국가의 체계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주장하는 핵심은 제목에 이미 나와 있다. 즉 ‘사회 상태’ 또는 ‘국가’ 구성과 관련하여 인간이 맺게 되는 계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먼저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넘어오는 과정이 반드시 ‘부자유에서 자유’로의 전환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사회 상태로 오면서 부자유스럽게 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이 그렇게 된 것은 사회 조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에 잘 나타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은 그들보다도 훨씬 더 심한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왜 쇠사슬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해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평등했다. 그러나 다른 세력의 위협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 때문에 개인은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가 되는 계약을 맺고, 이것이 국가가 되는데 이는 불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 사회계약은 자연적 평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육체적 불평등을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평등으로 대치하는 것이며, 인간은 체력이나 재능 면에서 불평등할 수 있으므로 계약과 그에 따른 법에 의해 모두가 평등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그는 계약으로 형성된 국가와 주권은 양도할 수도 분할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정부 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반의지는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정치가들은 주권을 대상에 따라 과세권, 사법권, 행정권, 대외교섭권 등으로 분할한다. 때로는 이 모든 부분을 통합하기도 하고 또 분리하기도 한다. 여러 부품으로 조립된 존재로 주권을 생각한다. 이것은 여러 개의 몸체로 인간을 조립하려는 것과 같으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주권에 대한 개념이 명확히 서 있지 않기 때문인데 주권에서 파생된 것들을 주권의 일부분으로 생각한 데 따른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 사회에는 일반의지라는 것이 있고,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일반의지에 위임한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계약에 따라 이 일반의지를 실현한다. 그런데 일반의지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의지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는 국가권력은 당연히 분리될 수 없다. 이는 로크나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루소는 인간의 정치적 권리는 대표되거나 대신될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영국의 정치를 평가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시 영국은 선거인이 대표를 뽑고, 거기서 뽑힌 사람들이 의회와 내각을 구성해서 통치했다.
영국의 민중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의 정치체제는 민중들이 직접 자신들을 다스리는 일종의 직접민주주의와 유사한 면을 보인다. 이런 생각을 관철시키려면 루소가 생각하는 국가의 규모는 결코 커서는 안 된다. 즉 소규모의 도시국가라야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실제로 루소는 스위스 출신이고 스위스 도시들에서 이루어지는 자치는 그의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또 루소는 옛날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면은 루소와 홉스의 확실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루소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일정한 경제적 평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없다면 일반의지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경제적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제적 부에 대해 루소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국민은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되고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평등에 대한 이와 같은 주장은 그가 어느 정도 생산을 담당하는 민중의 입장에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일반 민중들에게 수용된다. 또 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루소를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루소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11년 전에 죽었다. 루소의 혁신적인 사상은 그가 죽은 후 널리 퍼졌고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르 같은 혁명가는 루소를 스승으로 인정했다. 특히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주권재민론, 인간의 평등에 대한 주장 등이다. 이런 사상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이 선언의 1조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로우며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규정되어 있고, 3조에는 “모든 주권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인민에게 있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되어 현실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민주주의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그의 사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상이 되었다. 이는 그의 사상에 시대를 초월하는 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철학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산수유>